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만에 찾은 징용조선인 위령비에 이름 쓰다
74년만에 찾은 징용조선인 위령비에 이름 쓰다
  • 박준언 기자
  • 승인 2019.05.29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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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평화의 초석’에 김만두·박재운씨 각명
‘라이프’ 묘표 사진서 확인…내년 유해발굴 진행
일제 징병 후 억울하게 숨진 뒤 지금은 주차장으로 변한 땅에 묻힌 것으로 알려진 김해인 김만두씨가 74년만에 일본의 정상적인 위령비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내년초에는 발굴작업도 진행될 예정이다.

29일 일본 시민단체 ‘오키나와 한(恨)의 비(碑)’에 따르면 최근 오키나와현은 1945년 1월 군수물자 보급선 ‘히코산마루’에 타고 있다가 미군의 폭격으로 숨진 김만두(사망당시 23세)씨 등 2명의 한반도 출신자들을 현내 위령비 ‘평화의 초석’에 추가 각명키로 했다.

일본 시민들이 김해의 유족과 관련 증빙 서류를 찾아 각명(이름을 새김) 신청을 한 결과로, 숨진 뒤 74년만에 억울한 영혼이 조금이나마 위로받게 됐다.

오키나와현 평화기념공원 내 평화의 초석은 오키나와 전투의 희생자를 기리는 장소다. 이번에 2명이 추가되면 한반도 출신자들은 모두 464명이 된다.

김만두 씨의 각명까지는 드라마틱하다. 태평양전쟁 당시 미국 잡지 ‘라이프’ 기자가 촬영한 사진이 1945년 5월 28일자 르포 기사를 실렸는데 여기에 ‘김만두’ 씨의 이름이 들어간 묘표(매장지를 알리기 위해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은 표식)를 확인할수 있었다.

오키나와 한의 비는 뒤늦게 이 사진의 존재를 인식하고 묘표 중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金村萬斗(김촌만두)’라는 이름을 찾았고, 그는 김해에 살다가 군속으로 끌려왔다 숨진 김만두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들은 김해에서 김 씨의 유족을 찾아 그가 강제로 끌려와 오키나와에서 억울하게 숨졌다는 것을 증명할 진술서와 관련 문서 등을 모아 평화의 초석에 올려줄 것을 신청했고 오키나와현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김만두 씨의 유해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현재 개인 소유의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

한국과 일본, 오키나와의 시민단체 등은 내년 1월 발굴 작업을 벌이기로 했다. 또 김 씨와 함께 한반도에서 끌려왔다 숨진 박재운 씨도 평화의 초석에 추가로 각명할 예정이다. 일본 남쪽 끝의 오키나와는 태평양 전쟁 막바지 제국주의 일본군과 미군 사이에 격전이 치러진 곳이다.

박준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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