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여성의 인생에서 빨간 줄을 지우다
[여성칼럼]여성의 인생에서 빨간 줄을 지우다
  • 경남일보
  • 승인 2019.04.1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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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1일, 헌법 재판소는 낙태죄가 헌법에 불합치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1953년 낙태죄가 처음 형법에 도입 된지 66년, 2012년 헌재가 4: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지는 7년 만에 이루어진 변화다. 지난해 ‘이름 위에 그인 빨간 두 줄’이라는 제목으로 낙태죄를 반대하는 내용의 칼럼을 기고한 적이 있다. 임신테스트기에 표시된 빨간 선 두 줄이 임신을 원치 않는 한국 여성에게는 마치 전과 기록만큼이나 치명적이라고 썼는데, 그로부터 반년 만에 ‘빨간 줄’을 지울 수 있게 된다는 사실에 감회가 새롭다.

그 글을 썼던 당시 보건복지부가 임신중절 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하고 의사 처벌을 강화하자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임신중절 수술 전면 중단을 선언했었다. 우리는 낙태가 비도덕적임을 이야기할 때 ‘태아의 생명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낙태죄 합헌을 판단한 헌법재판관은 “낙태죄 규정으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어느 정도 제한되지만 그 제한의 정도가 낙태죄 규정을 통해 달성하려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중대한 공익에 비해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했고, 개신교 단체와 시민사회단체 79개로 구성된 ‘낙태죄폐지반대전국민연합’도 이번 헌법불합치 판결에 대해 “헌재의 결정은 생명을 보호하는 헌법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판단이다. 인간의 생명 권리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라고 주장했다. 2012년 당시 ‘사익인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해 크지 않고, 태아도 성장 상태와 관계없이 생명권의 주체로서 마땅히 보호 받아야한다’는 합헌의견과 다르지 않은 맥락이다.

철학자인 피터 싱어는 ‘잠재적인 X(X가 될 수 있는)’ 존재와 ‘X’ 자체는 같은 가치를 지니거나 X의 모든 권리를 가지진 못한다고 주장하였는데, 그의 말처럼 태아가 잠재적인 인간이라고 한다면 태아에게 인간의 기본권인 생명권을 이유로 낙태를 반대할 수 있을 것인가?

헌재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고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하였으며 2020년 12월 31일까지 관련 조항을 개정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때까지 국회에서 법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형법 269조와 270조는 자동폐기 된다.

지금까지 낙태죄를 바라보는 시선이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어느 쪽이 더 무게가 있나 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새로운 국면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자기결정권’이라는 말은 ‘생명권’이라는 단어보다 직관적으로 힘이 약하다. ‘여성의 평생’을 순간의 실수 때문에 포기하는 것을 ‘책임’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여성들의 무책임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낙태를 해서 실질적으로 피해를 받는 것은 여성의 몸이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것 또한 여성이다. 낙태가 합법화된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지금까지 불법으로 이루어졌던 수술이 합법적으로 안전하게 이루어진다는 것뿐이지 어느 누가 일부러 그 경험을 하고 싶어 하겠는가. 실제로 낙태가 합법화된 국가 중에서는 우리나라보다 낙태율이 낮은 국가도 있다. 그 국가의 국민성이 특히나 높다거나 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낙태율을 낮추고 싶다면 낙태를 금지시킬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할 것이다

/이희성 경상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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