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유월이 되면
[기고]유월이 되면
  • 경남일보
  • 승인 2019.05.28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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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한국문협회원 수필가)
장미넝쿨이 진녹색 이파리를 아무도 모르게 하나씩 붙여가며 몰래몰래 담장을 타고 기어오르더니 올망졸망 망울진 봉오리들이 새빨갛게 터져버렸다. 앞산 뻐꾸기가 목이 쉬도록 울어주던 날 민중들의 목도 쉬어버린 그맘때의 유월이다.

유월이 되면, 가물거리는 이름들이 있어 옛 세월을 되밟으며 남강다리를 걸어본다. 강물에 그림자 진 촉석루가 지금은 저리도 영롱하게 아롱지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을까. 강바람을 타고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향수처럼 스며온다. 다리목 오른쪽 건물 3층. 신한민주당 경남 제3지구당 사무실이었다. 옥상에 내걸어야 할 확성기를 진주시내 어느 소리사도 빌려주지 못하는 사연을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알기나 할까. 멀리 사천까지 가서 한 밤중에 구해다 걸어준 이점용씨. 선전부장이었던 내가 어딘가로 끌려갈까봐 호위무사로 자처하며 그림자처럼 붙어 섰던 서기찰씨, 지금은 어느 하늘아래서 분을 삭일까. 87년 1월 14일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답니다.’ 가슴이 터지도록 소리쳤더니만 남강다리를 막아버리는 백골단들은 어찌 그리도 날래던지. 다리난간에 기대서서 확성기를 달았던 옥상을 한참동안 올려다본다.

선학산 너머로 떠가는 구름따라 32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해 5월, 통일민주당으로 다시 창당되고 당사를 현대차 중부지점 사거리로 옮긴 유월, 이한열군이 최루탄을 맞고 뇌사 상태에 빠졌다는 비보를 또 한 번 외쳤을 때 소방차는 옥상 확성기를 향해 물을 뿜어대고 백골단은 내가 그리도 탐이 나는지 앞 다투며 나부댔다. 남강다리 밑으로 발길을 옮겨본다. 당시는 찻길이 없었던 남강다리 밑 그늘 에는 오륙십 명씩 모여 하루해를 보내시던 노인들은 나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두고두고 미안해서 당사에 소주 몇 병이 생길 때마다 찾아가면 언제나 등을 다독거려 주시던 백발의 노인들은 간곳이 없고 강낭콩 꽃보다 더 푸른 남강 물은 거룩한 분노를 달래며 한가로이 흘러간다.

유월의 땡볕이 쏟아지는 진주대로. 중앙 로터리는 지하통로와 상가조성 공사 중으로 온통 자갈길이었고 양편의 세입점주들은 또 얼마나 많은 인고의 세월을 보냈던가. 무엇으로 갚아야 할지 유월만 되면 문뜩문뜩 생각나서 가슴이 찡하다. 누구를 위한 몸부림이었으며 무엇을 얻으려는 저항이었던가.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알겠지만 흔들리지 말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곳없고 깃발도 없이 산자여 따르라던 절규만은 남았는데 따르지 못한 미안함을 안고 유월이 되면 산자는 이렇게 향을 사른다.

 

윤위식(한국문협회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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