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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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9.06.1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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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경남지역의 ‘계림시회’ 동인회(7)

박경리, 토지, 평사리를 품고
길을 내듯 시를 쓰는 최영욱

계림시회, 지역의 얼굴들이
생생히 살아 쓴 ‘지역을 쓰다’
계림시회 동인지 3집에서 동인 1인 한 편씩의 시를 읽어왔는데 이제 한 사람 최영욱 시인만 남았다. 최영욱 시인은 하동 출생으로 2001년 ‘제3문학’으로 등단하고 제3의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에 ‘다시 평사리’ 등이 있고 산문집 ‘산이 토하면 강이 받고’가 있다. 박경리문학관장과 이병주문학관장을 맡아 문학수도 하동의 물길을 트고 있다.

최영욱을 생각하면 토지문학제를 빼고 설명하기 힘들다. 악양면 평사리에 박경리 <토지>의 소설 속 배경인 최참판댁이 지어지면서 우여곡절 토지문학제가 개최되고 토지라는 대하소설의 힘으로 축제는 축제 이상의 의미로 자리잡았다. 그 뒤안길에 최영욱의 인생이 나무 한 그루 또는 풀섶의 야생화 같은 눈빛, 그 위에 흐르는 밤하늘의 별빛 눈동자로 박혀 있음을 아는 사람은 안다.

제1회 토지문학제에서 최영욱 시인은 필자에게 <10분 토막 강의>를 주문했다. 필자는 이것 저것 제끼고 박경리의 시집에서 진주와 관련된 <미친 사내>를 읽고 설명했다. “옛날에/ 또개라는 미친 사내가/ 진주에 살았었다//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막고 서서/ 앞,앞이 말못한다, 하며/ 가슴 치고 울던 사내// 갈래머리 소녀 적에/ 보았던 일/ 비오는 날/ 나를 사로잡는다// 그는 새가 되었을까/ 앵무새가 되었을까// 그는 꽃이 되었을까/ 달맞이꽃이 되었을까” 시에 나오는 또개라는 사람은 진주의 ‘삼개(또개, 판개, 장개)’로 진주 시외주차장에서 큰 소리로 마이크 대신 호객행위를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별볼 일 없는 사람을 박경리 작가는 꽃으로 새로 올려세운 것이었다. 이야기를 풀면 더 길게 할 수 있지만 대하소설가의 긴 강 풀섶에는 달맞이꽃도 있음을 찍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토지문학제는 프로그램을 어깨너머로 넘겨다 보아도 이른바 콘텐츠 면에서 구구 화려하다. 거기다 최시인은 ‘토지’ ‘지리산’이라는 우리나라 대하소설의 끝없는 지평을 허리에 짊어지고 가고 있다. ‘토지’와 ‘지리산’을 내려놓으면 있는 듯 없는 듯 ‘산하(山河)’이리라. 그러나 그 짐은 시인에게는 실존으로 함께 가는 평사리 들녘의 논길이거나 물꼬가 아닐까 싶다.

최시인은 ‘지역을 쓰다’에 <대첩의 바다, 노량>을 보여준다. 2018년 ‘노량대교’개통을 축하하여 쓴 기념시다. 기념시는 행사시 또는 축하시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시 자체의 본격적 의미보다는 공동체 행사의 기념적 주제에 충실한 장르라 할 것이다. 남해 설천면과 하동 금남면을 잇는 다리, 장군의 전략이 승리로 가는 다리, 지금 최시인은 문화와 풍류를 잇는 다리라고 명명한다. 사랑의 다리거나 보살의 다리로 읽힌다.

이런 시를 시인 아무나 쓰지 않는다. 지역에서 지역을 위한, 지역의 얼굴이 되어갈 때 비로소 붓대가 움직이는 것이다. 어떤 문인단체가 지역시를 남기기 위해 책 한 권 준비를 할 때 소속 시인 거의 반수가 ‘나 그런 시 못써’ 했다는 것이다. 어떤 간부가 말했다. “보살정신이 한 됫박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을….” 계림시회는 그런 의미에서 ‘지역을 쓰다’가 살아 있다 하리라.

이번 3집에는 김혜연 동인 추모시 특집으로 외부 원고를 받아 실었는데 눈에 딱 들어오는 시가 여럿 있지만 필자는 이우걸 시인의 <이별의 형식>에 눈이 꽂혔다. <y에게>라는 부제가 붙어 있어서 김혜연 시인을 추모하는 뜻이 밝혀져 있다. “마른 갈잎 같은 너의 입술에서/ 태어난 아픈 말들은 거친 옷을 입곤 했지만/ 그것이 네가 발명한 정의였음을 나는 안다// 애초부터 이 땅엔 마실 물이 없음을/ 그 많은 실패를 통해 너무 일찍 알고 난 뒤에/ 새로운 별을 찾아서/ 떠난 것도 나는 안다// 속 터지는 추억들 허공에 모두 뿌리며/ 네가 건너갔을 시린 이승의 하늘/ 그것이 인생인 것을/ 나는 아직 모르고 산다” 시가 말끔하다. 시조이지만 시조의 음보를 맞추지 않아도 잘 다린 바지같이 흐른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가는 이야기를 진술의 팩트를 이용하지 않고 이리 쉬운 비유로 끌고 가다니! 이우걸 시인에게 국밥 한 그릇 출출할 때 시장통에서 사 주고 싶다.

계림시회를 생각하니 수유리 ‘詩會’에 마지막으로 참가했던 이육사 시회가 떠오른다. 물론 한문 시회였고 고 김종길 교수께서 수유리 자택 근처에서 이육사가 왜경에 끌려가기 전에 열었던 시회를 필자에게 일러준 것이 그 수유리시회였다. 시회를 통해 계림, 또는 나라의 본적지를 새기는 동인회가 되고 장수하는 동인지가 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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