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94]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94]
  • 경남일보
  • 승인 2019.06.1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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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김달진문학관
김달진문학관




낮고 그늘진 곳을 사랑한

/김달진



사람들 모두

산으로 바다로

신록(新綠)철 놀이 간다 야단들인데

나는 혼자 뜰 앞을 거닐다가

그늘 밑의 조그만 씬냉이꽃 보았다.

이 우주

여기에

지금

씬냉이꽃이 피고

나비 날은다.

-‘씬냉이꽃’-




초여름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산과 바다로 나들이를 떠나고, ‘나’ 혼자 집 뜰을 거닐다가 그늘에 피어난 작은 씬냉이꽃을 발견한다. 시인은 삶의 그늘진 곳에 피어있는 ‘씬냉이꽃’을 바라보면서 세상의 번잡함과 세속적인 자리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기다운 삶을 살아가는 ‘씬냉이꽃’과 시적화자가 머무는 뜰앞의 ‘그늘진 곳’이 바로 우주의 주인이자 중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낮고 외진 곳, 사람들의 눈길이 머물지 않는 그늘진 곳에 ‘씬냉이꽃’과 ‘나비’가 어울려 이 우주의 중심지로 만들어가고 있는 모습 신선한 감동을 준다. 뭇사람들이 화려하고 빛나는 공간을 원하지만, 시인은 그런 공간보다는 사람들이 외면하기 쉬운 작은 뜰의 그늘진 곳에서 비록 하찮은 존재지만 목숨이 다할 때까지 힘껏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씬냉이꽃’과 ‘나비’, 이들이 우주의 주인임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낮고 그늘진 곳에서 자신의 향기를 힘껏 발휘하며 살아간다면 높은 자리에 앉아 큰소리치며 살아가는 사람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선언하는 듯한 시다. 작은 나비 한 마리, 꽃 한 송이 역시 본질적으로는 고귀한 존재임을 낮은 목소리로 세상에 알리고 있다.



 
 


◇김달진문학관과 시인의 생가

유월의 첫날, 낮고 그늘진 곳을 사랑한 김달진 시인을 만나기 위해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평생교육원 ‘체험론적 시창작과 힐링’ 시창작반 수강생들과 함께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김달진문학관과 시인의 생가가 있는 소사마을, 박배덕갤러리마당을 탐방했다. 김달진문학관(관장 이성모 교수)에 도착하자, 심화선 학예사께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계셨다. 지붕 꼭대기 뾰족탑이 인상적인 키 낮은 문학관으로 안내한 뒤, 생명파 시인인 서정주, 오장환 등과 함께 시인부락 동인으로 활동한 김달진 시인의 생애와 업적, 작품 속에 숨은 의미, 선생께서 생전에 즐겨 쓰던 물품 등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김달진문학관에서는 ‘찾아가고 찾아오는 시낭송’, ‘시노래’, ‘음악콘서트’ 등을 통해 <신나는 예술여행>체험을 하게 하는 등 창원시민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 서비스 활동도 하고 있었다.

문학관 바로 앞에 시인의 생가가 있었다. 어린 시절 필자의 고향에서 더러 보았던 사립문, 마삭줄과 담쟁이덩굴로 차려입은 돌담이 무척 인상적이다. 비파나무, 100년 된 감나무, 태산목, 대나무, 우물, 장독대 등이 서로 자리다툼하지 않고 다정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주인을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물 옆에는 열무를 심어놓은 작은 남새밭이 있었다. 시 ‘열무우꽃’의 소재인 무를 심어놓은 것은 탐방객들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생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지붕이다. 지붕은 갈대 이엉으로 지어놓아 아주 멋있게 보였다. 그런데 일하시는 분에게 물어보니, 자연 갈대가 아니라 인조갈대라고 했다. 보통 갈대의 수명이 5~7년 정도 되는데, 인조 갈대는 20년 이상 쓸 수 있다고 한다. 내구성과 경제성 면에서 탁월하다 보니 인조갈대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가는 억지로 꾸며 놓지 않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띠고 있는 점과 분답스럽지 않고 조용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소사마을 옛 골목 풍경과 갤러리마당

생가 옆 골목길은 70년대 이전의 간판과 골목 풍경을 재현해 놓았다.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느끼게 하는 옛날 풍경이 이목을 끌었다. 각종 골동품과 생필품, 추억의 장난감, 벼탈곡기, 타자기, 진공관 전축 등을 전시해 놓은 김씨박물관과 구멍가게들이 탐방객들의 발걸음을 머물게 했다. 소사마을의 골목과 박물관 등은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아련한 추억을 회상케 했다.

유월의 땡볕을 동무 삼아 문학관에서 800m 정도 걸어서 올라가니 박배덕갤러리마당이 나타났다. 집 전체가 갤러리였다. 솟대, 돌가족, 돌로 만든 거북이, 비너스탑, 고사성어탑, 우리들의 일그러진 초상 등 다양한 미술작품이 길 양켠에 전시되어 있었다. 박 화백의 작업실에는 붓으로 점을 찍어서 그려놓은 독특한 그림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개구리나 까치, 거북이와 새 등의 형상을 빌려 만들어놓은 여러 미술품들을 자세히 보니, 보일 듯 말듯 사람의 흔적을 새겨놓은 점이 참 인상적이었다. 작품의 중심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텃밭에서 김을 매고 계시던 박배덕 화백의 모습마저도 갤러리에 전시된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졌다.

김달진 시인의 제자들이 시인의 생가를 복원하고, 문학적 업적과 열정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지었다는 김달진문학관, 낮고 소박한 건물이지만 이 세상 어느 문학관보다도 존귀하게 보였다. 시인의 생가가 있는 소사마을, 갤러리마당을 탐방하면서 문학과 예술이 인간 본연의 정서를 아름답게 가꾸는 일을 하고 있음에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 진해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더위를 식혀주는 초여름, 낮고 그늘진 세상을 다독이기 위해 구도의 정신으로 삶을 사신 김달진 시인의 일생이 사리처럼 영롱하게 필자의 뇌리에 남은 하루였다.



/박종현(시인, 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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