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일하는 사람들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
  • 박도준
  • 승인 2019.04.29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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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준(지역부장)
박도준기자
박도준기자

노동의 가치가 추락하는 만큼 명품의 소유 여부에 따라 인정받는 사회다. 사람의 마음과 지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치장하고 있는 물질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노동자와 기업가들은 노동의 가치보다는 돈에 가치를 두고 있다. 직장의 좋고 나쁨의 여부도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결정된다. 노동자들의 꿈도 노동을 하지 않는 업자가 되는 것이다.

올해 들어 ‘일상을 담다’라는 기획물을 맡게 됐다. 음지에서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일상과 이야기를 듣고 사진에 담아 보도함으로써 제자리에서 열심히 살며 사회의 근간을 지켜온 이들에게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자는 의도로 기획했다.

이들과 함께하며 느낀 것은 나름의 노동 철학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늘의 뜻(날씨)에 따라 일하고, 일할 땐 성심을 다했다. 이들을 보면서 중국 당나라의 백장 회해 선사가 실천한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이 떠올랐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그날은 먹지 않는다는 마음의 자세,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배워야 할 노동의 가치이다.

첫 회에 나갔던 문어 낚싯배를 모는 구영민 선장의 철학은 정직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국가에서 나가지 말라고 하는 날을 제외하면 반드시 출어한다. 그가 쉬는 날은 바다 날씨가 좋지 않을 때, 물때가 안맞을 때, 배를 수리할 때, 이외는 반드시 출어한다. 조과가 좋지 않을 때는 그가 잡은 것을 다 나눠주거나 시간을 연장해 배질을 한다. 그는 자신의 배에 타는 사람들의 조과를 책임지려는 참 선장이다. 이를 위해 스스로를 잘 관리하고 있다. 아침은 간편식으로, 점심도 먹지 않고, 조업을 마쳐도 술은 적당량 외는 마시지 않는다. 과식을 하면 잠이 와 배의 안전을 담보할 수가 없고, 과음은 낚싯배의 일정을 그르치기 때문이다.

서포 굴을 채취하고 까는 사천 서포 진설윤씨와 정차숙씨 부부는 밀물과 썰물의 차로 바닷속에 잠겼다 나왔다 하며 자연산처럼 수하식으로 굴을 양식한다. 기상여건에 맞춰 생활한다. 밀물이 되어야 굴을 채취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일정은 물때에 맞춰 생활한다. 이들 부부는 신선도를 제일로 삼는다. 주문이 들어 오면 한 상자라도 빨리 택배로 보내려고 최선을 다한다. ‘나이 든 사람이 허리가 굽지 않았다면 타지 사람’이라는 말과 ‘쌔빠지게 굴 까서 번 돈들은 병원에 다 갖다 바친다’는 말을 듣고서는 가슴이 멍멍했다. 노동의 힘듦을 대변하고 있는 말이지만, 이런 분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지 않았나 싶다.

소나무재선충병 예찰방제단의 톱사인 이종희 조장은 죽으면 묻힐 몸이라며 부지런하기로 단원들 사이에 소문난 일꾼이다. 단원들은 한때 사회에서 간부들로 이름을 날리던 사람도 많이 있었다. 퇴직하고 집에 있으면 몸이 근질근질해 위험하고 힘든 일들을 자처한 사람들이다. 평균 63~64세인 이들은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겼다. 칼바람이 부는 영하의 온도 날씨 속에 음지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는 이들이 있어 그나마 재선충의 피해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노동자의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공장이나 농어촌에서 일하려는 사람들이 없다. 시쳇말로 손에 흙 묻히기 싫은 것이다. 궂은 일들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거의 다하고 있다. 소나무재선충병 예찰방제단원으로 젊은 사람을 뽑아도 하루도 견디지 못하고 나간다고 한다.

취재 중 느낀 것은 이들은 노동의 가치를 돈에만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을 쫓아 노동을 하면 봉건시대 노예와 무엇이 다른가. 이들은 노동을 함으로써 살아가는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었다.

박도준 지역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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