[교단에서]꽃샘바람의 꿈 꾸기
[교단에서]꽃샘바람의 꿈 꾸기
  • 경남일보
  • 승인 2019.04.15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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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애리(수정초등학교 교사)
꽃샘바람이 없는 봄바람이 있을까? 붉게 깊어가는 봄 속에 숨어 있는 차가운 보석처럼 산불로 검게 타 버린 강원도의 산과 들에도 사월의 흰 눈이 소복이 내렸다고 한다.

다투어 피어오르는 꽃봉오리들, 교실 속에서 함께 자라나는 아이들의 화려한 봄 속에도 꽃샘바람은 있다. 다가와지지 않는 꿈과 만들어보고 싶은 하는 꿈 사이를 헤엄치는 바람이 있다.

A는 말수가 적고 실수를 줄이려고 천천히 반응을 보여주려는 안전에 민감한 친구이다. 요란한 친구들 사이에서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는 숨어 있는 보석이다. 가만히 앉아서 선생님과 친구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자신의 모습은 안으로 깊숙이 숨겨 둔다.

“우리 애는 다른 또래 친구들보다 성장 속도가 늦은 편인가 봐요. 집안에서는 활발한데, 학교에만 오면 제 목소리를 안으로 삼켜버려요.”

올해는 2학년 어린 친구들과 함께 시와 시조를 쓰기로 했다. 아홉 살의 봄 속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꼬물꼬물 숨어 있는지 궁금했다.

“봄을 노래하고 싶은데, 봄 속에는 무엇이 숨어 있을까요?”

씨앗이/ 물을 잘 먹고/ 쑥쑥 쑥 자라나요./ 시라는 형식으로 처음 써 보는데, 망설임이나 불안함 없이 바깥으로 쏟아져 나온다.

폴짝폴짝 개구리처럼 줄을 넘었다./마흔, 마흔하나 /윽! 걸렸다./ 줄넘기란 주제로 마흔하나를 세다가 작은 발에 탁 걸려버린 줄을 크게 그려 넣고 그 안타까움을 절절히 노래했다. 올해의 복면 가왕을 만나는 기적의 순간이다.

“한 번만 네 목소리로 읽어봐 줄래.”

학급 전체 친구들이 안으로 숨을 삼켰다. 작고 떨리는 그 목소리를 놓치지 않고 들었다.

으! 으!/쓴 한약 엄마가 사탕을 주신다./으악!/ 나는 도망쳤다./침대 옆에서 숨어서 기다렸다./엄마한테 들켰다./ 한약을 먹는 날 아침에 쓴 약을 피해 도망갔던 경험을 노래한다. 어떤 주제를 이야기해도 술술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동안 가슴속에 묶여 있던 이야기들은 간질간질 어떻게 견뎠을까?

“새롭게 나를 찾았어요. 봄 속에는 반갑게 인사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요. 수다쟁이 초록빛 개구리, 강변으로 오라고 손짓하는 샛노란 유채꽃 친구들에게 새 노래를 불러 줘야 해요.”

교실 밖에는 아기 꽃사과나무가 연분홍 볼을 붉히고 섰고, 교실 안에는 새봄을 노래하는 종달새, 어린 시인이 나타났다. 봄 꿈을 가득 안고 힘차게 날갯짓하며 꽃샘바람을 타고 오른다.
 
신애리(수정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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