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가정의 달에…, 또 어쩌나
[기고]가정의 달에…, 또 어쩌나
  • 경남일보
  • 승인 2019.05.1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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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순(수필가 진주시 가좌동 26통장)
어린이날 새벽에 렌트카 속에서 30대부부와 네 살, 두 살짜리 아들과 딸, 일가족 네 명의 주검이 발견됐다. 가정의 달에 일가족 모두가 그것도 어린이날 어린이 두 명과 함께 말이다. 사채 7000만원의 빚을 갚기 위해 개인회생신청을 하여 매월 80만원씩을 갚아오다가 부부 모두가 실직하는 바람에 이마저도 갚을 길이 없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세간에서는 “왜 한 번 더 손을 내밀지 않았을까. 죽음은 안타깝지만 선택능력도 없는 아이의 죽음은 살인이다”라고 말한다. 말은 맞다. 하지만 상황은 끝이 났는데 지금에 와서 말이 맞으면 뭐하나.

우선 ‘왜 한 번 더 손을 내밀지 않았을까’다. 개인회생신청도 죽을 각오의 용기를 내서 했다고 봐야 한다. 어렵고 힘들 때 빌려 쓰고 갚지못한 양심적 자괴감이 얼마나 컸을까. 변제계획안변경신청도 마찬가지다. 최저생계비를 공제하고 매월 80만원을 갚아가며 가까스로 꾸려온 생활을, 그마저 어렵게 내외 모두가 실직했으니 그 스트레스는 얼마나 컸을까.

개인 회생신청을 한 것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친 것이다. 개인파산신청이나 변제계획안변경신청을 몰라서 안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네 살과 두 살이라면 말 그대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이다. 엄마 아빠랑 차를 타고 어딘가 나들이 가는 줄로만 알고 즐거워했을 아이들. 죽음에 직면한 것도 모르고 천사 같은 얼굴로 잠든 애기들에게 차마 못할 짓을 한 어미애비의 괴로움을 우리가 논할 수 있을까. 애기들은 남겨둘까를 얼마나 고민하였을까. 무능한 부모라고 또 얼마나 자책을 했을까. 남아서 고통 받을 삶보다는 차라리 하늘나라에서 함께하자며 얼마나 모질게 마음을 먹었을까.

하지만 앞서 돌아볼 일이 있다. 법과 제도보다는 등받이가 더 절실한 게 현실이다. 나는 내 이웃과 지인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를 돌아봐야 할 게다. 누구나 말 못할 사연들이 있다. 그러나 그 사연을 해결해 달라는 것도 아닌데 들어 줄 사람조차 없어서 말 못하는 사연으로 남는다. 보이는 것만큼이라도 돌아보고 살면 이웃사람이 보인다. 값져서 귀중한 것만 소중 한 것이 아니다. 값없는 정은 더 소중한 것이다.
 
임정순(수필가 진주시 가좌동 26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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