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비닐우산
푸른 비닐우산
  • 경남일보
  • 승인 2019.05.28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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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석(대아고등학교 교감)
정규석
정규석

비가 내리는 날이면 학생들은 형형색색의 고급 우산으로 하늘을 가리며 교문을 들어선다. 하교할 때 비가 그치면, 교실마다 두고 간 한두 개씩의 주인 잃은 우산들이 보인다. 다음 날 우산 주인을 수소문해서 찾아가도록 하나, 맑은 날씨로 인해 들고 가기 귀찮아서인지 선뜻 주인이 며칠간 나타나지 않는 우산들도 보인다.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다. 어린이날에 진주 진양호에 부모님과 함께 놀러갔었다. 재미있게 놀고 난 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정류장 쪽으로 가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집집마다 어린 고사리 손을 잡고 온 수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어쩔 줄 몰랐다. 그런데 어디선가 푸른 비닐우산 장수들이 몰려나와 우산을 팔기 시작했다. 우산은 금세 다 팔렸다.

어릴 적 푸른 비닐우산은 요즘 제작되는 견고한 비닐우산과는 달랐다. 대나무를 깎아 만든 살대에 푸른색의 얇은 비닐을 덮고, 테두리 부분을 접어서 인두로 지져 만든 것이었다. 평상시 보관을 잘 해놓았다가 비가 올 때마다 쓰고 다녔다. 그러나 비닐이 얇아서 구멍이 잘 났고, 대나무로 만든 살대는 잘 떨어지기가 일쑤였다. 그 당시 넉넉한 집의 애들은 검은 천으로 덮은 견고한 쇠 우산을 쓰고 다녔다. 유하 시인은 ‘푸른 비닐우산을 펴며’라는 시에서 검은 쇠 우산은 펼치면 생긴 모양이 꼭 박쥐 날개 모양 같아서 박쥐우산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 당시 서민들은 대부분 푸른 비닐우산을 쓰고 다녔다. 비오는 날 푸른 비닐우산을 쓰고 등교할 때면 푸른 비닐 위로 보이는 하늘은 더욱 푸르렀고, 비닐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만들어내는 경쾌한 장단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박쥐우산이 흐린 하늘을 아예 시커멓게 가리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은 푸른 비닐우산은 생산되지 않고, 골동품처럼 보관하고 있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 인터넷 장마당에서 몇 개씩 매물로 돌아다닌다. 60~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제작할 때 소품담당자들이 푸른 비닐우산을 구하기 위해 애를 먹는다는 말도 들었다.

요즘은 좀 잘 나간다는 가게들이 신장개업을 하면 가끔씩 고급 우산을 손님들에게 기념품으로 준다. 집집마다 고급우산 몇 개씩은 보관돼있다. 갑자기 비가 내리면 근처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서 쓰면 된다. 우산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우리가 얼마나 풍족하게 살고 있는지를 실감한다.

그러나 가끔씩 비오는 날이면 왠지 하늘을 시커멓게 가리는 고급 박쥐우산이 아닌, 푸른 비닐우산을 들고 빗방울의 노크소리를 듣고 싶다.

 
정규석(대아고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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