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추억을 쌓다[1] 그저 어머니였다
시장, 추억을 쌓다[1] 그저 어머니였다
  • 백지영
  • 승인 2019.06.10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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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봉 쌀 상회 문보금 아지매
정직과 신뢰로 버텨온 30년
우리네 전통시장에는 추억이 있다. 많은 점포와 노점이 모여 있는 시장은 많은 사람의 삶의 일터이자 추억이 혼재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전통시장을 보존하고 가꿔나가야 한다고 말을 한다. 이런 전통시장을 마트와 백화점에 더 익숙한 청년들이 제대로 한번 알아보겠다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청년들은 서부경남에서 가장 큰 진주 중앙시장의 상인들을 만나 침체한 전통 시장 속 상인의 애환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그들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본보는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진주중앙유등시장 청년기록단이 ‘사람, 공간, 추억 공작소 나이테’라는 이름으로 펴낸 두달여 간의 여정을 기록한 ‘시장, 추억을 쌓다’를 9차례에 걸쳐 지면으로 소개한다. /편집자주


 
선봉 쌀 상회 문보금 아지매


진주 중앙유등시장에서 30여년간 ‘쌀’이라는 품목 하나만을 가지고 자리를 지켜온 문보금 아지매.

중앙시장만큼이나 오랫동안 한자리를 지켰다. 도매업으로 시작한 쌀장사가 번듯한 ‘선봉 쌀 상회’라는 간판을 달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남편이 도매업으로 쌀장사를 했었어. 자기 집안 재종(육촌) 형님이 쌀장사를 하는데 점원으로 들어가 그리 장사를 하게 된 거지.”

남편의 영향으로 시작된 쌀장사는 열심히 일한 덕분에 중앙시장 주차장 부지에 상회를 열 수 있었다.

지금의 자리로는 기존 부지가 시설현대화 사업으로 주차장이 되면서 옮겼다. 같이 장사를 하던 상인들은 대부분 연로해지면서 은퇴했다고 한다.

“(손님이 별로)없지. 물론 단골이 있지마는. 급하면 미리 백화점이나 그런데 주문을 못 했을 때나 어중간하다 싶으면 (그 때 여기서 사) 쓰지. 사양길 들어선 지는 잡곡, 미곡 이런 데가 오래됐지.”

미곡 시장만 변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구역도 옛날과 비교했을 때 중앙시장은 많이 변했다. 오랫동안 여기서 자리를 지킨 아지매도 변했지만, 다른 상인들도 많이 변했다.

“여기에도 보면 우리 같은 사람은 어중간하게 나이도 있고, 경제력도 없으니까 이제 또 일 놓기는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애. 진주는 농촌 도시다 보니 유동인구가 많으려면 공장이 많고 이래야 하는데 다 사양길로 되고 있지. 세대가 젊은 세대로 바뀌잖아. 청년들이 시장에 잘 안 들어오거든. 보통 해봐야 50~60대가 오지.”

인터뷰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단골이 가게를 찾아왔다. 고객이 많냐는 질문을 했으나 실례였던 것 같다. 그저 지금은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인 것만 같았다. 사양길에 들어선 시장 쌀집, 하지만 이러한 현실에서도 아지매는 30년간 굳건히 지켜 온 자신의 장사 신조를 말했다.

“장사꾼이 수입산 사가꼬 보따리 매서 국산이라 비싸게 팔아묵는 그런 게 있었는데, 우리 같은 경우는 절대 그러지는 안해. 정확하게 국산은 국산이고, 수입은 수입이고, 킬로(kg)가 모자라든가 섞어 판다는 게 없지. 그런 게 내 장사 신조야. 이것만은 꼭 지키지.”

정직과 신뢰는 곧 경영 철학이다. 그것이 중앙시장과 함께하면서 지금까지 장사를 유지해 온 비결일 테다.



 
선봉 쌀 상회 문보금 아지매


문득 중앙시장에서 끊임없이 시도되는 청년 상인들의 도전에 대한 아지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청년들은 우리보다 많이 배우고, 시야가 넓으니까 우리 시장 상인이 모르는 정보라든가 기술을 따가 와가꼬, 여기서 그런 것들을 하면 좋겠지. 젊은 사람들은 우리가 모르는 것들을 많이 들고 와서 했으면 좋겠어”

전통시장에 청년 상인이 어떤 역할을 해줘야 할지 기대가 크다는 뜻일 테다. 30년 동안 장사한 아지매가 보기에도 전통시장에 새로운 것을 융합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조금은 사적인 대화도 이어졌다. 아들하고 딸을 길러낼 수 있었던 이 자리는 어쩌면 굴레와도 같은 것이었다.

“집에 가면 할 게 많아. 아들하고 딸이랑 가깝게 지내거든. 같이는 안 살지만, 반찬 같은 것도 해주고 목욕도 가고. 아침에 장사하는 사람은 무조건 돈을 벌이든 안 벌이든 장사에 와야 한다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제일 얽매여서 생활을 하지.”

지역이 어디든, 직업이 무엇이든, 모든 어머니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들 중·고등학교, 대학교 보내려고 할 때, 애들이 그런 꿈꾸고, 열심히 설치고 막 이럴 때 40대 초반에서 40대 후반, 그때가 전성기였어. 희망도 보이고, 애들 크는 거 봤으니. 지금은 애들 다 키워서 손녀, 손자 다 보고 할 일이 별로 없으니까 지는 해라고 느껴지지.”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는 순간이 언제일까 하는 질문에 “애들이 커가는 모습을 볼 때”라고 답했다. 시장의 상인들도 어머니이고, 아버지임을 다시 깨닫는 순간이었다.

“옛날에는 진주장만 있었는데 지금은 진주 전체에 금요장·화요장·수요장 이런 게 많지. 옛날에는 진주 중앙시장만 있었는데, 그래서 고성·삼천포·마산·진해 상인들이 와가꼬 차로 쌀을 사가고 그랬는데. 그때가 좋았어. 돈도 잘 벌고, 다른 사람들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고, 지금 주차장 부지에 기사가 와서 거제·고성·통영 이 부근 장으로 쌀 가지고 가고 그랬었지.”

옛 추억을 아련하게 회상하는 아지매의 말에서 새삼 추억이란 단어가 절로 떠올려진다.

누군가를 인터뷰해 본 적도 없고 인생에 대해서 여쭤본 적도 없어서 처음에는 설렘 반, 두려움 반이었다.

여러 상회를 방문했으나, 인터뷰 목적과 대상자의 의견을 존중해 선봉 쌀 상회만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한 달에 걸쳐서 세 번의 만남을 가지면서 허락을 받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이런 질문을 해도 될까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경험이 없으니 한 발을 내딛기도 힘든 것이다. 아지매는 낮선 청년의 질문을 정말 잘 받아주었다. 배려였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진심으로 우러나서 하는 삶의 지혜가 담겨 있는 말은 같은 처지에 있어 본 적은 없지만 절로 공감이 갔다.

아지매도 누군가에게는 어머니로 불린다. 그렇게 우리의 어머니는 상인, 직장인, 주부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름을 잃고 다양한 호칭으로 불린다.

오늘같이 사람이 소외되는 세상에서 조금 더 친근하게 어머니·아버지·아지매·아재 등으로 친근하게 불러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글·사진=이주열 중앙유등시장 청년기록단원·정리=백지영기자

 
 
선봉 쌀 상회 문보금 아지매와 이주열 진주중앙유등시장 청년기록단원
이주열 진주중앙유등시장 청년기록단원



남다른 열정의 소유자

이주열(중앙유등시장 청년기록단원)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기록단을 핑계 삼아 시간이 날 때마다 시장을 방문했다. 방문한 시장은 매 순간 활기찼고, 변화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를 느끼며 이미 사양길이라는 미곡시장의 상회들을 방문했다. 거절하는 분도, 당황하는 분도, 하자는 분도 있었다. 그들의 공통적인 질문은 “왜 하노?”였다. 사실은 질문을 받았을 때, 나도 잘 몰랐다. 그렇지만 지금 같은 질문을 듣는다면 ‘청년은 시장과 활기찬 모습이 닮았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내가 방문한 중앙시장은 시장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모습으로 북적북적했고, 내가 아는 청년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좌절하면서도 질문을 던지는 열정적인 세대이다. 그러한 점에서 청년과 전통시장은 이름과 달리 비슷했다. 하지만 둘은 잃어가고 있다. 중앙시장은 당장 오후 시간대만 지나면 활기를 잃고, 지금의 청년은 도전과 질문, 창의의 정신보다는 좌절을 더 많이 겪으며 오히려 위축되는 모습을 보인다.

전통시장의 수요층이 청년이 아니고, 우리에게 마트가 편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끔은 불편함을 느끼기도, 감수하기도 하며 추억의 발걸음을 걸어보자. 시장을 걸으면서 음식을 먹고, 장을 보면서 상인들과 얘기하고 요리에 대한 꿀팁을 얻어가자. 오랫동안 함께한 활동이 끝나서 아쉽고, 허전하다. 하지만 우리는 활동을 통해서 새로운 전통시장의 모습을 알았다. 언제나 진주에 있는 중앙시장에 가자. 나와 닮았지만 괴리감이 있는 시장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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