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단상]불안과 회의(懷疑)
[월요단상]불안과 회의(懷疑)
  • 경남일보
  • 승인 2019.06.1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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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불안을 겪지 않을 수 없으며 어쩌면 우리 인간의 삶이란 불안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불안의 조건이 되는 건 역시 물질적인 소유가 대부분이기도 하지만, 불안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우린 무엇을 위해 살다가 훗날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만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 인생은 불안에서 해소되긴 어렵다고 봐야 한다.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는 별로 큰 뜻을 두지 않고 그냥 무심코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의 정신적 깊이 또한 깊다고는 볼 수 없는 물질적인 것을 소유하는 데 삶의 온갖 의의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일단 그러한 문제에 뜻을 두게 되면 그들은 정신적 과제에 대하여 회의(懷疑)를 품게 되므로 깊은 불안에 빠져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의 삶에서 불안을 해결해 주며 모든 근본적인 회의에서 풀어줄 수 있는 건 바로 종교가 아닐까 한다. 종교만이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주는 근본적인 요소가 신앙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신앙은 종교의 문제인 동시에 지식의 과제도 아니며, 또 예술이나 도덕의 문제만도 아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 도덕이 해결 짓지 못하는 삶의 무거운 짐까지 풀어주는 것이 종교이다. 신앙은 도덕을 초월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지식을 포함하면서 초월하는 것, 도덕을 인정하면서도 그 도덕을 넘어서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이기 때문이다.

신앙은 지식이나 도덕이 아니라 종교적인 체험에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지성, 감정, 의지를 종합한 인격이 어떤 종교적 실재, 즉 신과의 인격적 접촉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신앙이라는 뜻이다. 신비로운 체험, 생명을 바쳐 얻은 종교적 생활의 결과가 신앙의 바탕, 믿음의 근원이 된다. 불타도 그 인격의 감화(感化)와 생활의 능력으로 종교적 진리를 보여 주었으며, 몸소 십자가에 고난을 받은 그리스도도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로서 인류의 구주임을 증명해 주셨다. 신앙이란 초월적인 능력자, 하나님을 믿는 일이며 신에게 복종하며 그 뜻대로 살아가는 일이다. 삶의 영원한 뜻과 참다운 생명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을 체험할 때 우리의 삶도 희망과 영광에 머무르지 않을까 한다.
 
/이석기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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