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플러스(221) 창원 준봉산
명산플러스(221) 창원 준봉산
  • 최창민
  • 승인 2019.06.06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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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봉산 최고의 자연 전망대. 주변에 인성산 적석산 여항산 등이 보인다.



준봉산(準峯山·528m)은 백두대간 낙남정맥 진주∼고성구간에 위치한다. 진주 동쪽 이반성면 발산고개 기점에서 서쪽으로 진주와 고성 경계를 가른다. 이곳에는 준봉산을 비롯해 용암산 매봉산 등 무명산이 늘어서 있다. 이름이 덜 알려졌다 해도 낙남정맥이 지나가기 때문에 길이 선명하고 곳곳에 암릉과 바위벽이 쏙쏙 박혀 있어 볼거리가 많다.

과거 산기슭 주민들은 이 산을 안둔산으로 불렀다. 준봉산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것 같다. 준봉산은 언제 어디에서 왔을까. 내력은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592년 임진왜란, 조선 중기 문인이자 의병장인 충렬공 고경명(제봉·1533~1592)과 그의 차남 고인후는 의병을 모아 충남 금산 와서벌에서 왜적에 맞서 분전했으나 한꺼번에 전사했다. 아버지와 아우를 잃은 장남 고종후는 이듬해인 1593년 6월, 스스로 복수의병장이라 칭하고 400여 명의 의병을 규합, 진주성에서 왜적에 항전한다. 하지만 이미 1차전투에서 대패해 독이 올랐던 왜구의 3만군에 밀려 벼랑 끝에 선다. 3인의 장수 고종후 김천일 최경회는 분루를 삼키며 남강에 투신해 순절한다. 민관군 7만명이 산화한 진주성 2차전투로, 훗날 인구에 회자하는 삼장사 중 1인이다. 고종후의 시호가 효열(孝烈), 호가 준봉(準峯)이다. 이 산 중턱에 준봉이 잠들어 있다. 준봉산은 이렇게 탄생했다.

준봉산에 오르면서 이 땅과 하늘을 새롭게 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명산 플러스는 국난극복 의기와 충절이 서린 곳, 새잎과 새로운 풀들이 돋아나 한층 싱그러움을 자랑하고 있는 이 시절, 준봉산을 찾아간다.

 

▲등산로:진마대로 발산재 옆 수발사 입구→임도→장흥고씨 자연장 추모공원 →고종후 묘→첫째 바위군→암반 전망대 갈림길→준봉산→깃대봉(520m)→528m봉갈림길→선동치→적석산길→대방소류지→신선마을 적석산미나리농원→일암 2소류지 회귀.


▲진주 이반성 발산재 부근 수발사 입구가 산행 출발지이다. 수발사는 행정 구역상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이지만 진주시 이반성면, 고성군 회화면 경계지에 있다고 보면 된다. 1960년께 건립한 작은 사찰로 1985년께 중창했다. 대웅전, 범종루, 5층석탑이 있다.

임도를 따라 오르면 길가에 ‘효열공 고종후장군신도비’가 도드라져 보인다. 갈지(之)자 임도를 연달아 나온다. 곧 100기가 넘는 장흥고씨 자연장 추모공원이 나오고 길은 왼쪽 상부 모롱이로 돌아간다. 준봉산을 알리는 입석이 있는 지점이다.

곧이어 신도비의 주인공 고종후(효열공·준봉)의 묘소를 만난다. 풍전등화, 누란의 위기를 타개하는데 일조한 큰 인물 큰 산…, 동량(棟梁)같은 인재의 맥을 이은 명문가의 소식은 3부자가 순절한지 300년이 흐른 어느 날 가을날 지리산 피아골에서 또 다시 들려온다.



산길은 편안하다. 출발 후 30분 만에 장롱처럼 생긴 바위가 우뚝우뚝 솟은 첫번째 암릉지대를 지난다. 바위와 초록의 관목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듯한 아름다운 모습이다. 올라서면 사방 전경을 볼수 있다. 진마대로를 질주하는 차량의 기계음이 메아리가 되어 산 고랑을 타고 올라온다.

출발 후 1시간 만에 첫 번째 갈림길을 만난다. 전망대역할을 하는 암반에 서면 오른쪽으로 산줄기가 내달린다. 이 줄기는 진주와 고성을 가르는 경계지로 만수산에서 경남도산림환경연구원·수목원 부근의 보잠산으로 이어진다. 길은 선명하지 않고 산행객도 많지 않다. 미답지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가끔 찾을 뿐이다. 왼쪽 길 낙남정맥 숲으로 다시 들어간다. 길섶에 무성히 자란 잡초가 허리까지 올라오더니 어깨를 넘어 얼굴을 스친다. 숲샤워, 바람샤워라는 말이 어울린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름이 다가와 있음을 실감한다.

곧 준봉산이다.



 
바위벽과 초록의 관목이 어울려 있다.


300년이 흐른 1907년 늦가을, 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가 된 한 의병장은 항일구국의 결기(決起)를 다지며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로 들어왔다. 그는 다름 아닌 고종후 아우, 고인후의 11대 종손 녹천 고광순(1848~1907)이었다. 선친에서 이어진 충절의 뜨거운 DNA가 그의 몸속에 흐르고 있었음이랴. 하지만 그 역시 작정하고 달려드는 왜적엔 중과부적, 포대까지 동원한 일제의 공세에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당시 위난 극복의 결연한 의지를 다지며 태극기에 불원복(不遠復)이라는 글을 새기고 가슴에 품었던 일화는 유명하다.

이 때 녹천의 주검 앞에 절규한이가 있었으니 매천(梅泉)황현이다. 그는 고씨 가문의 풍성에 존경심을 표하며 자신, 지식인의 한계를 탄한다.

/연곡의 많은 봉우리 울창하기 그지없다/평생 나라위해 숨어 싸우다 목숨을 바쳤다/전마는 논두렁에 누워 있고/까마귀 떼만 나는구나/나같이 글만 아는 선비 무엇에 쓸까/명문가의 명성 따를 길 없네/홀로 서풍을 향해 뜨거운 눈물 흘리니…,

매천은 3년 뒤인 1910년 경술국치 직후인 9월 10일 자결한다. 한달 뒤 장지연 경남일보 주필은 그의 유작시(절명시)를 본보에 실었다. 경남일보는 그 여파로 정간과 속간, 폐간으로 이어지는 롤러코스트를 탔다.



 
신록이 아름다운 준봉산 중턱을 오르는 모습


두번째 갈림길이 나온다. 배드민턴장 넓이의 암반이 비스듬하게 기울어 있는데 삼화소재산업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일부 산 지도에 대산으로 기록된 곳이다.

출발후 1시간 40분, 고도를 높여 세 번째 암릉에 닿는다. 이 산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암릉미를 자랑한다. 위험하기 때문에 끄트머리 난간으로 진행하는 것은 삼가해야한다. 가까운 곳에 적석산의 실루엣, 멀리 이름을 알수 없는 산 마루금이 어슴푸레 보인다.

산아래 한우판매점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대정마을이 보이고 그 뒤로 암릉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인성산이 버티고 섰다. 서북산 여항산을 비롯, 의령 자굴산 진주 월아산 국사봉까지 꾸러미처럼 즐비하다.

출발 후 2시간 20분 만에 세 번째 528m봉 갈림길이다. 이 지점에 과거 깃대봉 이정석이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근 사라졌다. 왼쪽이 일암리공영주차장 방향이고, 오른쪽 직진방향이 정맥 선동치길이다. 선동치까지 고도를 차츰 낮추다가 낙남정맥과 헤어져 왼쪽 길로 튼다. 주변에 칡과 다래 등 넝쿨식물과 잡목이 군락을 이뤄 밀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적석산 오르는 길을 뒤로 하고 시멘트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일암저수지에 도착한다. 6km남짓 거리에 휴식없이 3시간 30여분이 걸린 산행이다. 하산 중 만난 산행객은 마산 합포구에서 왔다고 했다. 그들은 취재팀 중 한명을 자신의 차량으로 수발사까지 데려다 주었다.

준봉산이 공식적인 산 이름이 된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작은 산에는 구국 일념으로 초개(草芥)처럼 목숨을 던진 의로운 이들이 잠든 곳이다. 그래서 결코 작은 산이 아니다.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떠올린 건 산을 내려왔을 때 일이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준봉산 입구 고종후 신도비 부근
 
삼장사 준봉 고종후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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