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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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9.05.0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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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지역의 ‘계림시회’ 동인회(2)

달변가 이일균 시인의 시회 창립담
닭띠 동갑내기 7명이 찍은 기념사진
그렇게 모인 작은 시회가 계림시회
‘함께 멀리 갈 친구’의 문학연대 탄생
‘계림시회’ 이달균 동인은 입담이 좋다. 그리고 사회를 잘 본다. 10여년 전이던가 밀양 표충사 강당에서 경남문인협회 여름 세미나가 열렸을 때 필자는 화요문학회 멤버들과 같이 차에 동승하여 참가했었다. 그때 기억이 나는 사람은 박우담, 김윤숭,그리고 화요문학회 조향옥 회원이다. 올 때는 조향옥 회원의 트럭을 타고 왔다는 기억이 아슴프레하다.

그날 저녁에 세미나가 끝나자 마자 뒤풀이행사가 시작되고 경남문협이 공천한 뒤풀이 진행자는 이달균 시인이었다. 박수가 터져나오고 누구나 사회는 요지부동 이달균이라는 등식을 가지고 있는 양 소리를 질러 환영하고 마땅히 오늘 밤의 즐거움을 허락한다는 뜻으로 이달균을 연호하기도 했다.

나는 이때 개천예술제를 창시한 설창수시인을 생각했다. 그분은 웅변가였다. 사회를 잘 보는가는 모르지만 대중 연설에 대가였다. 그분은 웅변으로 정치를 한 마지막 세대였을 것이다. 무대에 나서는 설시인은 장발과 두루마기와 풍채로써 완결품 환경을 갖추었다. 딱 그분이 그 자리에 서 계신 것이다. 그런데 다채한 그런 부분까지 연상하는 것은 아니고 이날 밤 이달균은 꼭 그가 나서야 한다는 청중의 열망은 확보해 가지고 있었다.

이쯤하고 필자는 ‘계림시회’하면 여러 시인들을 떠올렸지만 먼저 이달균 시인과 인터뷰하고 싶었다.사회하는 그 솜씨로 ‘계림’을 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핸드폰은 열리지 않다가 반나절 후에 문자로 응답해 왔다. 지금 베트남이고 다음주에는 귀국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메일로 계림시회 발족의 근원을 풀어주었다.

2011년에 이달균은 시집 ‘문자의 파편’(5.28)을 준비하면서 해설을 한 평론가에게 맡기지 않고 친구들의 초대글을 얻어 싣고자 했다는 것이었다. 초대에 응해준 이월춘은 <마산의 흙먼지와 시를 위하여>를 보내오고 이상옥은 <평사리행 국도에서 이달균을 추억하다>를 보내오고, 김혜연은 <내 친구 시인 이달균>을 보내오고, 정이경은 <내 오랜 기억의 집에는 친구가 있다>를 보내오고, 김일태는 <버리기와 버림받기- 이달균의 시를 읽으며>를 보내왔다.

시집 ‘문자의 파편’이 나오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사진작가 김관수의 스튜디오에서 57년 닭띠 동갑내기 친구들 7명이 모여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다. 이때 디카시의 그 즉흥 직관에 해당하는 발상을 가졌는데 이렇게 ‘작은 모임’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그후 창원의 화가들과 함께 옛날식 화전을 열었고 2015년 김경식, 박우담, 최영욱 등을 귓속말로 끌어당겨 드디어 이 ‘계림시회’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달균 시인은 보태어 시회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문학을 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며 외로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혼자 빨리 가기보다 함께 멀리 가기로 마음 먹었고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동질감이 있다면 큰 갈등 없이 오래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문학의 성과는 더 후대에, 눈 밝은 평자들에 의해 가늠될 것이지만 같은 시대, 같은 세대를 사는 우리들은 경쟁과 반목보다는 서로에게 어깨를 빌려주는 친구로서의 문학연대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의도로 출발했다고 하니 ‘계림회’는 오래 갈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신춘시>와 <현대시>가 나름으로는 오래 지속되었지만 신춘시가 먼저 쓰러지고 현대시는 한참 후에 쓰러졌지만 소정의 역할을 하고 쓰러진 것으로 보인다. 경남에서 이 시회의 선배 동인회 ‘흙과 바람’은 나름 지역의 중견들이 모였다는 점에서 장수의 가능성이 있었지만 의욕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의 노끈이 조금 부실했지 않았나 싶다.

그렇지만 이달균 시인이 만들어 보여주는 노끈은 제법 정서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생리적인 환경에서나 장수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우선 이 동인체가 나이를 기준으로 모였다는 점이 특이한 결집이다. 이런 동갑내기들이 만난 문학 동인체는 아마도 나라에서는 이 ‘계림시회’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조건에다 지역공동체로 묶여지는 것이니 더 희귀한 예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달균 시인이 자기 시집 간행 전후로 조직을 완성하는 것이라든지 옛날 시화전 형식이라든지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는다든지 하는 일들이 규모가 있어 보인다. 어쩌면 광복 직후의 설창수 시인 중심의 등불이나 문화운동의 한 측면을 보는 것이 아닐까도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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