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봄바람
  • 경남일보
  • 승인 2019.04.1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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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홍(경상대학교 인문대학장)
임규홍 교수
임규홍 교수

봄이 깊어 가니 햇살이 하루가 다르고 뭇나무들은 숨겼던 예쁜 잎들을 다투어 내보낸다. 사람도 겨우내 움츠렸던 심신을 털고 나들이한다. 봄은 사랑의 계절이고, 바람의 계절이다. 그래서 봄바람이란 말이 생겨나고 사전에까지 올라 있는 것이 아닌가. 봄바람이 나면 너도나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나비가 꽃을 찾듯 남녀는 사랑을 찾는다.

그런데 봄이란 말은 과연 어떻게 생겨났을까. 누구도 그것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봄이 가지고 있는 소리에서 봄의 뜻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봄’의 ‘ㅂ’소리는 속에서 나오는 숨을 입술에 모아 가볍게 밖으로 터트리면서 내는 소리다. 그래서 ‘ㅂ’ 소리는 ‘밖’, ‘기체’, ‘가벼움’ 등의 소리느낌(음상)을 가지게 된다. 이와 반대로 ‘ㅂ’을 첫소리로 된 우리말 동사나 형용사의 뜻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대부분 ‘밖으로 번져나가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바라다’, ‘벗다’, ‘불다’, ‘붓다’, ‘보다’ 등이 그렇다. 더구나 소리나 동작을 나타내는 말(의성어, 의태어)들은 더욱 그렇다. ‘바람’ 또한 ‘ㅂ’으로 되어 있지 않은가. 또 ‘봄’의 가운뎃소리는 ‘ㅗ’로 되어 있다. 이 ‘ㅗ’ 소리는 올라가는 ‘오름’의 음상을 가지고 있다. ‘오르다’, ‘솟다’도 ‘ㅗ’로 되어 있다. 글자 모습도 신기하게 뜻에 따라 땅인 ‘ㅡ’ 위에 하늘 ‘ㆍ’를 놓았다. 그래서 ‘봄’이란 말소리에는 만물이 밖으로 나오고, 땅위로 올라오는 자연의 현상을 담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바라보는 ‘보다’의 ‘봄’도 계절의 ‘봄’과 같으니 ‘봄’은 볼거리로 가득하다. 봄이 되면 들꽃, 산꽃, 새잎, 새싹들도 모두 밖으로 올라온다. 따뜻한 바람은 밖에서 불어오고 햇살은 따스하여 몸을 데운다. 만물에는 물이 올라 생기가 나고, 우리 몸에는 주체할 수 없는 기운이 속살속살 올라온다. 이렇게 봄이 나를 밖으로 불러내니 난들 어떻게 집에 있으랴. 지인과 함께 휴일 하동 섬진강으로 갔다. 그렇게 떠들썩했던 매화도, 벚꽃도, 산수유도 이미 지고 없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꽃보다 아름다운 분홍빛 벚꽃 꽃받침이 눈 부시는 연록새잎과 어울려 길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어떤 꽃인들 이렇게 아름다울까. 하여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봄이 되면 봄바람 따라 꽃잎으로 꽃전(花煎)을 부쳐 먹고, 강가에서 살 오른 물고기 탕 끓여 먹으면서 춤추고 노는 회치로 봄놀이를 즐겼던가 보다. 돌아오는 길에 이전처럼 강가에서 회치는 못해도 잔벚꽃 간간이 날리는 섬진강 화개장터에서 시원 덜컨한 참게탕 한 그릇 먹었다. 이 맛 또한 어디에 비길까. 우리 모두 짙어가는 봄날, 더 늦기 전에,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봄바람을 따라 어디론가 훌쩍 떠나보면 어떨까.

 

임규홍(경상대학교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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