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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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9.06.0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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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지역의 ‘계림시회’ 동인회(6)


붓글씨 쓰는 ‘진해신사’ 이월춘 시인
여유 찾는 발걸음에서 선비를 본다

킬리만자로를 ‘뽈레뽈레’ 다녀와
시회의 마스코트 같은 정이경 시인
이번 차례는 계림시회 이월춘, 정이경 시인이다. 이월춘은 창원 출생으로 1986년 ‘지평’지와 시집 ‘칠판 지우개를 들고’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간 경남문학상, 월하 창원문학상, 진해 예술인상, 경남시학작가상, 산해원문화상 등을 수상한 중견이다. 시집에 ‘그늘의 힘’, ‘감나무 맹자’ 외 4건이 있고 에세이집 ‘모산만필’, 편저에 ‘벚꽃 피는 마을’ 등을 선보였다. 경남시인협회, 작가회의 부회장으로 있고 지금 현직은 진해남중학교 교장으로 복무하고 있다.

우리가 그냥 교장이라 하면 근엄한 일을 하는 분이기에 시나 감성적 접근이 힘들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청마선생은 경주고 교장, 안의고등학교 교장, 경남여고, 부산남여상고 교장 등을 두루 거쳤지만 그 일 때문에 시를 쓰지 못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가까운 예로 진주에서 30~40년 교사, 교감을 지내다가 울산서 교장, 학무국장을 역임한 김석규 시인은 결재가 끝나면 그 자리에서 매일 한 편의 시를 꼬박 꼬박 숙제하듯이 썼으니 교장에서 오는 직무성 경직성은 걱정할 사안이 아닌 것 같다.

이월춘 시인도 결재를 끝내고 오늘 한 편의 시를 혹은 두 편의 시를 쓸 것이다. 이 시인은 대학때 ‘갯물’동인 활동을 했는데 그때 정일근, 우무석 등과 어울렸다. 그 세 사람의 기질은 다들 조금씩 다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 할 일이 없는 시인들은 술자리에 세 시인을 초대해 보면 어떨까 한다. 이 시인은 그간 동인 활동을 두루해 온 것 같다. ‘살어리 동인’(이달균, 이월춘, 권경인, 정이경), ‘진해와 진해 사람들의 시’, ‘3·15 동인시’, ‘지평 동인’ 등에 가담하면서 그가 얻은 별명은 ‘진해 신사’이다.

‘신사’라는 말은 어디서 왔을까? 이 시인은 서예를 하면서 신년휘호를 붓글씨로 하는 희귀한 시인이다, 박종화나, 김상옥, 설창수 시인과 같은 전세대의 문화에 속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그의 어깨에 무게를 얹어주는 것일까? 그래서 ‘지역을 쓰다’로 올린 시 <비밀과 함께 사는 법>이 은근한 무게로 눌러준다는 느낌이 든다. “길도 길 나름의 철학이 있다/ 인정머리 없는 길도 있고/ 둥글둥글 유연하게 이어지다가/ 가끔은 목적지를 잃어버려도 좋고/ 한눈 좀 팔다가가도 괜찮은 길/ 밀양 가는 길이 그렇다”(전3연 중 1연)

길을 선택해서 가는 길이라도 집중이나 지나친 결단이나 승부욕으로 가지 않고 한눈도 팔다 가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이것이 선비의 발걸음이다. 알레그로가 아닌 안단테 행보라는 것이 이른바 밀양 가는 길이라는 것 아닌가. 오는 것은 굳이 막지 않더라도 오는 것이고, 어느 순간 벗어나는 길이면 문득 눈을 뜬다는 것이다. ‘밀양’이라는 이미지가 그런 깊이와 아량을 수반하는 것일까? 필자도 밀양역에 문득 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리는 순간 이마에 따거운 햇살을 받을 것이다.

정이경 시인은 계림시회의 마스코트다. 늘 문단 가운데로 문단의 일감을 들고 가고 있는 여류이다. 경남시인협회의 길, 경남문인협회 경남문학관의 길에 소리없이 이바지하는, 그냥 그 자리에 서서 가는 사람이다. 필자와는 경남시인협회 창립 시절에 회장과 사무국장으로 만나 문단이 업이 된다는 것을 설계하고 실천하는 데 이심전심 힘을 모았다. 정이경은 언제나 있어야 할 자리 있는 사람으로 다가와 있었다. 어느나라 축구선수인지는 모르나 ‘메시’라는 선수는 볼이 들어가야 하는 자리에 귀신처럼 달려나와 볼이 볼로서의 영광을 차지했다. 정시인도 그런 메시와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진해 태생으로 1994년 심상 신인상으로 데뷔했다. 경남우수작품집상, 경남 올해의 젊은 작가상 등을 받았고 시집으로 ‘노래가 있는 제국’, ‘시인은 다섯 개의 긴 더듬이가 있다’(공저) 등이 있다. 빼놓지 않고 해야 할 말은 그는 등산가이다. 여류 등산가로 이림씨를 꼽을 수 있는데 두 사람은 등산실적으로 자웅을 겨루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시인 사무국장 여인이 지리산을 혼자 야간 등반한다는 사실을 알고 처음으로 충격을 받았다. 그로써 여성과 등반에 대한 독자적인 위상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익히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 ‘지역을 쓰다’에 마땅히 등산시가 나올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래서 작품 중에서 <뽈레뽈레 1>를 읽었다. “거친 호흡과 호흡 사이/ 만년설은 허기진 뱃속으로 들어가고/ 남은 빙벽으로 채워진 머릿속은 조악하게 하얗다.”

여성 시인은 지리산 야간 등반을 넘어 킬리만자로 최고봉 우후루피크를 ‘뽈레뽈레’(천천히)라 하며 스텝 밟듯이 정복해버렸다. 그러고 난 뒤 시로서 우리에게 “헤이 뽈레 뽈레”하고 귀국 인사를 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정 시인은 경남의 마스코트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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