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남의 탓만 할 것인가
언제까지 남의 탓만 할 것인가
  • 경남일보
  • 승인 2019.04.29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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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객원논설위원·경상대학교 교수)
기원전 50년대 로마 호민관 클로디우스는 빈민층에 싼값으로 밀을 나눠주던 제도를 무상배급으로 바꾸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위한 조치였다. 식량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지자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났고 재정 압박도 커졌다. 서구 역사상 최초의 급진 복지정책은 10년도 못 가고 폐기되었다.

우리사회에도 클로디우스의 실패한 실험을 떠 올리게 하는 주장과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전면 무상급식으로 물꼬를 튼 ‘공짜의 유혹’은 의료, 교육, 소득, 복지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고소득자에게만 세금을 더 물리자고 하면서도 근로소득자와 자영업자의 상당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소득세를 내는 현실은 외면하고,‘조세정의’라는 이름으로 세금부담을 대폭 늘리는 것은 오히려 경제상황을 어렵게 한다.


사회 탓, 나라 탓, 모두 남의 탓

모든 것을 남의 탓, 사회 탓, 나라 탓으로 돌리는 ‘책임감의 실종’이 이런 발상의 저변에 깔려 있다. 우리 역사상 가장 풍요롭게 자란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층의 불만이 더 큰 것도 아이러니다. 가난하고 힘들게 삶의 대부분을 보냈지만 누구를 탓하기보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했던 어른 세대의 목소리는 뒷전에 밀려나기 일쑤다.

많은 국민들이 어려운 현실에 좌절감을 느끼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현재의 경제상황에 대해서도 정밀한 사실 검증과 국내외 비교분석도 안 거친 주장들이 객관적인 진실인양 전파되고 있다.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일부 지식인과 정치인들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선동하는 데에 몰두하고 있다. 잘못되고 어려운 것은 모두 남의 탓이라는 단순논리가 판을 친다.

세상을 경쟁력이나 효율성의 잣대만으로 재단하기 어려워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부모를 잃은 청소년, 치매와 빈곤층 노인, 신체 및 발달 장애인 같은 약자를 감싸 안는 것은 국가와 사회의 의무이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가족,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나 직장을 찾는 취업희망자, 저소득 가정도 보듬어야 한다. 하지만 국민 세금을 동원한 무차별 퍼주기식 복지시책은 안된다. 복지 천국이라던 유럽이 지금 겪는 후유증을 보면서도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해법을 외면하면 국민도 국가도 불행해진다.



자유와 책임은 같이 가는 것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여러분이 필요한 것을 무엇이든 줄 수 있는 강력한 정부는 여러분으로부터 무엇이든 빼앗아 갈 수 있는 강력한 정부가 된다”며 거대정부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주요 지지기반인 흑인사회를 향해 “투덜대거나 징징대지 말고 앞으로 나가자. 떼를 쓰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며 일침을 놓았다.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용기와 소신을 우리 지도자들도 배워야 한다.

스웨덴 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은 저서 ‘아시아의 드라마’에서 사회 구성원의 가치관이 한 나라의 빈곤과 발전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라고 역설했다. 지속적 발전을 위한 핵심가치는 자유와 책임이다. 평등추구나 국가개입을 접목하더라도 보완하는 선에서 그쳐야지 본말이 뒤바뀌면 곤란하다. 미국 저널리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논설은 우리에게도 시사 하는 바가 많다. “젊은이들이 안락함에서 벗어나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그리고 먼 훗날의 이익을 위해 지금의 고통을 감내하는 자세를 갖추게 해야 한다.”
 
김진석(객원논설위원·경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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