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바다에 감성을 묻다[5]
쪽빛바다에 감성을 묻다[5]
  • 박도준
  • 승인 2019.06.10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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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에 물든 어부의 바다

통영 평인노을길
코스:통영대교 북측 입구~노을전망대~평림동(9.8㎞)

오션뷰 전망대:노을전망대
명소:통영대교, 수국작가촌, 노을전망대
문의:통영관광안내소 055-650-2570

 

해는 한참 떠 있을것 같은데 어느새 바다로 사라진다. 금새 해가 진 것 같은데 노을은 한참 익어간다.
너무 한적하기에 하늘과 바다, 섬과 양식장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을 ‘멍 때리며’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가 통영 평인노을길이다. 노을 조망권은 어느 곳이던 서쪽을 향해 있다. 통영 평림동과 인평동을 잇는 이 길에서 바라보면 바다를 차지하고 있는 굴과 가리비양식장들이 연출하는 풍경은 마치 푸른 비단에 하얀 실로 수를 놓은 듯 보인다.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수산물을 심고, 키우고, 따고, 까며 살아가는 어민들이 있다. 곳곳에 가리비와 굴 폐각들이 담장을 이뤄 볼거리를 제공한다.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폐각들이 여행객에게는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통영대교에서 노을전망대를 거쳐 평림동에 이르는 이십오릿길은 역으로 오는 것이 좋다. 노을을 감상하고, 통영대교에서 야경을 보고 통영먹거리를 즐기는 것이 가성비와 가심비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파란색 통영대교는 밤이 되면 시시각각 변하는 조명빛으로 바다까지 물들인다.


통영대교는 통영운하를 가로질러 세워진 길이 591m·폭 20m의 다리로, 통영시 당동과 미륵도의 미수동 잇고 있다. 아치트러스 공법 등을 이용해 가설했는데 140m의 중앙 아치 부분에 196개의 투광등을 달았다. 밤이 되면 다리의 조명이 푸른색부터 오렌지색까지 변화무쌍한 빛의 그림자를 바다 위로 비추며 멋진 야경을 선보이기도 한다. 통영대교의 야경은 해저터널과 함께 통영의 명물이다. 연인과 부부들에겐 낭만적인 데이트 코스로 더 할 나위 없이 좋다.

학교가 몰려 있는 인평동의 도심을 지난 통영시 관광안내도에 나오는 수국작가촌을 찾아 민양마을로 내려섰다. 이정표는 있는데 어딘지 알지 못해 찾지 못했다. 마을 주민도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는지, 굴 까러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수국작가촌이 있는 민양마을. 평인일주도로에서 에스자형 도로를 내려가면 판자같은 배들이 그림처럼 떠 있다. 어촌마을의 낮풍경은 고요하기 그지없다.
수국작가촌 내려가는 길.

  민양마을 앞바다는 굴과 가리비양식장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인평어촌계회관 인근 공터와 방파제에는 알갱이를 발라낸 굴과 손바닥만 한 가리비폐각들이 담벼락을 이루고 있거나 수북이 쌓여 있다. 줄에 끼워 정련하게 쌓아둬 여행객들에게 어촌마을의 색다른 풍경을 제공했지만 사실은 이들 폐각들을 처리할 방법이 없어 방치해 두고 있는 것이다. 공유수면 매립에 쓰이거나 비료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이도 한계에 달해 현재 골머리를 앓고 있다. 상항도와 중항도로 가는 길에도 폐각더미들이 하얗게 놓여있다.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어촌마을과 폐각만 보고 가는 길. 평안일주도로 타고 가다 민양마을 뒤쪽에 내려 바다를 조망했다. 아담한 어촌마을, 고요하다. 앞바다엔 온통 양식장이고 육지엔 폐각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문득 기자 출신 김성우 시인인 쓴 시가 생각난다. 김희갑씨가 곡을 붙이고 가수 이동원이 불렀던 노래 ‘물나라 수국’

국토의 아득한 끝 남쪽바다 섬/대해에 지친 파도 쉬어 잠든 곳/고향 잃은 사람아 고향은 여기/한려수도의 首都 물나라 수국/우리는 외로운 섬 바다는 고국/그리운 그 나라로 돌아갈거나/노래 잃은 사람아 노래 불러라/물의 공화국이여 나의 수국이여


통영지맥의 끝자락 갈목마을은 펜션들과 커피숍이 들어 서 있고 이곳에서 내려다 본 바다도 양식장 천지였다. 푸른 바다에 붓으로 흰 점을 자로 잰 듯이 찍어 놓은 부표들이 정연하게 떠있다. 양식장 사이로 어선들이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흑룡호선착장으로 내려가면 목섬이 마을 앞에 놓여있다. 길게 뻗은 모양이 목같이 생겼다 하여 목섬이라고 한단다. 갈목마을은 뗏마낚시와 갯바위낚시로 알려진 곳으로 방파제에서 심심풀이 낚시도 즐길 수 있다. 언덕 위엔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펜션들과 조각상들이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노을전망대에서 지켜본 일몰.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작은 갈목마을과 우포마을을 지나자 이번 코스의 하이라이트인 노을전망대에 도착했다. 알려지지 않았으니 아는 사람만이 찾는 곳이다. 공식명칭이 없어서인지 안내판도 없어 평림동까지 갔다가 되돌아와 남해안 해안경관도로 15선의 사진을 비교해서 겨우 찾았다. 평인노을길임을 알려주는 것은 섬들을 조망하는 사진에 눈여겨봐도 놓치기 십상인 색 바랜 ‘평인일주로 노을전망대’라는 글자뿐이다. 그 외 시설물은 햇빛막이 조형물과 의자, 테크바닥, 자전거거치대가 모두이다. 화장실은 최고수준으로 들어서면 잔잔한 음악까지 퍼져 나왔다.

전망대에 서면 먼저 소자망도, 대자망도 그 뒤엔 장구도, 고성, 삼천포, 사량도가 보이고 왼쪽 끝으로 갈목마을 앞에 있던 목도, 장도, 필도가 자리 잡고 있다. 평인노을길은 서쪽이 바다이기 때문에 어딘들 노을이 아름답지 않는 곳이 없지만 이중 이곳이 최고의 조망권을 이룬다. 차량 통행도 거의 없으니 찾는 이도 없다. 연인끼리, 부부끼리 오붓하게 명상하기 좋은 곳이다.

삼천포 쪽 하늘을 물들기 시작한 노을은 고성 쪽으로 기울어지면서 더욱 선명한 붉은 색깔을 뿜어내고 있다. 전망대 사진에는 노을이 사량도 쪽으로 지는 것을 보면 겨울에 찍은 모양이다. 이곳엔 겨울 노을이 더 볼만하다는 얘기인가 싶다. 윤슬이 노을빛을 받아 황금물고기의 비늘처럼 퍼덕인다. 양식장의 하얀 부표들도 밤이 오고 있음을 아는지 검은 점으로 변한다. 섬도 어선도 형태를 가진 모든 것들이 검게 변한다. 다만 노을이 대자망도를 너머 고성 쪽 바다와 하늘을 짙은 분홍으로 타오르고, 자망도와 전망대 사이에서 빛기둥을 만들 뿐이다. 지는 해는 한참을 정지된 화면처럼 있다, ‘멍 때리기’를 하는 것처럼. 하얀 깃털 같은 구름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빛기둥은 전망대 앞에 선 나를 가리키고 있다. 하늘과 구름과 해, 바다와 섬과 육지, 그리고 나를 연결하는 빛기둥이 찬연한 빛을 뿜어내고 있다. 나도 ‘멍 때리기’를 시작한다. 노을은 어둠을 잉태하고, 어둠은 안식을 가져다 준다.

너무 아름다운 것 앞에 서면 말문이 막힌다고 했던가. 머리가 멍해지면서 바다도 어민도 하늘도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하는 감탄사도 나오지 않는다. 가슴이 벅차올라 그저 침전하고 있을 뿐. 그렇게 노을은 지고 있다. 바다와 섬, 그리고 어부들을 남겨놓은 채….

글·사진=박도준·김지원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동피랑
세병관
해저터널
통영대교 아래 야경.
노을길의 석양
노을길 석양
어느 펜션에서 바라본 노을길 석양. 커피 한잔이 어울릴 것 같은 노을빛인데 카페는 내년봄까지 휴업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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