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플러스[218]하동 황장산
명산플러스[218]하동 황장산
  • 최창민
  • 승인 2019.04.2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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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산 촛대바위


황장산(黃腸山·942m)이 하동에 있다는 걸 예전에 알았지만 지리적으로 서부경남이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어 미뤄왔었다. 최근에는 개인적으로 갑자기 호흡이 가빠져서 산에 못 오르는 증세(?)가 생기는 바람에 또 잠시 미뤄뒀었다. 차례가 되기도 했거니와 증세가 완화돼 시험 산행이라도 해볼 요량으로 택한 산이다.

경북 문경지역 백두대간에 있는 황장산(1077m)과 비교해 높이가 조금 낮지만 풍광과 주변 볼거리 면에서 덜하지 않다.

이 산 뿌리도 문경 황장산처럼 백두대간이다. 지리산 넘버쓰리 반야봉에서 출발한 산줄기가 남으로 흘러 노루목 삼도봉 통꼿봉 흰듬덤을 따라 불무장등(不無長嶝)을 형성한다. 장등은 중간 당재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고도를 높여 촛대봉과 황장산을 치켜세웠다가 마지막 구간 화개에서 섬진강으로 꼬리를 감춘다. 불무장등 좌우에는 사족을 달 필요가 없는 명성의 천년사찰과 원시계곡, 피아골과 연곡사, 화개골, 쌍계사 칠불사가 위치한다. 재미 있는 것은 이번 산행의 출발지 당재에 스민 얘기다. 칼럼니스트 조용헌은 조선시대 반체제 승려들의 비밀결사 조직인 당취(黨聚)들이 은거했다고 썼다. 이들은 갑질하는 토호세력과 지방의 탐관오리 등을 혼내주는 역할을 했는데 만학천봉 산이 깊은데다 신출귀몰하기까지 해 큰일 한번 치르고 지리산 깊은 밀림에 숨어버리면 찾을 수가 없어 효율적으로 활동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 산에서 조형성이 두드러지는 것이라면 촛대봉과 촛대바위 정도, 대부분 올망졸망 평범한 육산 봉우리가 춤사위를 하듯 첩첩이 이어진다. 불무장등은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를 가르는 역할도 한다.

▲하동군 화개면 목통마을 목통교→당재→황장산 정상→중기능선 삼거리→새껴미재→촛대봉(728m)→틈새바위→촛대바위→삼각봉→작은재(둘레길)→화개장터. 13㎞에 휴식포함 6시간 소요.

 
버찌 잎과 꽃잎


▲9시 45분, 목통교에서 출발한다. 주변에 황장산 안내판이 있어 산길 찾기는 쉽다. 임도를 따르다가 산으로 들어간다. 자잘한 꽃잎을 가진 하얀 싸리꽃이 시든 만큼 주변 나무는 초록이 짙어간다.

산에서 만난 노(老)부부는 응개나무순과 두릅을 따서 포대째 쌓아 놓고 하산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임산물 재배지로서 산객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곳이다.

주변에는 폐농한 묵정밭이 많이 보였고 군데군데 임산물 채취꾼들이 창고로 활용하는 옛 폐가들도 눈에 띄었다.

출발 40분만에 당재에 닿는다. 당취의 흔적은 당최 없고 둘레길 당재 종점이라는 이정표만 멀뚱하다. 멀리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치는 산허리에 버섯같은 지붕을 가진 농평마을 가옥이 보였다. 이 길은 지리산 둘레길 목아재∼당재 외통수 길로 수년전 둘레길을 주행할 때 다녀 간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승려들의 비밀 결사대인 당취들은 이곳에 은신하면서 가짜승려 행세를 하며 돌아다니는 수배자·범죄자들을 검문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토색질을 일삼는 탐관오리나 소작농을 착취하는 부자들을 혼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산 아래에는 신라고찰 연곡사와 단풍의 계곡 피아골 계곡이 위치한다. 연곡사에는 천년이 되도록 정교함을 잃지 않은 국보 동부도, 북부도 2기가 보존돼 있다.

당재에서 황장산까지 4.2㎞구간은 부드러운 육산이다. 고도를 조금 높였다고 초입에서 볼수 있었던 초록잎은 사라졌고 시든 진달래가 발끝에 채이고 갓 피어나는 철쭉이 향기를 풍긴다. 공존의 계절, 계절의 경계를 걷는다.

낮 12시께, 정면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울 때면 황장산에 가까워진 것이다.

황장산 정상, 사방 전망이 트였으나 온통 미세먼지가 뒤덮고 있어 지리산과 인근 백운산 산세를 볼수 없었다. 산 이름 황장(黃獐)은 노루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불무장등의 분기점인 반야봉 아래 노루목이 산 이름을 만든 것으로 풀이된다.

원래 지명은 ‘고스락까지 멀고도 먼 산’이라는 뜻의 항장(項長)이었지만 어느 시기에 한자 노루장(獐)을 써서 ‘황색 노루’라는 의미를 담은 황장산으로 쓴 것을 추측해 볼수 있다. 불무장등은 ‘없는 것이 아닌, 긴 봉우리 혹은 고개’란 뜻, 불교용어에서 왔다.

취재팀은 정상에서 20분 정도 더 이동해 물푸레나무 고로쇠 서어나무 참나무 군락지를 지났다. 그리고 유독 빛을 내는 소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는 장등에서 오후 1시까지 휴식했다. 휴식 장소를 정하는 것도 산행의 묘미란 걸 알만한 사람은 안다. 전방이 트인 난간에다 철갑옷 치장한 독야청청 (獨也靑靑)소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는 곳이라면 금상첨화다.

 
철쭉
진달래
다시 걷는 길은 완만한 경사도를 보여주는 부드러운 육산, 거기에다 등산로를 살짝만 벗어나도 솔잎이 수 년동안 많이 쌓여 있어 푹신푹신하다.

황장산을 넘고, 또 한 두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다 보면 전체적으로 편안한 산행을 할수 있는 내림길의 연속이다. 정상에서 30분, 1.4㎞를 더 걸어 중기능선 사거리에 닿는다. 길을 놓칠 염려가 있는 곳인데 마을로 내려가지 말고 직진 주행하면 된다.

새껴미재, 전망대를 지나고 1시 50분, 촛대봉이다. 조망이 트이지만 궂은 날씨는 계속 시야를 가린다. 구멍이 난 것처럼 보이는 틈새바위를 지나 촛대바위까지 내림 길이 계속된다. 그러니까 황장산코스는 화개에서 치오르는 것보다 목통마을에서 당재→황장산까지 고도를 급히 올렸다가 고도를 낮추면서 편안하게 주행하는 산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차량회수의 편리성 때문에 화개에서 당재로 주행하는 산행객도 적지 않다.

오후 3시께, 둘레길 작은 재에 닿는다. 당재를 큰 재로 보고 상대적으로 작은 재라는 의미로 들린다. 지리산 둘레길이 지나는 고개로 오른쪽이 구례, 왼쪽이 화개동천과 법화마을이다.

1920년대 자연주의 소설가 김동인은 ‘감자’를 통해 리얼한 사회적 환경을 그렸다. 주인공 복녀는 순수한 시절 이 화개동천 산기슭에서 사랑의 감정을 키우고 성장하지만 20세 연상의 동네 홀아비에 팔려가는 신세가 돼 지난(至難)하고도 타락한 삶의 길을 걷는다.

4∼5기의 무덤 군이 나오면 산행의 마지막 구간이다. 곧바로 등장하는 전망대에선 섬진강을 넘어가는 남도대교가 보인다.

 
 


조선 숙종 때 성리학자 우담 정시한(1625~1707)은 이 장등을 찾았다. /올해도 여전히 봄은 분주하다. 매화와 산수유 꽃소식을 들은 지 채 며칠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섬진강변과 쌍계사에 이르는 길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3시 50분, 시절은 또 다시 강물처럼 더 흘러 쌍계사에 벚꽃이 모두 져버렸고 화개장터 뒷산 대밭에 죽순이 돋았으며 댓잎에는 윤기가 감돈다. 남도대교 아래 섬진강에 물비늘이 반짝이는 눈부신 날이었다.

진주서에서 근무하다 하동서로 전출해 화개파출소에서 순환 근무 중인 황찬원 소장은 이날 본보 명산 플러스 팀의 산행 길을 안내해줬다. 목통으로 가는 길, 곳곳에 드넓은 야생 차밭이 차창에 스쳤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황장산 전망대, 미세먼지가 조망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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