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활동가에서 황칠 전도사로"
"시민단체 활동가에서 황칠 전도사로"
  • 김영훈
  • 승인 2019.06.0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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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수 휴림황칠 대표. 하동으로 귀농한 서울 토박이
황칠 효능 알면서 ‘제2의 인생’…“민족나무 황칠, 산업화 이룰 것”
휴림황칠 조창수 대표는 20여 년 전만 해도 서울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했다. 2000년께 아내를 만나면서 아내의 고향인 하동으로 귀농했다.

조 대표는 “서울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니 시골에 대항 동경이 있었다”며 “당시 여자친구(아내)의 고향(하동)에 놀려간 적이 있는데 여기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말했다.

이어 “막연한 생각 끝에 귀농을 결심하고 하동에서 농사를 하게 됐다”며 “당시 조경수 등 나무가 성장 가능성이 높아 나무를 심고 본격적으로 귀농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대학시절 농활(농사봉사활동)로 접한 농촌 경험이 전부였던 조 대표에게 농사는 그야말로 황무지였다. 그는 모든 것이 낯설어 갓 태어난 신생아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조 대표는 “도시촌놈이 할수 있는게 없었다. 농활할 때 좋은 기억만 있지 스스로 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었다”며 “나무 키우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했지만 실전에서는 실수투성이였다. 하루하루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돌이켜 보면 그때 힘들고 어려웠던 것들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며 “하나하나 다 찾아보고 연구하는 생활을 하다보니 몇 년이 지나자 지역에서 나무에 대해서는 최고가 돼 있었다. 덕분에 황칠나무도 나에게 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강조했다.

조 대표의 근성은 황칠나무 재배에서도 발휘됐다. 그는 까다로운 황칠나무를 키우기위해 재배단지를 조성하고 연구에 몰두했다. 그 결과 기업까지 창립하는 성과를 거뒀다.

조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에만 자라고 있는 황칠나무의 특수성 때문에 사업 전망이 좋다고 평가했다.

그는 “까다로운 나무지만 우리나라에만 자생하고 있기 때문에 수입으로 인한 대체가 안되는 것이 황칠나무이다”며 “사업 전망이 좋고 민족 자부심도 있어 황칠에 대한 연구를 지금도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이런 황칠에 대한 조 대표의 자부심은 그의 철학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그는 개인의 이익을 넘어 ‘황칠사상’이 확대돼 황칠산업화로 이어져야 된다고 주장했다.

조 대표는 “황칠은 민족의 애환이 담긴 나무이다. 숱한 고초 속에서도 성장해 나가며 사람에게 좋은 성분을 내놓고 있다”며 “이런 우리 민족의 나무를 발전시키고 알리기 위해 산업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황칠이 성장하고 산업화가 된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들을 다 줄 수 있다”며 “알고 있는 정보를 제공한 후 다시 농촌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고 사는게 목표다”고 말했다.

김영훈기자 hoon@gnnews.co.kr



 
조창수 휴림황칠 대표.
조창수 휴림황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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