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안 최전선 24시] 비봉지구대
[치안 최전선 24시] 비봉지구대
  • 백지영
  • 승인 2019.06.18 1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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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저녁 30여건 신고접수
독거노인 방문·취약지 점검 등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까워
"보람과 사명감으로 버텨"

“기다려도 오늘은 안 오는 것 같아서 들어갈까 하던 참이었어. 고단할텐데 왜 이까지 찾아오고 그래”

17일 오후 8시 45분, 진주시 옥봉동 한 슈퍼 앞 평상에 앉아 있던 박금자(가명·83·여)씨가 순찰 중인 경찰을 반갑게 맞이했다.

진주 비봉지구대 소속 경찰들이 순찰 시간 대에 박 씨를 방문한 것은 반년쯤 됐다. 관내 독거노인 사건이 빈발해 이를 염두에 두고 순찰을 하는데 매일 슈퍼 앞에 앉아 있는 박 씨가 눈에 띄었다. 왜 나와 있는지 묻자 “혼자 살아서 정 붙일 데도 없다보니 맨날 이리 나온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럼 우리가 자주 찾겠다”고 약속한 경찰은 그때부터 순찰을 돌 때면 박 씨를 찾아 힘든 점은 없나 살핀다. 다시 순찰에 나서는 경찰에게 박 씨는 “나 같은 사람을 이렇게 찾아줘서 참 고맙다”라고 말했다.

진주시 중앙동, 성북동, 상봉동을 관할하는 비봉지구대는 진주에서 가장 바쁜 지구대다. 이날 야간 근무를 맡은 순찰 3팀장 황활선 경위는 “오늘은 월요일이라서 조용한 편”이라면서 “금·토가 가장 시끄럽다”고 설명했다.

황 경위가 팀원인 김성규 경장, 정지환 경사와 함께 제일 먼저 찾은 곳은 관내 독거노인 정우철(가명·75)씨 집이다. 간헐적 치매 증상을 보여 진주시 곳곳에서 길을 잃고 발견된 정 씨가 걱정돼 1년 전부터 정기적으로 그의 집을 방문하고 있다. “어르신, 계십니까” 몇 번을 문을 두드리며 물어도 대답이 없다. 정 씨의 귀가 안 좋은 걸 감안해 더 크게 외쳐보니 그제야 대답을 한다. 시커먼 어둠 속 미닫이 문을 열어 홀로 빛을 발하는 정 씨의 공간을 들여다 본다.

18일 오후 8시 20분 비봉지구대 경찰관들이 관내 독거노인의 집을 방문해 건강을 살피고 있다.

다리 한 쪽이 의족인 그는 검정 고무신 두 짝을 벗지 않고 그대로 방 안에 앉아 늦은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순찰에 나선 경찰들이 “아버님, 식사하고 계셨어요? 반찬 없이 맨밥만 먹고 있네. 술은 드시지 마세요”라고 인사말을 건넸다. 잘 안 들리는지 정 씨가 자꾸만 “어?”라고 되물어오자 말을 거는 경찰의 목소리도 점점 커진다. 그가 잘 지내는지 확인하고 경찰차로 돌아가는 길, 황 경위는 “이럴 때 경찰이 된 보람을 느낀다. 밤의 도시를 살피고 도울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오후 8시 30분께, 경찰차는 관내 한 초등학교로 향했다. 청소년 탈선 우려가 있는 장소다. 김 경장은 “인근에 사는 중·고등학생이 밤이면 운동장 한 켠 잘 보이지 않는 벤치를 찾아 술과 담배를 한다는 주민 신고가 많다”며 “일탈 행위와 학교 폭력 문제 등을 예방하기 위해 자주 순찰에 나선다”고 설명했다. 학교 건물 근처는 가로등이 설치돼 있지만, 높은 단을 두고 그 아래에 위치한 운동장 부근에는 불빛이 전혀 없다. 손전등으로 바닥과 정면에 불빛을 비춰보지만 멀리 있는 벤치를 밝게 보이게 하는데는 무리다. 불빛을 여기저기 쏘아가며 운동장을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그때 운동 나온 시민인지 일탈 청소년인지 모를 무리가 어둠 속에서 나와 교문을 빠져나갔다.

오후 9시께, 이번 순찰 장소는 최근 셉티드(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 기법을 활용한 ‘행복하길’ 조성 현장이다. 범죄 취약지였던 상봉동 가마못 공원 근처 한 골목길은 지난 5월 환경 개선 작업을 통해 귀여운 동물 캐릭터가 그려진 벽화 골목으로 탈바꿈했다. 폐가 출입문이나 막다른 음지를 봉쇄하고 항상 깜깜했던 골목에 조명으로 밝게 만들었다. 경찰차를 보고 한 걸음에 달려 나온 한 주민은 “비행청소년이 뚝 끊겨서 정말 좋다”라며 그간의 변화를 전했다.


“예전에는 청소년들이 골목 안 쪽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담배를 피며 길 따라있는 가정집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등 주민 스트레스가 극심했어요. 옆집 아저씨가 애들을 나무랐더니 대들었대요. 저도 잔소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혹시 해코지할까봐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그냥 참고 있었는데 이제는 안심이 됩니다”

골목길을 돌아 나와 가마못 공원도 한번 살펴본 다음 지구대로 돌아간다. 숨 돌리기도 잠시, 출동 신고가 연이어 들이닥친다. 9시 30분께 소방서로부터 변사자가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각종 질병을 앓고 있던 80대 노인이 사망한 현장으로 출동해 구급대원에게 사건을 인계받았다. 노인의 가족에게 상황 설명을 듣고 진주경찰서 당직 형사와 과학수사대가 찾아오자 사건을 인계하고 현장을 나섰다.

기다렸다는 듯 무전으로 가정 폭력 신고가 들어와 현장으로 향한다. 지구대 내에는 친구의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를 낸 중학생이 조사를 받기 위해 방문했다. ‘제일 한가한 요일’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사건·사고가 잇따른다.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계속 현장을 돌아야 하는 날도 적지 않다.

바쁜 날은 하루 저녁에만 30건 이상의 신고가 들어오는 비봉지구대. 황 경위에게 “진주에서 제일 바쁜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소감이 어떻냐”고 묻자 “현장에서 이렇게 많은 사건을 마주하고 시민의 안전에 일조한다는 데서 오는 보람이 있다. 앞으로도 묵묵히 관내를 살피고 시민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18일 오후 9시 비봉지구대 황활선 순찰3팀장이 셉티드 기법으로 범죄 취약지에서 특색있는 벽화 골목으로 탈바꿈한 진주시 상봉동 한 골목길을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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