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 찔레꽃(송찬호)
[강재남의 포엠산책] 찔레꽃(송찬호)
  • 경남일보
  • 승인 2019.06.0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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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송찬호

그해 봄 결혼식 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숲에 가보라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인데,

읍내 예식장이 떠들썩했겠다 신부도 기쁜 눈물 흘렸겠다 나는 기어이 찔레나무 숲으로 달려가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읽긴 읽었던 것인데 차마 다 읽지는 못하였다

세월은 흘렀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 수년 삶이 그렇데 징소리 한 번에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무대에 뛰어오르는 거 어쩌다 고향 뒷산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 덤불 아래 그 흰빛 사기 희미한데,

예나 지금이나 찔레꽃은 하žR어라 벙어리처럼 하žR어라 눈썹도 없는 것이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에서 오월의 뱀이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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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 한 크기의 미니찔레를 화단에 심었다. 계절을 짱짱 버티고 몸집을 부풀리더니 하얗게 꽃을 피웠다. 처음부터 찔레는 찔레였고 꽃은 꽃이었던 하얗고 보드라운 숨을 느끼며 사람의 감정도 이와 같으려나, 그러면서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간직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특히 첫사랑에 관해선 그러할 것이다. 이렇게 앙증맞고 작은 꽃송이가 피어있는 아침에는 무언지 모를 그리움과 애틋함이 심장을 찌른다. 제 몸의 상처를 보듬는 꽃이 그대로 전이된 때문일 것이다. 끊임없이 피고지고를 반복하는 찔레꽃을 만지면 붉은 울음이 손끝에 닿아 전율이 인다. 울음이 길어진 만큼의 거리에서 찔레는 꽃을 피우고, 하필 찔레나무 덤불 아래 편지를 놓아둔 네 마음이 아프게 따라온다. 붉은 심장을 가진 두 사람은 하나이고 싶지만 하나일 수 없는 이별 앞에 속수무책이다. 울음과 꽃이 시각으로 들어오는 5월을 몸이 먼저 읽어낸다. 심장을 찌르는 것이 서로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찔레나무 덤불이 우거져서라 믿고 싶다. 차마 다 읽지 못한 연서의 다음 문장이 꽃으로 핀다. 찔레꽃이 엷은 색으로 옮겨간다. 좀 더 오래 피어있을 꽃 앞에 쪼그리고 앉는다. 뻐꾸기 울음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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