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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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9.05.2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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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지역의 ‘계림시회’ 동인회(4)

‘주말이면 도서관행’ 박우담 시인
이형기 시인 기림에 사명감 걸어

인간의 벽 사이 시의 길 걸어온
공무원으로 정년한 우원곤 시인
‘계림시회’ 네 번째 이야기는 가나다순으로 박우담 시인과 우원곤 시인 차례가 된다.

박우담 시인은 진주출생으로 2004년 <시사사>로 등단하여 3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구름 트렁크’, ‘시간의 노숙자’, 그리고 세 번째로 ‘설탕의 아이들’을 출간하여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 사이 그는 ‘시사사 작품상’을 받아 작품의 질적 성장에 열정을 다 바치고 있다는 주변의 평가다. 그는 매주 주말이면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진주서부도서관으로 직행하여 광범위한 문학비평 읽기와 시 창작의 길 위에 서서, 자기만의 길을 닦아오고 있다. 그는 진주에서 발행한 계간시지 ‘시와 환상’의 주간을 맡아 ‘신시단’, ‘영문’, ‘문예정신’의 뒤를 잇는 주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편집자가 되었다.. 그 계간시지는 물론 진주에서 냈지만 전국 수준의 시 잡지로 시인들의 발표의욕을 고양시켜 주었다.

박시인은 특히 새로 시작하는 이형기문학제 기념사업회장이 되어 이형기 시인이 마땅히 고향에서 기림을 받아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 들을 말 안들을 말 들어가며 낙화의 시인, 우리나라 지적 서정시의 적통을 세우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런데 박시인은 지리산을 사랑하고 남명의 길을 생각하고 지리산의 핏빛 역사를 곁에 두고 마천골을 오르고, 내원골 마지막 빨치산의 생가터 감나무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는 화계리 산청함양사건 희생자 추모공원에 가 앉아 있기를 좋아한다. 시 <내원골>은 그런 역사와 검은 수화를 건네는 시다. “나는 검은 수화를 배우고 있다. /은행잎들이 서로 눈꺼풀을 부딪칠 때 확장되는 내 눈동자// 빠르게 도는 영상처럼 실핏줄의 가지가/ 완전치 못한 검은 기호들을 떨구는 은행나무”(시의 초반)를 보면 여타의 동인들 시와는 다른 터치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검은 수화가 은행잎 낙엽의 이미지와 연결되고 거기 검은 기호가 있음을 보면 그 기호의 실상이 무엇인가를 짚을 수 있게 된다. ‘수의’, ‘흑백사진’, ‘무덤’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그 기호의 의미다. 이를 바탕으로 ‘내원골’은 전쟁의 상처와 죽음이 깃들여 있는 산하이다. 지리산 내원골의 역사는 아직 상처와 무덤으로서 위로를 받아야 하는 공간임을 가리키는 시다. 이렇게 이미지는 내포 깊숙이 들어가 있으면서 맥락은 해체적인 구조를 보이는 난해시다. 박우담은 그런 의미에서 가장 현대적 비전을 보이는 시를 쓴다고 할 수 있다.

우원곤 시인은 창원 출생으로 2003년 ‘한국문인’을 통해 등단하고 경상남도 교육청 소속 공무원으로 정년을 맞아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 고등학교 행정실장, 경상남도교육종합복지관장을 역임했는데 김해 대청고등학교 교장으로 있던 이우걸 시인과는 행정실장으로 팀워크을 이루었다고 이우걸 시인이 귀띔해 준다. 정말 행정실에 근무했을까 싶도록 온순 착실하여 계산기라 할 만큼 계산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닌 사람으로 반듯했다는 것이다. 이우걸 시인의 기억으로는 진영출생이라는데 동인 소개란에는 창원이다. 어디 경계쯤이었는지 모르겠다. 진영은 단감 산지이고 소설가 김원일, 김원우 형제 소설가가 이름을 올린 곳이고 봉하쪽으로 가면 노무현 대통령이 태어난 곳이니 좋은 지역에서 난 셈이다.

그가 올린 지역시는 <용지호수 25시>이다. 이 시는 25시 한밤에 창원 복판에 있는 아름다운 용지호수가 배경이다. 필자가 볼 때 이 호수는 도심에 있는 호수로서는 경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가 아닌가 한다. 산꼭대기에는 지리산 ‘고운호’가 있고, 댐 호수로는 진주 ‘진양호’가 그중 빛나지만 용지호수는 그저 둘레 길이가 300미터 정도로 높은 아파트를 끼고 아래는 도심 도로와 현대식 건물을 아우르는 적당한 산책길 호수다.

“멍하니 전화를 끊고 나니 갈 곳이 없다/ 어두운 용지호수를 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 그 누구인가/ 세상과 뒤죽박죽 뒤엉켜 옴팡지게 망가진 채-/ 아모르 아모르, 에비뉴 에비뉴, 7080 네온사인/ 호수에 있다 없다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의 절벽이다/ 나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용지호수는 시간의 경계인 25시가 배경이 됨으로써 화자는 어둠 속에서 부딪치는 수많은 사람들에 섞이면서 미지, 불안, 길찾기의 어려움을 의식하게 된다. 그런데 하나 하나의 인간들은 그 자체가 절벽이라는 것이다. 절벽들이 섞이는 밤, 깊어가는 시간은 길이 막히고 아니면 절벽들이 걸어가는 시간이다. 그렇지만 그 시간은 의외에도 행운이 올 수 있다고 믿는다. 행운이 올 수 있다는 믿음은 둘레길의 리듬이기도 한 것일까? 시인의 시적 리듬이기도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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