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봉산 자연인’…그는 배고팠다
‘비봉산 자연인’…그는 배고팠다
  • 임명진·백지영기자
  • 승인 2019.04.15 20: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인기피증 50대 10년간 움막생활
100여 차례 인근서 음식물 등 훔쳐
하루 한끼만…현금은 손대지 않아

 

진주시 비봉산 일대에서 10여년간 비닐하우스 농막(창고) 등지에서 음식물과 생필품 등을 훔친 50대 남성 A(57)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15일 진주경찰서에 따르면 A씨는 지난 9일 오후 10시10분께 진주시 비봉산 일대의 한 산딸기 농장에 침입해 냉장고에 있던 라면과 주류 등 3만원 상당을 훔치는 등 100여 차례가 넘게 상습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남성의 절도행각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찰조사 결과 남해 출신이라고 알려진 이 남성은 비봉산 일대에 움막을 짓고 10년 넘게 홀로 생활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 과정에서 외부인과의 교류와 접촉은 일절 없었다. A씨는 경찰조사에서 “하루에 한 끼만 먹어 배가 고파서 훔쳤다”는 범행동기를 밝혔다.

지난 2009년 9월부터 검거되기까지 100회가 넘게 일대 과수원, 농장의 창고 등이 그의 표적이 됐다. 비봉산 일대는 산딸기와 복숭아 농사를 짓는 과수원과 농장들이 많아 음식물과 생필품 등을 보관하는 농막이 많았다.

범행은 주로 야간에 이뤄졌다. 대인기피증이 있던 그는 철저하게 사람이 없는 틈을 타 범행을 했다. 그 과정에서 주택이나 사람의 인기척이 있는 곳은 범행대상에서 제외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 기간이 오래되다 보니 그 자신도 범행횟수와 장소를 일일이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라면서 “검거 당시에는 문화생활을 전혀 누리지 못한 듯 몰골이 아주 초췌했다”고 말했다.

A씨는 불우했던 가정사와 그로 인한 대인기피증으로 비봉산에 들어왔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의 진술대로라면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두차례 원양어선을 탔다고 하는데, 가정사도 순탄치 않아 보였다. 그 과정에서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대인기피증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0년 동안 그가 훔친 물품이 현금이 아닌 라면과 쌀, 술 등 생필품 위주인데다 소액이라서 피해농가들의 신고를 피했다. 농가들도 피해규모가 작다보니 신고를 하지 않았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게 된 계기는 범행이 지난 10여 년 동안 꾸준히 이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범행이 주로 야간에 이뤄지고, 폐쇄회로TV 자체가 별로 없는 산간일대가 범행장소였던 터라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A씨의 주민등록까지도 오래전 말소된 상태로 경찰은 인상 착의만으로 지난해 10월 전국지명 수배해야 했다.

그런 경찰의 수사에 A씨가 포착된 것은 올해 초 부터다. 10년여 동안 폐쇄회로(CCTV) 설치가 많이 늘었고, 한달여 간의 잠복수사 끝에 농막에 들어선 A씨가 포착됐다. 경찰은 농막에 들어가 범행을 하려는 A씨를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지난 10여 년 동안 문화생활을 거의 누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머리카락도 전혀 정돈되지 않아 상투가 벗겨진 듯한 모습이었다. 우선 샤워를 하게 하고 속옷과 의류 등을 지원했다. A씨가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점을 고려한다면 사회에 다시 나올 때 행정기관 등과 함께 사회적응을 돕고 지원을 추진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 9일 A씨를 구속하는 한편 여죄를 계속 수사 중이다. A씨의 범행건수는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이날 오전까지 121건이던 범행건수는 오후가 되자 170여 건으로 늘었다.

임명진·백지영기자

진주시 비봉산에 움막을 짓고 살며 10여년간 사찰과 비닐하우스에서 생필품을 훔친 50대 남성이 구속됐다. 사진은 피의자가 거주하던 움막. /사진제공=진주경찰서

 
진주 비봉산에 움막을 짓고 살며 10여년간 사찰과 비닐하우스에서 생필품을 훔친 50대 남성이 구속됐다. 사진은 피의자가 거주하던 움막. /사진제공=진주경찰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