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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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9.04.25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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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진주의 문인들, 그 중에 평론가 송희복(6)
8년반, 무직의 연구자·비평가 활동
원고지와의 긴 싸움, 위기이자 기회
텍스트와 힘겨루기에서 배운 것은
나 자신이 박해받는 텍스트 라는 것


문학평론가 송희복은 한때 서울의 달동네인 금호동에 있는 단칸 옥탑방 시절(1990-1997)에서 단행본 열권 정도의 원고를 이미 생산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9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자마자 그해 2월 말에 고등학교 교사직을 그만 두었다. 그는 그해 3월초부터 모교의 한 연구소에 소속된 무급 조교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진주교육대학교 교수로 임용된 1998년 9월 1일까지 8년 6개월에 걸쳐 무직의 연구자, 비평가로 활동했다. 그는 이 시기를 스스로 말하기를 ‘인생 최대의 암흑기’라고 어딘가에 적었다. 그의 얘기를 들어가 본다.

“그 8년 6개월은 제 인생의 위기이면서 동시에 기회이기도 했지요. 그 좁은 옥탑방에서 천장까지 가득찬 책들과 사제(私製) 원고지와 기나긴 싸움을 한 시기였지요. 교수직 원서를 낸 회수도 아마도 40, 50회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수 채용 심사에서 40, 50번이나 떨어짐으로써 좌절감을 견디는 데 점차 단련되어 갔지요. 문학을 통해 접한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이 텍스트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느 날에 텍스트와 힘겨루기를 하면서 섬광처럼 깨달은 사실은 나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박해된 텍스트라는 것에 대한 자각이었어요.”

그는 서울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다. 모교에서는 한 사람의 우군도 없었고 문단이나 대학가는 물론 언론계에서도 외면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송희복이라는 기표의 ‘암흑기의 박해 텍스트’는 하나 하나 자신의 텍스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1998년 9월 1일 진주교육대학교 교수로 임용될 때 열두 권의 단독 저서를 출간했다.

그의 초창기 연구서 가운데 ‘해방기 문학비평 연구’(문학과 지성사, 1993)와 ‘한국문학사론 연구’(문예출판사, 1995)는 역저로 평이 나 있다. 하지만 초로의 나이에 이른 지금의 그는 그 시절의 저술들 가운데 소위 현장비평집인 ‘다채성의 시학’(세계사, 1995)과 ‘생명문학과 존재의 심연’(좋은 날, 1998)에 가장 큰 애착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학문이 엄정하고도 가치 중립적이라면, 비평은 비평가 자신의 삶이나 운명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가 서울에서 계속 비평가와 학자로 남아 있었더라면 중앙문단에서 두각을 나타내거나 학계의 거목으로 우뚝 설 수 있었겠지만 우리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과, 교육의 현장에서 느끼는 폭넓은 인간애를 결과적으로 어찌 가질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이런 점에서 모든 일은 운명처럼 이루어져 간지도 모른다.

송희복의 평론집인 ‘다채성의 시학’의 서문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문학은 거짓되거나 잘못된 세상을 보고도 외면하지 않는 정직한 표현욕구로서의 ‘삿대질’로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다시 말해 포괄적인 안목에서 보자면 문학에는 문학만이 가질 수 있는 언어의 심미적 다채성과 도덕적 존엄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문학을 두고 ‘삿대질’이라고 비유했다. 좋은 발상이다. 이 삿대질은 부박한 욕설의 세평이라기보다 언어의 아름다운 다채로움과 시적 정의와 같은 응분에 대한 기대감이 스미어 배어 있어야 한다는 것, 이 삿대질이라는 말에 울림이 있다.

‘다채성의 시학’은 그가 1990년에서부터 1995년에 이르기까지 6년에 걸쳐 발표한 현장비평집이다. ‘격변기 지식인 소설의 중도적 전망’, ‘허수경 시집 비평문’, ‘박상우론’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가 교수로 임용되기 전에 간행한 ‘생명문학과 존재의 심연’은 사실상 두 번째 현장비평집이다. 송희복 교수는 앞으로 1990년대의 현장비평 가운데 엄선된 비평선집을 내어서 그의 비평의 정수를 선보여 주었으면 한다.

근간에 송희복 교수는 북천 이병주문학관에서 이병주 소설 <관부연락선>에 대한 연구발표를 했다. 그런 뒤 경남일보 칼럼에 <지리산의 사상과 진주의 사상>을 쓴 바 있다. 그 발표 때 경희대 김종회 교수가 송교수에게 지금까지 낸 저서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송교수는 “45권이 실제 낸 책이고 5, 6권 분량은 아직 미발표로 있고 앞으로 죽을 때까지 80여권은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김종회 교수는 “송교수님 80여권이면 이번에 돌아가신 김윤식 교수의 160여권 발간기록에 과반 기록은 되겠습니다. 대단해요”하고 덕담을 나누었다. 놀라운 덕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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