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93]속리산 세조길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93]속리산 세조길
  • 경남일보
  • 승인 2019.05.2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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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오리숲길과 세조길

고등학생 시절, 이광수의 역사소설 ‘단종애사’를 읽고 단종에 대한 연민과 세조에 대한 분노를 키운 적이 있었다.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세조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세조가 참회하면서 걸었다고 하는 세조길을 걸으면서 필자에게 각인된 학살자와 파렴치한의 이미지가 깨끗하게 씻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명품 걷기클럽 ‘건강 하나 행복 둘(회장 이준기)’ 회원들과 함께 세조길을 찾았다. 세 시간을 달려 속리산 법주사 주차장에 도착하자 그토록 세차게 차창을 내리치던 빗줄기들이 감쪽같이 멎어 있었다.

세조길, 조선 7대 임금인 세조가 노년에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요양차 속리산에 행차하여 스승인 신미대사가 수행하는 복천사를 찾았는데, 젊은 시절 저지른 악행을 참회하면서 걸었던 길을 새로 걷기길로 조성한 것이 바로 세조길이다. ‘법주사 주차장-법주사 탐방지원센터-오리숲길-법주사삼거리-세조길 초입-수원지-태평휴게소-목욕소-세심정-복천암-신미대사 부도탑’에서 원점 회귀하는 7.5㎞의 구간은 오리숲길과 세조길로 나뉘어져 있다. 속리산자연관찰로라고도 불리는 오리숲길에는 여러 가지 조각품들을 전시해 놓은 잔디공원을 조성해 놓았으며, 공원 안에는 초대형 산채비빔밥솥이 있었다. 속리산 문장대 높이인 1058명분의 비빔밥을 한꺼번에 만들 수 있다고 하는데 속리산 가을 축제때 이 산채비빔밥 체험행사를 한다고 한다. 오리숲길이 끝나는 범주사 삼거리에서부터 세조길이 시작된다. 세조길에는 노약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여 휠체어나 유모차 등이 다니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전체구간의 반 정도를 무장애 탐방로로 조성한 점이 이채로웠다.

 
 


◇진정한 참회의 길

세종의 큰아들 문종이 왕이 된 지 2년 3개월만에 승하하자, 문종의 아들 단종이 12살 나이에 임금이 된다. 숙부인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수많은 충신을 학살한 뒤 단종을 폐위시키고 자신이 왕이 되는데 그가 바로 세조다. 그러자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이 단종을 복위시키려 하다가 함께 가담했던 김질, 정창손의 고자질로 실패하고 복위운동에 가담했던 사육신들은 역적으로 몰려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어쩌면 할아버지 태종과 세조는 닮은 점이 많다. 피로써 왕위를 쟁취했다는 점과 왕이 되기 위해 혈육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점도 똑같다.

그러나 태종은 조선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혈육과 충신들을 살해했지만, 세조는 자신의 이기적인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혈육과 충신, 도리까지 살해한 것이 두 사람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왕위에 오르기 위해 악업을 많이 지은 세조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는데, 어느 날 꿈속에서 단종의 어머니이자 형수인 현덕왕후(단종을 낳고 얼마 뒤 승하함)가 나타나 세조를 꾸짖으며 침을 뱉었는데 침이 묻은 자리에 피부병이 생겼다고 한다. 피부병이 심해지자 세조는 온천과 물이 좋은 곳을 찾아다니면서 피부병을 치료하려고 했는데, 그 중 한 곳이 속리산 법주사 계곡이다.

세조는 이곳 속리산에 세 차례 행차를 했는데, 스승인 신미대사가 수행하는 복천사에 가서 밤마다 원혼에 시달린다는 얘기와 피부병에 대한 번민을 스님께 말씀드렸더니, 업보 때문이라며 지은 죄를 조금이라도 용서받기 위해서는 참회하면서 살아가라는 조언을 받는다. 그때부터 세조는 회개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신미대사는 정의공주와 함께 한글창제의 주역이다. 스님의 부친은 영의정을 지낸 김훈이고, 명신 김수온은 그의 친동생이다. 세종의 한글프로젝트는 극비리에 추진된 비밀사업이었는데 훈민정음 반포(1446년) 8년 전에 이미 ‘원각선종석보’ 제1권에 훈민정음 언해본이 존재했다고 한다. 이 초기 언해본을 완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신미대사이다.

오늘 세조길은 세조가 참회하면서 걸었던 길 탐방과 더불어, 신미대사가 수행했던 복천암과 스님의 부도탑 순례도 아울러 했다. 야자매트를 깔아놓은 세조길은 무장애 탐방로답게 누구나가 쉽게 걸을 수 있도록 조성해 놓았다. 서로 다른 수종의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임금과 신하, 가해자와 피해자, 어른 나무와 어린 나무 등이 어우러진 어울림숲길, 어쩌면 세조 사후에 용서와 화해를 꿈꾸는 후대사람들의 바람이 담긴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거진 숲길을 한참 걸어가자 산신령의 눈썹을 닮은 눈썹바위가 거대한 몸집으로 길가에 버티고 있었다. 세조가 이곳을 지나다가 바위 그늘에 앉아 쉬어갔다는 눈썹바위 아래엔 길손들이 비바람을 피해갈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이 있었다. 눈썹바위를 지나자 데크로 조성해 놓은 수원지 수변길에서 속리산 수정봉이 내려와 물속에서 오수를 즐기는 모습도 일품이었다. 태평휴게소에서 준비해간 점심을 먹은 뒤,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데크길을 따라가니 목욕소가 나타났다. 목욕소의 맑은 물에서 목욕한 뒤 세조의 피부병이 깨끗하게 나았다고 한다.



◇참회가 곧 힐링이다

목욕소에서 포장된 도로로 세심정까지 걸어갔다. 속리산을 찾아온 도인들에게 음식과 휴식을 제공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세심정을 지나, 마음의 눈으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게 하는 이뭣고다리(시심마교)를 건너자 세조길의 종착지인 복천암이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행처라서 그런지 탐방객들이 뜸했다. 절에서 300m 정도 떨어진 산기슭에 있는 신미대사의 부도탑을 찾아뵙고 한글을 창제한 숨은 주인공인 스님께 감사의 묵념을 올렸다. 제자인 학조대사의 부도탑과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마치 선생님이 학생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빗자루로 탑 주변을 깨끗이 청소한 뒤 출발지를 향해 되돌아왔다.

세조길, 어쩌면 이 길은 ‘참회의 길’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남을 괴롭힌 사람들은 반드시 천벌을 받는다는 교훈과 더불어 다시는 세조 같은 존재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세조길이 탐방객들에게 묵시적으로 건네는 것 같았다. 회개도 하나의 힐링임을 깨달은 하루다.



/박종현(시인, 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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