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의 식생활 어휘가 지닌 말맛
한국어의 식생활 어휘가 지닌 말맛
  • 경남일보
  • 승인 2019.06.1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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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석(대아고등학교 교감)
정규석
정규석

우리나라는 오랜 옛날부터 농경을 바탕으로 정착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음식 문화가 상당히 발달되어 있다. 발효음식에서부터 열을 가해서 조리하는 음식, 말려서 먹는 음식까지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이 있다. 우리말도 이들 음식의 맛에서부터 조리 방법뿐만 아니라 식재료와 관련된 단위까지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어휘들이 발달해있다. 따라서 이들 어휘들을 통해 다른 언어와는 차별된 독특한 말맛을 느껴볼 수 있다.

먼저 맛을 표현한 어휘들을 살펴보면, 우리말의 어휘에는 혀의 기본 미각을 나타내는 ‘달다, 쓰다, 시다, 짜다’를 포함하여 ‘맵다’가 있다. 이 정도의 어휘들은 다른 언어에도 있다. 그러나 우리말은 이 외에도 ‘떫다’가 있으며 기본 미각을 나타내는 어휘들도 느끼는 정도에 따라 또다시 분류되어 더욱 구체적인 맛들을 표현할 수 있다. ‘달다’를 예를 들면, 단맛의 정도에 따라 ‘달짝지근하다, 달콤하다’ 등이 있고, 쓴맛의 정도에 따라 ‘씁쓰름하다, 씁쓰레하다’ 등이 있다.

열을 가해서 음식을 조리할 경우에는 정말 말맛이 묻어나올 만큼 다양한 어휘가 발달해 있다. ‘삶다, 지지다, 고다, 찌다, 볶다, 튀기다, 굽다, 데치다’ 등 조리방법에 있어서 미세한 차이까지도 반영한 어휘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말은 이처럼 음식과 관련된 어휘가 많은 만큼 음식 재료를 일정한 양만큼 묶는 단위도 매우 발달되어 있다. 이러한 단위를 나타내는 어휘들에서도 우리말의 독특한 말맛을 느껴볼 수 있다. 생명력을 잃은 현대인의 무기력한 모습을 말린 명태에 비유한 최승호의 시 ‘북어’를 살펴보면, ‘북어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딱딱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북어를 세는 단위인 ‘쾌’는 북어 20마리를 말한다. 우리말은 북어뿐만 아니라 식품에 따라 단위를 나타내는 어휘가 매우 발달해있는데 오징어 한 ‘축’은 20마리를 말하고, 생선 한 ‘손’은 2마리, 김 한 ‘톳’은 100장, 과일이나 마늘 한 ‘접’은 100개, 탕약 한 ‘제’는 20첩을 말한다. 이들 어휘들을 살펴보면 음식재료마다 옛날부터 보관해두고 먹기 좋을 만큼의 적절한 양을 기준으로 단위를 만들어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조금만 생각해보면 혀로 느끼는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우리말 속의 다양한 어휘들이 주는 맛도 그만큼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언어들이 흉내 내기 어려운 우리 한국어만의 독특하고 다양한 말맛을 우리는 평소 섭취하는 음식들과 함께 느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정규석(대아고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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