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용복의 세계여행[15] 타슈켄트
도용복의 세계여행[15] 타슈켄트
  • 경남일보
  • 승인 2019.06.09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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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급물살 타고 있는
중앙아시아의 중심지

 

 

세상에 이런 곳이 또 있을까.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깨끗한 공기, 천산산맥의 끝자락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 시골에는 어린 시절 고향마을의 아련한 흙냄새가 스며있고, 도시근교에는 소박하지만 수준 높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많고, 더구나 물가까지 싼 이곳. ‘나이가 들어 여행을 하기 힘들어지는 때가 오면 내 남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고 싶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곳. 바로 실크로드의 중심지,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이다.
이 중앙아시아 5개국 즉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은 1991년에 구 소련연방에서 분리되었다. 그 중 우즈베키스탄은 방송에서 간혹 소개도 되어 그렇게 낯설지 않은 나라에 속한다. 기후가 좋고, 아직 개발이 많이 되지 않은 덕분에 공기도 맑으니 정말 살기 좋은 곳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하여 최초로 의회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사회기반시설 개발 등 많은 기회를 약속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십여 년 전 처음 도착했을 때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던 구 소련의 오래된 전투기들, 제복입은 군인들이 즐비하고, 공항시설이 낙후하여 입국장을 빠져나오기까지 한두시간은 예사였다. 거리 곳곳에 경찰들이 교통단속을 빌미로 ‘통행세’를 받고 있었고 대중교통이 부족하여 시내 주요 지점에서 사람들은 같은 방향으로 가는 차들을 세우고 교통비를 흥정하는 모습을 쉽게 보았다. 얼마 전 무비자 협정이 맺어져 여행을 가기 훨씬 수월해졌지만, 내가 처음 방문했던 당시에는 대통령의 독재와 철권통치로 사회 분위기가 억압적이었다. 우즈베키스탄은 2016년 카리모프 대통령의 별세로 25년 장기집권이 막이 내리면서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최근에 다시 방문했을 때 타슈켄트는 훨씬 생동감 있고 발전하는 도시라는 것을 느꼈다. 이럴 때 앞선 기술과 노하우가 많은 우리 기업들이 더 많이 진출하기를 기대한다.

 

이 나라의 수도 타슈켄트는 중앙아시아 최고의 문화도시로 연극이나 발레, 오페라 등의 예술 활동도 활발하다. 이것은 한국에서처럼 고급문화가 아니라, 가까이서 늘  접할 수 있는 대중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자랑할 만한 것이 바로 타슈켄트의 나보이국립극장이다. 주로 오페라와 발레 공연을 하며 입장료가 3000~5000숨 정도. 우리 돈으로 3000원, 5000원이면 세계 정상급의 수준 높은 공연을 볼 수 있으니 우리나라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극장 시설도 훌륭하지만, 관객도 동원된 사람들이 아닌지 의심될 만큼 옷차림이 화려하고 근엄한 신사숙녀들로 가득한데다 배역들의 성숙한 연기와 풍부한 성량이 오케스트라와 어울려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나보이라는 이름은 우즈베키스탄 민족문학의 창시자인 알리세르 나보이라는 인물의 이름을 딴 것인데, 그는 아랍어로만 작품을 쓰던 15세기에 우즈벡어로 문학작품을 창작하여 많은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작가다. 나보이극단은 모스크바, 민스크와 함께 러시아 3대 극단 중 하나이기도 하다.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다른 프로그램으로 공연을 하며, 7월과 8월에는 지방공연이나 해외공연을 떠난다.

 

타슈켄트의 브로드웨이 거리는 시내의 중심이자 젊음의 거리로 저렴하게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이다. 길거리에는 어른 아이 구분 없이 거리의 악사들이 많으며 식당에서도 어린 아이들이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저녁 9시 30분쯤이면 열리는 야시장에는 거리의 화가들이나 공예품들 등 각종 미술작품들을 만날 수 있고, 골동품이나 장신구, 책 등을 사고파는 사람들과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그리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산책 나온 가족들을 볼 수 있다.
 수도 타슈켄트는 몇 가지 점에서 한국과 인연이 닿아 있다. 이곳과 연관이 있는 최초의 한인은 고구려 출신 당나라 장수인 고선지 장군이다. 1300여 년 전 고선지 장군이 파미르고원을 넘어 석국을 정복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바로 이 석국이 오늘날의 타슈켄트다. 그리고 1937년 구 소련에 의해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한 한인들의 일부가 타슈켄트 근방에 정착을 했고, 그 후손들의 상당수가 아직도 이 지역에 살고 있다. 시내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시골집 구조나 아궁이가 있는 부엌이 우리 시골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중앙아시아에는 고려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 우리 문화와 비슷한 것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에서 분리가 되면서 고려인들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 때문에 경제적으로나 어려운 점이 많다고 한다. 또한, 세종한글학교에는 우리나라 말과 글을 배우려는 현지인들로 늘 붐빈다. 인하대는 분교를 설립하여 양국 교류에 앞장서고 있다. 거리에는 지금은 사라진 ‘대우’ 차들이 절반은 차지하고 있어 놀라웠다.

 


타슈켄트에는 한인들 농장이 몇 개 있다. 그 중 한인의 이름을 딴 농장이 딱 한 개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김병화 농장이다. 고려인의 자랑이자 한민족의 자랑인 이곳은 그래서 한국 관광객의 방문 제 1순위에 속한다. 머나먼 중앙아시아 땅에 한국인 이름을 딴 거리가 있고, 그의 동상과 기념관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하다.
김병화 선생은 이 농장으로 강제 이주 당한 한인들을 보살폈고, 한편으로는 쌀 생산을 성공으로 이끌어 노동영웅의 호칭을 받았다. 당시의 사진과 의복, 신문자료 등이 김병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주 초기 그들의 핏줄은 한인이지만 국적은 러시아도, 우즈벡도 아닌 상태에서 교육이나 사회참여의 기회가 매우 적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척박한 땅을 개척해 농사를 짓게 되기까지 많은 피와 땀을 쏟아 부었다. 김병화 농장에도 한때 1500명의 고려인이 거주했지만 지금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많이 떠나가 약간 썰렁함이 느껴진다.
김병화 박물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이 땅에서 나는 새로운 조국을 보았다.”
 그 어디에 있든 살아 있으라, 근면 하라. 내 삶의 모토도 이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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