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91)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91)
  • 경남일보
  • 승인 2019.04.2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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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晋州) 속의 진주(眞珠)를 찾다
 
 
◇문학의 품격이 깃든 한국시조문학관

필자가 사는 진주에는 유심히 바라봐야만 찾아낼 수 있는 진주(眞珠)가 있다. 지금까지 먼 곳으로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을 다녀왔는데, 이번에는 필자가 사는 진주에 숨어있는 진주(眞珠)를 직접 탐방하여 ‘나’와 ‘진주’의 참모습을 찾고, 진주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기 위해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시창작반 수강생들과 함께 시조문학의 진주(眞珠)가 깃들인 ‘한국시조문학관’, 인권운동가로서 형평운동에 투신했던 ‘강상호 선생 묘소’, 힐링길의 진주(眞珠)인 ‘진주에나길’을 탐방했다.

진주시내에서 새벼리 쪽으로 난 길 모퉁이를 돌아 석류공원 조금 못 미쳐, 한국시조문학관과 김희혜미술관 안내판이 도로변에 서 있다. 100여 미터를 올라가자, 한국시조문학관 관장인 김정희 시조시인께서 문학관 문앞까지 나와 우리를 맞이해 주셨다. 먼저 차부터 한 잔 하자며 보문산방으로 안내했다. 차를 마시면서 관장님께서 부군(김상철, 전 경남과기대 총장)과 함께 새로운 농법으로 키운 채소와 묘목 재배를 하면서 힘들게 살림을 일구었던 얘기며, 전통문화 계승과 시조 부흥을 위해 기꺼이 한국시조문학관을 건립한 얘기를 들을 때는 코끝이 찡해 왔다.

각종 단체의 세미나, 문인들의 문학토론 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는 한국시조문학관은 문인들의 집필을 비롯한 문학체험활동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시조문학관에는 문예지를 비롯한 각종 도서 만여 권과 서예작품, 시화 등을 전시해 놓은 시경루(詩境樓)와 문인들이 모여 시담을 나눌 수 있는 보문산방(寶文山房), 지금 진행중인 고시조 문학관, 그리고 따님의 그림을 전시해 놓은 김희혜미술관인 유미헌(惟美軒)이 있다. 그리고 보문산방 안 벽면을 통유리로 만든 집필실은 남강과 진주시가지, 월아산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치 한 폭의 명화를 전시해 놓은 것 같았다. 추사 선생의 원본 글씨인 시경루와 추사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여 새긴 보문산방의 현판은 문학관의 품격을 더욱 높여주는 듯했다. 한옥으로 지어놓은 건물은 웅장하면서도 주인의 품성을 닮아서 그런지 안온한 느낌이 들었다.



 
 
 
◇민족혼과 생명사랑을 소장하고 있는 공간

시경루에 전시된 서적들은 고서적에서 현대의 문예지까지 무척 다양했다. 그 중에서도 필자의 눈에 확 들어온 책이 하나 있었다. 바로 문예지 ‘백민(白民)’이다. 소설가 김송(본명 김현송)이 일제하에서 문화에 굶주렸던 국민들에게 문학을 통해 국민들의 정신세계를 배부르게 하고 민족의식을 깨우치게 하기 위해 발간한 잡지가 백민이다. 1945년 12월에 창간되어 1950년 3월 통권 21호를 끝으로 종간된 ‘백민’은 ‘백의민족’(白衣民族)의 준말이며, ‘상하 계급 없는 민족의 평등과 전세계 인류의 평화’를 이룩하는데 조금이라도 이바지하고자 하는 뜻을 실천하고자 만든 잡지다. 일제강점기 직후, 일제에 의해 뜯긴 민족의 자존감을 되찾고자 하는 정신이 담긴 문예지인 것 같아 한동안 눈길이 ‘백민’에 머물러 있었다. 특히 관장님의 부친이 항일독립투사였다는 점과 문학관 바로 옆에 형평운동가인 강상호 선생의 묘소가 있다는 점도 관장님이 ‘백민’을 애지중지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유미헌에는 관장님의 따님인 김희혜 화백의 그림을 전시해 놓았다. 아래층은 세미나실을 겸한 전시실이고 2층은 그림만 전시해 놓았다. 그림들은 화조화(花鳥畵)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미술평론가인 신항섭 선생은 ‘꽃을 소재로 하면서도 발색을 억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일까, 시각적인 현란함 대신에 정신적인 깊이를 지향하는 듯한 분위기가 짙다. 특이한 점은 적지 않은 수의 작품은 화들짝 피어난 절정기의 꽃이 아니라 이미 기력이 쇠진하여 화려한 빛깔을 잃어버린 시드는 꽃이 눈에 띄게 많다’고 평했다. 그리고 꽃 축에도 들지 못하는 파꽃에 대한 관심은 세상 사람들한테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에게도 애정을 쏟은 김 화백의 생명존중 정신이 잘 깃들여있음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작품 ‘꿈은 사라지고 2’에는 노자의 미추관(美醜觀)과 더불어 지는 꽃 또한 피는 꽃 못지않게 아름답다는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그림이다. 그림 하나하나에 생명에 대한 깊은 사유(思惟)를 담으려고 노력한 김 화백은 자신의 삶을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 마흔두 살의 아까운 나이에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그림을 설명하시던 관장님이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걸 지켜본 일행들 모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저울처럼 공평한 세상을 꿈꾼 강상호 선생

문학관 뒤편은 말 그대로 꽃동산이었다. 2만여 평이나 되는 과수원에 심어놓은 유실수는 잘 정리되어 있었고, 온갖 꽃들이 봄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 과수원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 우리가 준비해간 점심을 먹고, 관장님께서 준비해 놓은 다과를 먹으면서 시담(詩談)을 나눈 뒤 형평운동가 강상호 선생의 묘소를 찾았다.

문학관에서 200m 정도 떨어진 산기슭에 선생의 묘소가 있었다. 함께 간 일행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선생의 묘소 앞에 한 줄로 서서 묵념을 올렸다. 일제강점기에 최하층민이던 백정들은 입학원서나 이력서에 도한(屠漢)이라고 기재하거나 붉은 점으로 표시해야 하는 등 심한 사회적 차별을 받았다. 이에 강상호 선생을 비롯한 일부 양반들과 백정신분의 자산가인 이학찬이 1923년 4월 형평사를 조직하여 백정의 신분해방과 계급타파를 외치며 인권운동을 펼쳤다. 양반신분인 선생이 기득권을 포기한 채 계급타파를 부르짖은 것은 백정의 해방운동과 더불어 일제치하 억압받는 우리 민족의 인권과 주권을 회복하려는 신념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인권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을 하신 분들의 거룩한 뜻을 기리기 위해 1996년 촉석문 앞에 형평탑을 세웠는데, 진주대첩광장 조성으로 인해 2017년 경남문화예술회관 옆 남강변에 옮겨 세워놓았다. 저울처럼 공평한 세상을 갈망해온 강상호 선생의 꿈이 깃든 묘소를 떠나 ‘진주에나길’ 2코스의 일부를 명상힐링 걷기를 했다. 석류공원-대나무숲길-편백나무 어울림숲길-황토길-고사리길-석류공원으로 순환하는 트레킹인데, 명상과 힐링을 겸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남강변 새벼리에 있는 시조문학관과 강상호 선생 묘소, 진주에나길에 담긴 진주의 정서와 진주정신을 만나고 온 필자의 몸에는 짙은 봄꽃 향기가 배어 있었다.



/박종현 시인·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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