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부로 독일간 남편, 간호사로 따라간 아내
광부로 독일간 남편, 간호사로 따라간 아내
  • 이웅재
  • 승인 2019.05.22 1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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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넘어 ‘네버엔딩 러브스토리’
서울 신혼부부 독일서 펼친 인생역정
김두한·이경자 씨, 어느덧 금혼식 맞아
독일마을 인연 남해 정착 순애보 이어

타국에서 산업전사로 40여년을 생활하고, 한국에 귀국해서 결혼 50주년 금혼식을 올린 부부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김두한(74)·이경자(73) 부부.

김두한·이경자 부부는 지난 4월 25일 남해군 원예예술촌 유리온실에서 동천교회 정규채 목사 집례로 금혼식을 올렸다.

이날 금혼식을 두고 주위에서는 결혼 1년8개월만에 처자식을 남겨두고 광부로 취직해 독일로 떠났던 김두한 사장과 남편과 생이별한지 2년여 만에 간호사 자격을 획득하고 남편 찾아 독일로 간 이경자 여사의 순애보가 귀한 결실을 맺은 해피엔딩의 순애보라고 칭송한다.

한국에서 결혼하고 독일에서 25주년 은혼식, 귀국해서 50년 금혼식을 올린 이들 부부는 “은혼식과 금혼식 등은 독일에서 아주 귀하게 여기는 행사라 절대 생략 할 수 없다”고 강조하며 “앞으로 75주년 다이아몬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그나마 바라는 목표”라고 웃으며 말했다.

결혼생활 대부분이 희로애락의 연속이라고 말하지만 이들 부부에게는 특히 인고의 노력이 요구됐다.

평범한 가장이 그럴듯한 국내 직장을 내팽개치고 불현듯 독일 광부로 취직하겠다고 했을 때의 주위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극심한 반대의 연속이었다. 하물며 2년 뒤 아내까지 남편이 부른다며 간호사 자격을 획득하고 독일 간다니 친정 식구들이 애기 봐줄 수 없다며 극구 말릴 정도였다 한다.

“반대 반대… 말도 마세요. 제가 다니던 직장이 당시 한국에선 처음으로 소방시설물 기기를 취급하는 곳인데 한달 월급이면 시골 집 한 채 살 수 있을 정도였거던요. 그런데 어느날 비행기 타고 출장 가는 사장을 보면서 가슴이 불타기 시작했습니다. 기회는 독일 광부 모집이었죠. 신청이 받아들여져 하루 견학하고 출국해 독일 광산 지하현장에서 2년 일했습니다. 열기에 숨이 턱턱 막히는데… 힘들었죠. 말도 못하고 숨도 못 쉴 정도로 힘들어서 사표를 냈죠. 3년 기한 못채우면 바로 강제 귀국하는데 그런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힘들었어요.”

김 씨는 결국 아내에게 “제발 보고 싶다”며 도움을 요청한다.

아내 이경자 여사는 “남편이 오라는데 어떻게 해요. 자기가 못나오니 나더러 오라는데”

이렇게 시작된 부부의 독일 생활은 20여년 동안 각자의 직장생활로 이어졌다. 경제적으로는 어렵지 않았다지만 초창기에는 비자 연장으로 한번도 마음 편한 적 없었다고 한다.

부부는 “항상 짐을 싸두고 있었어요. 언제 귀국 명령이 나올지 모르니까”라고 지난날을 회상한다.

이 고비를 넘기면서 김 사장의 재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식당·레스토랑 식자재 공급 유통업이 실패한 후 설립한 (주)아시아패스트푸드가 대성공을 거두게 된 것. 동독 베를린에 3호점을 개설할 정도로 성공한 김 사장은 어느날 귀국을 결심한다.

“제가 이 사업을 시작할 때 하느님께 기도했어요. 제발 10년만 성공하게 해달라고요. 그런데 무서울 정도로 너무 너무 잘되는 겁니다. 해서 또 기도했죠. 하느님 전 여기서 멈추겠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서울 토박이 부부가 남해에서 둥지를 틀게 된 사연을 물었다. 이들은 김두관 전 남해군수가 독일을 방문해 남해에 독일마을을 조성하겠다는 내용의 설명회를 열었다며 이 말을 듣고 귀국을 결심하게 됐다고 전했다. 인연이 인연을 부르는지 2004년 독일 마을에 집을 짓는데 또 다른 인연이 다가왔다. 지인의 지인이 원예마을 현 집터를 소개한 것.

김 사장은 독일생활을 정리하고 2009년 남해 원예촌에 정착했다. 독일 엔틱 소품점과 함께 마련한 보금자리는 이 마을 최고의 전망을 자랑한다.

부부의 남해생활이 처음부터 순탄치는 않았다. 내 나라 내 조국의 안락한 품을 느끼기 전에 타향의 배타심이 먼저 다가왔다.

부부는 “당황했어요. 한국 속 외국에 온 기분이랄까.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그때는 외국에서 돈 많이 벌어온 한량 대하듯 했어요. 우리가 독일 있을 때 거들먹거리는 한국 관광객 대하듯 했다는 표현이 적합할 겁니다”라며 허허 웃는다.

마냥 행복해 보이는 이들 부부에겐 묻기도 힘든 사연이 있다. 1985년 딸을 가슴에 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부는 신앙의 힘으로 견뎌냈다고 한다. 지금 46세된 아들은 독일에서 생활하고 있다며 애써 미소 짓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방문한 곳이 자기 광산의 광부식당이라는 회고와 함께 김 사장은 “50년전 그때 독일에 온 광부, 간호사 모두가 애국자였어요. 담배 살 돈과 우표 살 돈 외에는 모두 한국에 송금했죠. 누구나 다.”

그러면서 지금 한국은 너무 잘 살아서인지 지켜야 할 것을 잃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한다.

“TV 보기가 겁나요. 교육적인 프로그램이 너무 없어요. 너무 쉽게 결혼하고 또 너무 쉽게 헤어지는 풍조를 양산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앞으로 25년 후 다이아몬드 결혼식을 준비하며 하루하루 서로의 건강을 살피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겠다는 부부는 병원 진료 예약이 돼 있다며 못다 말한 사연을 삼킨 채 자리를 떠났다.

이웅재기자


 

독일 파견 광부·파견 간호사 출신인 김두한(74)·이경자(73) 부부가 현재 살고있는 남해 원예촌에서 금혼식을 올리고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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