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 군사요충지였음을 알려주는 양산의 산성
[경일춘추] 군사요충지였음을 알려주는 양산의 산성
  • 경남일보
  • 승인 2019.05.2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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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심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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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은 현재도 교통의 중심지로 사통팔달로 주변과 연결되지만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양산은 역사에 등장하는 가야시대, 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쳐오면서 교통의 요충지이자 국방의 중요 거점역할을 했다. 양산에 남아 있는 다양한 산성이 군사요충지임을 입증하고 있다. 양산은 낙동강과 양산천을 통해 남해 바다, 김해, 밀양, 대구 등 내륙으로 연결되고, 육로로 울산, 경주, 밀양 등으로 갈 수 있다. 주요 길목에 국방의 목적으로 산성이 설치되었다.


부산에서 낙동강, 양산천을 통해 양산으로 들어오는 관문에 호포 왜성이 있다. 호포 왜성지는 양산군읍지에 의하면 원래 호포원지(狐浦院址)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호포원은 호포의 동쪽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고 기록되어 있어 1530년경에는 역원 기능을 상실했음을 알 수 있다. 호포왜성은 대부분 파괴되었다.

낙동강을 거쳐 양산천으로 양산에 들어오면 북부동 산성이 있다. 육로 교통, 해운 교통의 요충지로 동산성으로도 불리는 북부동산성은 1963년에 사적 제98호로 지정됐다. 삼국시대 산성인 북부동산성은 이름과 달리 양산시 북부동뿐만 아니라 남부동, 중부동, 다방동 일대에 걸쳐 있다. 등산로를 따라 정자가 있는 정상부로 올라가는 인근에는 견고한 석축이 남아 있다.

신기리산성은 양산시 신기동과 호계동, 북정동에 걸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으로 사적 제97호이며, 둘레 약 2600m다. 현재 성벽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일부만 남아 있는데 양산의 진산인 산성봉의 정상부를 감싼 테뫼식산성이다. 신기리산성은 북부천을 사이에 두고 북부동산성과 나란히 있다. 정확한 축조연대는 기록에서 확인할 수 없으나 ‘삼국사기’ 에 463년(자비왕 6년) 왜구가 삽량성에 침입하였다가 패퇴한 사실, 673년(문무왕 13년)과 687년(신문왕 7년)에 삽량주(현재의 양산)에 축성하였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양산천과 낙동강 사이의 물금지역에는 증산왜성이 있다. 1998년 경남 문화재자료 제276호 물금증산리왜성으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때 왜장 모리 히데모토(毛利秀元)와 고바야가와 다가가게(小早川隆景)가 축성하였고, 구로다 나가사마(黑田長政) 군대가 수비하였던 곳이다. 오봉산에는 마고산성이 있는데, 양산천과 낙동강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삼국사기 683년 기록 ‘9월에 삽량주의 골쟁현성(骨爭峴城)을 쌓았다’ 라는 내용을 마고산성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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