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만민군관 신위
칠만민군관 신위
  • 경남일보
  • 승인 2019.06.0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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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서장대에 올라보니 남강이 망진산 기슭을 파고들어 낭떠러지를 만들고 발밑으로 곧장 흐른다. 의병들이 망진산에 올라 횃불을 흔들고 함성을 질러 일본군의 후방을 교란하여 진주대첩에 이르게 하였다. 남강은 촉석루 아래에서 돌아나간다. 고개를 돌리자 소나무와 대나무 사이로 기와지붕이 보이고 빗줄기가 걸음을 재촉한다.

진주성 서문을 마주하는 절, 처마 밑 현판에 월영산호국사(月影山護國寺)라고 되었다. 달그림자 산이라! 진주성이 남강에 비친 반월을 닮아 월영산이라 했을까. 진주성은 촉석루로 널리 알려져 산(山)과 연관하지 못해 생소하기만 하다. 종무소에 들러 문을 두드리자 보살이 나온다.

“월영산은 어디 있는 산 이지요?” “처사님은 지금 월영산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산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이건만 무엇을 묻는 것이냐 하는 표정이다. 호국사는 고려시대 창건되고 내성사(內城寺)였다. 임진왜란 때는 승군(僧軍)의 근거지가 되었고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성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한 승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숙종이 호국사라 하였다.

수백 년을 살아온 느티나무가 성벽 너머로 몸통을 기울려 길을 열어주고, 몇 걸음 옮기자 안내판 앞이다. 창렬사(彰烈祠), 경남문화재자료 제5호, 소재지 진주시 남성동, 1593년 진주성 싸움에서 순국한 분들의 신위를 모시기 위해 건립되어 선조 40년(1607년) 사액을 받았다. 충무공 김시민장군을 모신 충민사가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사액서원을 제외한 서원철폐로 헐어지게 되자 이곳으로 신위를 옮겨왔다. 임진왜란 때 순국한 39분의 신위를 모시고 있으며,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나라를 위해 장렬히 싸우다 순국한 분들로서 이름이 천추에 빛나고 있다.고개 숙이고 계단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걸음씩 옮기는데 우람한 느티나무 몸통이 앞을 막아 고개를 들자 유중문(有重門), 기다리고 있는 전파문, 문턱을 넘자 열린 문으로 신위 보관함이 보이니 사당이로다. 왕이 남향하면 좌측을 동쪽, 우측은 서쪽이라 정면에 있는 사당을 정사(正祠), 정사의 좌측을 동사(東祠), 우측을 서사(西祠)로 불린다. 향을 사르고 사당별로 신위 수를 세어본다. 정사에는 7위, 동사에 17위, 서사는 16위로 모두 40신위이다. 안내판에 39신위라고 되었는데…. 정신이 혼미해져 계산이 되지 않는다. 사진을 찍어 확인해야지.

동사 옆에 諸將軍卒之位(제장군졸지위)로 새긴 비석이 있다. 다른 비면은 빗물이 타고 내려 글자를 알아볼 수 없다. 諸를 성씨로 본다면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의령 등지에서 전공을 세워 성주목사에 임명되었으나 성주싸움에서 전사한 제말(諸沫)장군, 諸를 ‘모두’의 뜻으로 해석하면 39신위에 들지 않는 모든 장군과 병졸을 위한 추모비가 되는 것이다. 안내문이 있었다면 마음의 꽃을 올리는 시간이 길었을 것인데….

사진을 판독했더니 동사의 맨 우측에 배치된 신위 보관함 표지에 七萬民軍官 神位(칠만민군관 신위)로 되었다. 다른 신위는 관직 성명으로 표기되었는데 유독 ‘신위’이다. 이는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성의 함락과 함께 순국한 영령을 한 장에 모신 것이다. 39신위는 직위와 성명이 분명한 영웅이며 7만 명 속에 포함될 수 있겠다. 칠만민군관 신위를 정사로 옮기고 가운데 배치하자. 그리고 혼란이 없도록 입구 안내판의 하단부 ‘39분의 신위를 모시고’를 ‘39분의 신위와 칠만민군관 신위를 모시고’로 보완하면 무난하겠다.

참배객이 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있다. 유중문과 전파문을 읽고 뜻을 알면 발걸음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보는 것은 학습 자료가 된다. 창렬사를 찾아 배우고 가는 교육장이 되도록 의미 있게 자료를 구성하자. 신위의 배치도를 사당 앞에 설치하면 선수학습이 되어 차분하게 접근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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