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추억을 쌓다[2]맥(脈)을 잇는 마음으로
시장, 추억을 쌓다[2]맥(脈)을 잇는 마음으로
  • 백지영
  • 승인 2019.06.17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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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중앙지업사 조현숙 아지매
경남 종이 유통 진주지업사 중 홀로 남아
사람들에게 옛 풍습과 추억을 되새겨
중앙지업사에서 판매하는 물품들.


옛날부터 진주 장시는 미곡 집산지와 면포, 종이 등 수공업품 생산지로서 명성을 떨쳤다.

그중 종이를 활발히 유통했던 진주 중앙지업사는 할아버지와 친정어머니를 이어 조현숙 아지매가 꾸려나가고 있다.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3대에 걸쳐 내려오는 유서 깊은 가게다.

“할아버지 때는 한지를 위주로 경남 일대에 전부 대주는 도매상을 했어요. 지금은 한지를 옛날만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많이 나가지는 않지만 중앙지업사라는 이름은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지매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70년 가까이 내려오면서 판매전략도 많이 변했다.

“어머니가 운영하면서 한지에 바구니, 결혼할 때 음식 담아가는 예단 바구니를 취급하시게 됐고, 저는 거기에 각종 담양 대나무 대자리부터 나무 소재 생활용품까지 구비하게 됐어요.”

인기상품인 왕골돗자리는 요즘 같은 여름철 거실에 깔면 땀이 차지 않는다고 한다. 아지매는 대나무의 쓰임새가 참 많다고 했다.

“대나무 이런 거는 황토 방 같은 데 깔면 온기가 빨리 식지 않아 따뜻하면서도 대나무에서 피톤치드가 나와서 집먼지진드기가 없다고 해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간장독 속에 대나무를 넣는 이유가 대나무가 방부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숯도 대나무 숯이 좋잖아요.”

이야기는 물레 굴러가듯 술술 이어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자신이 판매하는 대나무 바구니를 들어보이는 조현숙 아지매.
-할아버지께서 운영하시던 옛날과 지금은 어떻게 다르나요?

▲지금은 경기가 많이 안 좋아서 제품을 저렴하면서도 고급지게 팔 수 있도록 노력을 하고 있어요.

옛날에는 시골 분들이 많이 만드셨는데 직접 손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너무 힘이 드니깐 이제 안 만들려고 해요. 진주 인근에도 한지 만드는 곳도 있고 바구니, 복조래 만드는 곳도 있는데 그 좋은 기술을 지금은 활용을 안 하시려고 하거든요. 많이 만들어주셔야 요즘 사람들도 이렇게 만들고 이렇게 사용한다는 걸 알고 사용할 텐데요. 계속해서 그런 제품들을 많이 생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본인만의 운영비법이 있다면요?

▲그냥 정직하게, 손님들 오시면 친절하게 해드리고 국산은 국산이라고 설명해 드리고 수입산은 수입 제품이라고 말씀드리고 있어요. 특별한 비법은 없지만 정직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중앙지업사에만 있는 특별한 상품이 있을까요?

△박 바가지요. 옛날 미신 중에 예단 들어올 때 모든 잡귀가 따라오지 말라고 박 바가지를 ‘팍’ 깨는 풍습이 있거든요. 사람들이 이 박 바가지를 어디서 파는지 모르거든요. 몰라서 많이 헤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대바구니는 산청에 계신 분께서 1년에 몇 개씩만 만드는 바구니에요. 만드시는 대로 저희가 받겠다고 했는데 이제는 안 만든다고 해요. 대나무를 길게 쪼개서 엮고 오죽(烏竹)으로 테두리를 만들고, 소나무 뿌리로 엮는데 이 뿌리 구하는 게 힘들어요. 전통방식 그대로 만들려고 하다 보니 쉽지 않죠. 큰 마트 같은 데서 파는 제품하고 다른 전통 수공예제품이랍니다.



-손님들이 물건들을 보고 추억을 이야기하기도 하나요?

▲그렇죠. 옛날 외할머니 집에 가면 바구니에 유과나 강밥 같은 간식을 넣어서 선반에 얹어두시는데 키가 안 닿잖아요. 어떨 때는 바구니를 엎어 버리기도 하고(웃음). 옛날에 그런 추억들이 있죠. 손님들도 이런 물건들을 보면서 추억들을 되새기시는 거예요.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을까요

▲한번은 초등학생들이 중앙시장에 숙제로 조사하러 와서 설명을 이것저것 자세히 해주었더니 아주 기뻐하면서 “와 이번 숙제는 우리가 1등이다~” 하면서 가더라구요. 아이들이 우리 전통을 알아갈 수 있어서 뿌듯했고 기억에 남습니다.



-중앙시장, 그리고 중앙지업사의 자부심을 말씀해주세요.

▲중앙시장은 옛날 전통을 알릴 수 있는 제품들을 많이 팔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지업사는 전통 한지를 취급하는 곳으로 중앙시장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습니다. 방문한 손님이 옛날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곳이죠. 손님이 ‘아! 이거 옛날에 우리 부모님들이 만드시던 건데’ 하실 때, 우리 전통의 맥을 여기서 계속 이어나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이런 물건은 다른 물건처럼 많이 나가는 물건은 아니라서 고민도 되긴 되는데 만약에 이 가게가 없어지면 이런 물건을 파는 곳이 진주에서 없어지거든요.



-주변 이웃 상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우리 가게는 도로 가에 있는 게 아니고 시장 안쪽에 있어서 주변 상점에서 우리 가게로 손님을 모시고 와요. 주변에 계신 상인들에게 참 감사하죠.



-나의 전성기였던 거 같다 싶은 시절이 있을까요?

▲글쎄요. 저는 제가 장사를 할 거라고 생각을 안 했었거든요. 우리 애가 7살이었던 때부터 봉사만 다녔었어요. 동에 가서 부녀회라던가 노인복지관에서 밥해주는 봉사, 또 형편이 어려운 집이나 편부모 가정에 가서 청소해주고 반찬 해주고. 그런 것만 하고 다니다가 애들이 고등학교 가고 대학가고 하니 형편이 어렵더라구요. 그 상황에서도 봉사를 한 달에 열 군데 정도 했는데 그때가 제일 전성기였던 거 같아요. 금전적으로는 풍족하지 못했지만 건강한 내 몸으로 봉사할 수 있으니 내가 마음적으로 얻어오는 게 많더라구요.



-가족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한마디 해주세요.

▲우리 애들을 따뜻하게 못 챙겼어요. 애들이 그냥 알아서 챙겨 먹고 그런 게 미안하면서도 고맙고 그래요. 우리 애들이 “엄마 아빠가 잘 살아주셔서 우리가 어긋나지 않고 잘 자랐어요.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하더라고요. 그 말이 너무 고맙고 그래서 ‘더 베풀면서 봉사하고 살아야겠다’라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나에게 중앙시장이란?

▲‘멋진 곳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곳’이요. 누구든 오면 찾고 싶은 그런 곳으로 만들고 싶답니다.



-‘진주 중앙지업사’는 진주를 방문한 손님이나 진주에 살게 된 외국인들 모두 꼭 와보라고 진심으로 추천해 주고 싶은 가게 같아요. 계속 운영해 나갈 계획이신가요?

▲예, 물론이지요. 제가 할 수 있고, 건강이 유지될 때까지는 계속 운영할 예정입니다.(웃음)



글·사진=황지예 중앙유등시장 청년기록단원·정리=백지영기자



 
조현숙 아지매가 ‘중앙지업사만의 특별한 상품’으로 요즘은 파는 곳을 찾기 힘든 박 바가지를 소개해 보이고 있다.

 

 

 

 

황지예 진주중앙유등시장 청년기록단원

 

생생한 보물들이 한가득
황지예(중앙시장 청년기록단원)


 

‘시장’의 시(市)는 ‘저자 시’로 사람이 많이 모인다는 뜻이 있다.

‘진주중앙시장’은 진주의 살아 숨 쉬는 가치 있는 역사이며, 삶의 터전이다. 한 땀 한 땀 솜씨가 깃든 고운 수 놓인 한복, 골목골목 지글지글 구워지는 수수부꾸미, 펄떡펄떡 뛰는 싱싱한 어물이 가득한 거리…생생한 보물들이 가득하다. 이 보물 같은 ‘맛’과 ‘멋’을 많은 사람이 즐겨, 중앙시장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를 않기를 바란다.

시장 골목골목을 다니다 보면 먹을거리 살 거리가 그득해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다가오는 명절에는 중앙지업사의 대바구니에 중앙시장의 인심이 담긴 떡과 과일을 담아 가족들에게 전해야겠다.

이번 중앙시장 청년기록단을 하면서 진주에 이렇게 열정적이고 재기발랄한 젊은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0대 초·중반 나이로 청년기록단에 속하게 돼 내심 ‘나 혼자 30대인 건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지만 설렘도 컸다.

덕분에 중앙시장을 더 자세히 알게 되었고 중앙시장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이번을 계기로 가족과 친구를 비롯해 앞으로 진주를 찾는 누구든 꼭 중앙시장으로 초대해 골목골목의 ‘맛’과 ‘멋’을 알리는 ‘중앙시장 전도사’가 되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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