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28] 브레디우스 박물관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28] 브레디우스 박물관
  • 경남일보
  • 승인 2019.04.18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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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출신 아브라함 브레디우스(Abraham Bredius, 1855-1946)는 네덜란드 최초의 미술학자이면서 수집가 및 큐레이터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던 그는 어려서부터 미술 작품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고, 점차 작품에 대한 안목을 키워 나갔다. 특히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큰 감명을 받으면서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에 대한 연구를 결심했다. 이후 브레디우스는 자신의 안목과 지식을 가지고 네덜란드에 있는 박물관들이 좋은 작품을 매입 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그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 예술 작품이나 건물 등을 보존하는 일과 그것을 복원하는 작업은 작품을 발견하는 일만큼 중요하다고 여기며 후대에까지 전해 질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브레디우스는 1889년부터 약 10여년간 헤이그에 위치한 마우리츠하우스(Mauritshuis)의 관장을 맡았다. 그는 꾸준히 개인 수집가들과 박물관과의 접촉을 통해 마우리츠하우의 컬렉션을 늘려나갔다. 매입 예산이 초과 되면 자신의 사비를 들이면서까지 비용을 충당하기도 했다. 렘브란트의 ‘Saul and David’를 포함해 오늘날 마우리츠하우스를 가장 대표하는 작품 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도 브레디우스의 노력이 만들어낸 결실이다.

 
아브라함 브레디우스(Abraham Bredius,1855-1946)


이후 브레디우스는 건강상의 문제로 요양을 위해 프랑스 모나코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그는 헤이그에 있는 자신의 저택을 박물관으로 개조해 그동안 수집한 회화 작품들과 함께 도자기, 은 장식품, 엔틱 가구 등 200여점 등을 대중들에게 공개 했다. 그러나 곧 브레디우스의 박물관은 문을 닫게 되었고, 소장품들은 창고로 옮겨져 한동안 빛을 보지 못한 채로 남겨져야 했다.

이후 브레디우스를 지지하고 그의 컬렉션을 사랑한 애호가들은 박물관의 재개관을 촉구 했고, 여러 방면으로 지원을 시작했다. 그 결과 1990년 재개관한 박물관은 한 때 브레디우스가 열정적으로 몸 담았던 마우리츠 하우스 맞은편에 자리 잡으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Rembrandt van Rijn, 1606-1669 164.5 cm x 130 cm / 마우리츠하우스 소장 .브레디우스가 구입한 렘브란트의 작품 중 하나
브레디우스 박물관 외관
브레디우스는 특별히 네덜란드 출신화가 렘브란트와 얀 스텐에게 큰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두 화가의 작품을 수집하는 일에 열정적이었던 것은 물론 처음으로 그들의 작품 전체를 정리하여 재조명 시켰다.

우리에게 조금 낯선 이름의 얀 스텐은 17세기 네덜란드 장르화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장르(genre)는 ‘종류’를 의미하는 말이기에 장르화가 초상화, 풍경화, 역사화, 종교화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다소 어색해 보인다. 그러나 장르화는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부분이며, 어느 박물관에서나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하다. 이것은 네덜란드의 종교적 상황과 관련 지을 수 있는데, 당시 네덜란드의 국교가 신교(프로테스탄트)였다는 것에서부터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신교는 구교의 사치스러운 장식을 거부하며 그에 관해 큰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종교개혁 이후 네덜란드가 신교 국가가 되면서 이곳 중심으로 활동했던 화가들은 더 이상 교회를 위한 종교화만을 그리지 않아도 되었던 것. 주제 선택에 있어서 훨씬 자유로워진 화가들은 자연스레 일상생활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종교화 보다 가벼운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일상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은 딱히 그에 걸맞는 명칭을 갖지 못했고, 그냥 장르화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러한 속 사정을 가지고 있는 네덜란드 장르화의 중심에 있는 화가가 바로 ‘얀 스텐’이다.

얀 스텐은 당대 최고의 풍경화가 얀 반 호이엔(Jan van Goyen)에게서 그림을 배우다가 스승의 딸과 결혼해 여덟 명의 자식을 두었다. 그림 그리는 일 만으로는 생계 유지가 힘들었는지 그는 양조장을 운영하기도 했다가 여관 겸 주점을 운영하며 겸업 했다. 이러한 상황은 얀 스텐의 그림 주제가 자연스럽게 서민들과 그들의 일상생활에 녹아내릴 수 있었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일상생활은 언제나 그에게 그릴거리를 마련해 주었고, 그것은 곧 얀 스텐다움을 상징 했다.



 
얀 스텐의 초기 작품으로 추정 되는 이 그림은 술에 취한 남자가 아내로 보이는 여자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나타냈다. 얀 스텐은 이러한 일상의 모습을 자주 작품의 주제로 선택했다. 패널에 유채/26x35cm


대체로 그의 그림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앉아 술을 마시며 떠들썩한 모습을 하고 있거나, 정돈 되지 않은 실내를 여과 없이 나타내고 있어서 그림 자체가 흥겹다 못해 어지럽고 너저분해 보이기까지 한다. 네덜란드에서 ‘얀 스텐 스러운’ 혹은 ‘얀 스텐의 집안일상’이라는 말이 통용 될 정도니, 이 정도면 자신만의 컨셉을 잘 잡았다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림에서 보이는 너저분한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400점 이상이 넘는 그의 작품 대부분에는 교훈적인 메시지가 숨어있다. 그는 그림에 나타난 행동을 따라하라고 권하기보다 깨우침이나 경고하는 의미를 더욱 강하게 나타냈다. 얀 스텐은 장르화 뿐만 아니라 역사, 종교, 신화 등 다양한 주제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녹여냈다. 브레디우스 박물관이 보유한 또 하나의 작품은 이솝 우화를 주제로 삼아 표현한 그림으로 그의 화풍을 조금 더 자세히 관찰 할 수 있다.
얀 스텐(Jan Steen) 1625?1679 “The satyr and the peasant” 1660년 작 /캔버스에 유채/97 x 120 cm,
그림 왼편에 서 있는 것은 사티르 혹은 사티로스라고 불리며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의 모습을 한 숲의 정령이다.

이 이솝 우화의 내용에 따르면, 한 남자가 추운 겨울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중 사티르를 만났다. 사티르는 어둠 속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남자를 딱히 여기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려 한다. 사티르의 집에 도착한 남자는 그의 손에 입김을 불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티르는 그 까닭을 물었고 남자는 손을 녹여 따뜻하게 하기 위함이라 대답했다. 식사가 시작되자 남자는 그릇을 감싸 쥐고 또 한번 입김을 불기 시작했다. 그의 의아한 행동에 사티르가 이유를 묻자, 남자는 음식이 너무 뜨거워 혀를 데지 않기 위해 식히기 위함이라 대답했다. 그러자 사티르는 크게 화를 내며 남자를 집 바깥으로 쫓아내고 말았다. 같은 행동으로 두 가지의 반대되는 결과를 나타내려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사티르와 남자는 ‘얀 스텐스러운’ 분위기에 둘러싸여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 흥겨운 분위기와 메시지를 함께 던진다.



주소 :Lange Vijverberg 14, 2513AC, Den Haag

운영시간 :화~일 11:00~17:00

홈페이지 :https://en.museumbredius.nl/

입장료 :성인 6유로, 19세 이하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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