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 주는 사람
기다려 주는 사람
  • 경남일보
  • 승인 2019.05.1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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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실(전 진주외국어고교장·신지식인 도서실장)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는다. 봄은 여름을, 여름은 가을을, 가을은 겨울로 바꾸어 놓는다. 비단 자연의 현상 뿐만 아니고 우리 인간의 모습도 바꾸어 놓는다. 거울 앞에선 자신의 모습이 그럴 것이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럴 것이다. 세월의 흔적은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 모든 것이 바뀔 지라도 바뀌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아이는 우리 인류의 미래를 이끌어 갈 주인이기에 더 그렇다. 마침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등 가정에 관한 기념일이 가장 많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의 핵심은 가족이다. 가족은 부모, 자식, 부부 등의 관계로 맺어져 한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이다. 농경사회의 대가족이 물러나고 핵가족이 등장했다. 핵가족의 기본 구성은 부부와 미혼자녀였다. 현대가족의 전형으로 불리던 이 핵가족까지 분화 되어 1~2인의 전자(Electron)가족이 최근 늘고 있다. 가족은 삶을 시작하는 곳이자 인생의 대부분을 의존하게 되는 공동체 이기에 가장 소중한 곳이다. 이렇게 매일 매일 가정을 이끌어가는 부모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자식이 건강하게 태어나기까지 10달을 기다리고, 누워만 있던 아기가 앉기를 기다리고, 앉아만 있던 아기가 서서 첫걸음 때기를 기다린다. 말을 하고 글을 읽고 사춘기가 되면 질풍노도의 시기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고등학생 때는 대학생이 되기를 기다리며 장성하여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 세상풍파를 잘 견디기를 기다린다. 기다림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입사시험 합격자 발표나 병원에서 조직검사 결과 따위를 기다리는 초초한 기다림이 있는가 하면 두고 보자는 식의 원한 맺힌 기다림도 있다. 밥을 안치고 뜸이 들 때 까지 기대감이 가득한 즐겁고 행복한 기다림도 있다.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애리는 일이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사람을 약속한 장소에서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그 사람이 남자이든 여자이든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 설레는 일이다. 이처럼 애절한 사랑의 기다림도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기다린 사람이 있다. 무려 72년이나 기다린 바로 낚시꾼의 대명사로 불리는 강태공(姜太公)이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아내가 집을 나가고 극진(棘津)이라는 나루터에서 지내며 하는 일이라고는 독서와 낚시뿐이였다. 강태공이 낚시터에서 기다린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때였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고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그런 시간, 강태공은 그 때를 낚기 위해 무려 72년의 세월을 기다린 것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학생이 변화될 때까지 기다려 주는 일이다. 때론 기다림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따르기도 한다. 기다려 본 사람은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를 알 것이다. 기다림의 유효기간은 얼마나 될까?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늦게까지 평생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부모다. 기다림도 참으며 기다리는 것과 믿으며 기다리는 것이 있다. 참는다는 것은 인내한다는 의미에서 일반적으로 행할 수 있는 기다림 이라면 부모가 자식을 기다리는 것은 자식이 아무리 잘못해도 언젠가는 사람이 되겠지 하면서, 용서 하면서, 믿으면서, 참으면서, 끝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부모가 우리에게 그렇게 하신 것을 우리는 왜 미처 몰랐을까? 지금은 계시지 않다. 눈물이 난다.
 
고영실(전 진주외국어고교장·신지식인 도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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