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31]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31]
  • 박성민
  • 승인 2019.05.30 17: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슬라허 미술관


◇작은 카페같은 미술관
 

골목 한 켠에서 다른 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이 미술관이 작은 갤러리 카페 같이 느껴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간판이 눈에 잘 띄지 않아 몇 차례나 앞을 지나쳤다가 입구를 찾았을 뿐더러 전시실 안쪽에 차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마음껏 즐기라는 미술관 직원의 친절한 응대 때문이다.

이곳의 정확한 위치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미술관과 불과 몇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세인트 존 성당에 대해 언급하는 편이 여러모로 나을 것 같다. 좀처럼 화려한 성당의 모습을 찾기 힘든 네덜란드다 보니, 누구나 한번쯤은 고개를 들어 이 성당의 자태를 감상하게 된다. 하늘과 인사를 나눌법한 높이와 웅장한 규모를 뽐내는 세인트 존 성당은 이 도시를 넘어서 네덜란드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인트 존 성당과 앞서 언급했던 자그마한 미술관은 네덜란드사람들이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는 도시 스헤르토헨보스(‘s-Hertogenbosch)에 위치하고 있다. 이 도시가 속해있는 브라반트(Brabant) 주(州)는 꾸미지 않은 자연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서 예로부터 많은 화가들이 이 일대에서 작품 활동을 했는데, 특히 빈센트 반 고흐의 대다수 초기 작품들이 이 곳 브라반트 주에서 탄생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브라반트 주가 오랫동안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는 슬라허 미술관을 살펴보자. 미술관의 이름으로 추측할 수 있듯이, 슬라허 미술관은 ‘Slager’라는 가문이 설립한 미술관이다. 사람 이름을 내건 미술관들은 대게 그 가문이나 개인의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는 곳들이 대부분인데, 이곳은 특이하게도 이 미술관이 소유 하고 있는 그림 모두 슬라허 가문 출신의 화가들이 제작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가문에서는 3대에 걸쳐 총 여덟 명의 화가가 배출되어 화가, 미술 교사 등으로 활동했다.



 
 
◇화가 슬라허 가문

이 가문이 유명한 화가 집안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된 시작과 중심에는 화가 페트루스 마리누스 슬라허가 있었다.

그의 자식들 중 네 명이 아버지의 뒤를 따라 화가가 되었고, 아들 두 명 은 여류화가와 결혼했다. 이후 페트루스의 손자 톰까지 화가로 활동하며 3대에 걸친 화가 집안이 탄생했다. 슬라허 가문의 화가들은 이들의 고향 스헤르토헨보스의 예술학교에서 미술 교사로써 많은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다양한 작품 활동으로 도시의 문화예술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슬라허 미술관은 1976년 수제 베르헤 슬라허(Suze Berg-Slager)와 그의 남편 헤인 베르헤(Hein Berg)에 의해 개관되었다. 미술관의 설립은 슬라허 가문 출신 화가들의 그림을 한자리에 모으는 의미 있는 작업이었을 뿐만 아니라 3대를 거치며 변화되어온 작품의 분위기, 색채, 시대의 경향 등을 한눈에 파악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한편, 슬라허 가문 화가들이 제작한 많은 작품들은 현재 네덜란드나 해외의 개인 소장품에 속해 있거나 네덜란드의 몇몇 박물관에서도 소장하고 있다. 그림의 주제는 서로 달랐지만, 여덟 화가의 그림에서는 어딘가 모르게 닮은 구석이 느껴진다. 스헤르토헨보스의 자연 풍경은 이들 모두에게 많은 영감이 되었고, 그 자연 속에서 어우러져 살아가는 특별하지만 일상적인 것들이 이들에겐 무한한 소재가 되었다. 가족이 함께 무엇인가를 공유하고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이들의 그림을 보면 한결 더 느껴진다.



 
 
◇슬라허 가문의 미술가들

페트루스 마리누스 슬라허(Petrus Marinus Slager, 1841~1912)는 앤트워프 왕립 미술학교에서 공부했다. 뛰어난 그림 실력을 인정받아 공모전에서 여러 번 입상 했으나 집안 사정으로 일찍 학업을 마쳐야 했고, 1863년 스헤르토헨보스로 돌아왔다. 그곳의 왕립예술학교 교수로 임용되며 지역의 예술 발전에 앞장섰다. 그는 또한 그림에 재능이 있던 네 명의 자식들에게 아버지와 스승으로써의 역할을 동시에 하기도 했다. 프란스 슬라허 (Frans Slager, 1876~1953)는 페트루스 슬라허의 아들 프란스는 풍경화에 뛰어났다. 특히 그는 그의 고향과 벨기에의 자연에 매료되어 자주 캔버스에 옮겨 담았다. 피에트 슬라허(Piet Slager, 1871~1938)는 페트루스 슬라허의 맏아들로 아버지와 같이 초상화에 뛰어났고 풍경화로도 인정받았다. 피에트가 그린 마을 풍경에는 인상주의의 영향이 나타난다.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수제(Suze slager-velsen)와 결혼하여 함께 작품 활동을 펼쳤다.

얀네테(Jeannette slager, 1881~1945)는 페트루스 슬라허의 딸 얀네테는 꽃을 주제로 한 정물화를 주로 그렸다. 선명한 색채를 즐겨 사용했으며 빛과 그림자의 명확한 대비를 두드러지게 표현했다. 당시에는 여성이 예술학교에 입학하여 그림을 배울 수 없었지만 얀네테에게는 아버지와 오빠 피에트 같은 훌륭한 스승이 곁에 있었다. 코리 슬라허 (Corry slager,1883~1927)는

언니 얀네테와 마찬가지로 꽃을 즐겨 그렸지만 코리는 수채화에 능했다. 색상의 구성이나 채색 기법은 누구든지 눈여겨 볼 만큼 뛰어났고 남편을 따라 인도네시아로 건너간 뒤 그곳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수제 슬라허(Suze slager, 1883-1964)는 피에트 슬라허의 부인으로 에칭(동판화)을 공부 하다가 남편 피에트로부터 그림 교습을 받았다. 결혼 후, 스헤르토헨보스에 정착하여 이 지역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소재로 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같은 이름의 딸 수제(Suze)는 슬라허 미술관의 개관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마리 슬라허 (Marie Slager, 1891~1968)는 프란스의 부인으로 풍경,정물,초상화 등 다양한 장르를 그렸다.

톰 슬라허 (Tom slager, 1918~1994)는 페트루스 슬라허의 손자로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톰은 슬라허 가문의 화가들 중 가장 다른 그림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그는 주로 밝은 색채와 다양한 색깔을 사용 하였고, 이전 화가들이 고수했던 전통에서 많이 벗어나있다. 여행을 즐겼던 톰은 넓은 세상을 통해 더욱 다양한 것들을 시각을 얻고자 했고, 그것은 그림의 주제나 기법의 변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톰의 아버지도 페트루스의 다른 자식들과 마찬가지로 그림에 재능을 보였지만, 화가의 길은 선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 톰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아 화가로 활동하면서 3대째 까지 화가 가문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전 것을 반복하기 보다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창조해 내고자 한 그의 예술적 가치관은 슬라허 가문의 마지막 화가로써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마침표이자 다음 세대들이 나아갈 새로운 작품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듯하다.



주소: Choorstraat 8, 5211 KZ ‘s-Hertogenbosch

입장료: 성인 8.5유로 청소년 3.5유로

입장시간 : 11:00~17:00 (월요일 휴관)

홈페이지: https://www.museumslag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