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은 유구해야 한다
남강은 유구해야 한다
  • 경남일보
  • 승인 2019.06.0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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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옥윤(객원논설위원·수필가)
한창 의욕이 넘치던 30대 후반 기자시절, 신문사의 신년기획으로 대하시리즈 기획물 ‘낙동강’을 취재, 보도하자고 제안해 채택과 함께 취재팀장을 맡아 열정을 쏟은 적이 있다. 30년도 더 지난 일이다. ‘페놀사태’가 벌어져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산림청 헬기를 빌려타고 내려다 본 강의 상류에서 낙동강 하구언에 이르는 긴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러나 정작 강의 시원인 강원도 태백시를 거쳐 취재에 나선 낙동강은 이미 죽음의 강으로 변해 있었다. 하수종말처리장이 없던 시절이라 강은 태백시의 온갖 생활하수와 쓰레기를 안고 흘렀다. 탄광촌의 검은 석탄가루까지 가세해 시가지를 빠져 나온 강물은 구무소에 이르러 솟구치면서 누른 비누거품을 공중으로 날려 하늘이 온통 비누방울이었다. 당연히 당초 취지와는 달리 환경과 공해에 취재촛점이 집중됐고 강은 뛰어난 자정능력으로 이내 맑아졌으나 농촌지역을 지나면서 축산폐수와 농약에 오염돼 자정력을 잃은 것 같았다. 안동 댐에 이르러 한숨을 돌리는 듯 했지만 대구의 비산단지와 직물공장 등 공업시설로 인해 강은 다시 오염되는 현상을 빚어 남해안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당시 낙동강은 이대로 두면 반드시 죽음의 강으로 변할 것이라는 비관적 진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낙동강은 부산시민들의 식수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축산폐수와 농업의 개선, 도시마다 들어선 하수종말처리장이 강을 살린 것이다.

그 즈음의 도시를 낀 강들은 모두 낙동강과 같은 중병을 앓고 있었다. ‘미라보 다리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그리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라’라는 감미롭고 미려한 분위기의 파리도심을 흐르는 세느강도 중병을 앓고 있었고 런던의 테임즈강은 더 심했다. 그러나 두 강은 모두 세계적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어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강은 인류의 젖줄이고 문화의 발상지이다. 요즘 우리나라 관광객의 대형참사로 화재의 중심에 떠오르고 있는 다뉴브강도 예외는 아니다. 독일에서 발원하여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를 거쳐 유고, 불가리아, 루마니아를 휘감아 흑해로 들어가는 2800 여㎞를 흐르는 다뉴브강 이야말로 유역 다민족의 피와 땀, 낭만과 애환의 트랙이다. 최근 이탈리아의 독문학자 클라우디오 마그리스는 이 다뉴브강을 직접 답사하며 엮은 한편의 오디세이아로 노벨상을 받았다. 그 속에는 문화와 정치, 문학과 소설이 녹아있고 하이데거와 아이히만, 셀린, 싱어, 카프카, 프로이트 등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수필문학의 진수로 평가받고 있다.

장황하게 강을 주재로 삼는 것은 우리가 붙박아 살고 있는 남강도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그 유역에는 선사시대와 청동기, 철기시대의 유적이 널브러져 있다. 거슬러 올라 1억년에 가까운 쥬라기의 공룡유적도 있다. 임진왜란과 6·25전쟁의 상흔은 지금도 남강과 우리의 혈관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제는 우리도 남강유역의 문화와 인문, 자연과 인물, 역사, 문화와 사람들의 삶을 집대성 할 필요가 있다. 우선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의 업적을 주목해 따르는 시도를 주창하고 싶다. 때마침 과제가 되고 있는 진주성의 복원과 역사박물관, 공룡화석에 대한 각계의 의견도 망라하고 지역특유의 교방문화와 남강이 배출한 숱한 인물에 이르기까지 모으고 정리하고 시대적 가치를 찾는 작업을 꼭 지금, 이 시대에 사는 남강인들이 해야 할 사명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정리되지 않고 편린으로 흩어져 있으면 유실되고 잊혀지기 마련이다. 해마다 열리는 유등축제와 개천예술제, 논개제의 정체성도 남강문화의 지류일 뿐이다. 이제는 남강의 거대한 물줄기를 느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중심에는 강의 복원이 자리잡아야 한다. 세느강과 테임즈강이 끈질긴 복원노력으로 오늘에 이르렀듯 남강도 댐아래의 물은 버리는 낭비적 관리에서 벗어나 맑고 아름다운 강, 다뉴브가 그 긴 여정에도 주변국가의 문화중심이 되고 마침내는 흑해로 흘러들어 바다의 영양이 되듯 남강은 유구해야 한다. 그것을 이루는 것이 이 시대,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시대적 사명이다. 이 남강프로젝트에 예산을 쏟고 인재를 모아 뜻을 세우고 구체적 실천에 옮기는 것은 진주의 지성, 시정을 이끄는 시장의 책임이다.

 
변옥윤(객원논설위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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