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 김수악, 춤에 바친 육체와 영혼
[아침논단] 김수악, 춤에 바친 육체와 영혼
  • 경남일보
  • 승인 2019.06.23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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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임식(LH 지역상생협력단장)
최임식 LH지역발전협력단장
최임식 LH지역발전협력단장

진령분혼(盡靈焚魂)! ‘영혼을 다 바쳐 불 태운다’는 뜻이다. 자신의 예술에 모든 인생을 걸었던 춘당(春堂) 김수악(金壽岳,1925~2009)의 예술혼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지난 3월 1일 서울 국립국악원에서 열린 김수악 선생 10주기 추모 공연 제목이 바로 ‘진령분혼 가무악’이었다. 후학들은 3월 공연에 이어 지난 5월 10일에는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강산 제일의 구음(口音)! 김수악 춤을 그리다’ 행사를 열었다. 우리 전통 가무악(歌舞樂)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며 특히 후학들을 알차게 길러낸 춘당은 자신의 예술에 자신의 육신과 영혼을 모두 바치고 떠나갔다. 그는 “예술인이 되려면 마음, 정신, 공력, 멋, 혼이 혼연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통 춤, 승무, 소고무(小鼓舞), 검무, 굿거리춤, 입춤 등 몸을 움직여서 표현하는 전통예술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김수악은 1925년 함양군 안의에서 태어나 9세에 진주권번(晉州券番)에 들어가서 예술을 익히기 시작했다. 아버지 김종옥은 국악을 지극히 사랑한 한량이었다. 작은 아버지 김종기는 진주권번의 가야금 선생이었다. 외삼촌 유성준은 하동 쌍계사 앞에서 임방울 등 많은 제자를 기른 음악인이었다. 예술인의 유전자를 완벽하게 받고 태어난 김수악은 권번에서 김옥민에게 춤을, 최완자에게 입춤, 굿거리춤, 검무를 배웠다. 정정렬, 유성준, 이선유에게 판소리 다섯마당을 배우고 김해의 김녹주에게 소고(小鼓)춤을 배웠다. 전라도의 전두영에게 구음을, 이순근, 김종기 등에게 가야금과 아쟁을 각각 배웠다. 한마디로 스승들의 고갱이를 다양하게 전수받아 종합예술인으로 성장한 것이다.

임방울(林芳蔚, 1904~1961)은 광주 송정리에서 태어난 서편제 명창이다. 그는 춘향가에서 탁월한 기량을 보였고 특히 ‘쑥대머리’는 청중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광주광역시는 임방울대로라는 이름의 도로를 헌정하고 1997년부터 임방울국악제를 개최하고 있다.

권번은 일제강점기 기생들의 조합이었다. 기생들을 교육하고 요정에 파견하여 임금을 받아주기도 했다. 조선말까지 운영되던 교방과 관기제도가 1908년 폐지되자 스스로 주식회사 형태의 조합을 만든 것이다. 1908년 서울 광교조합(廣橋組合, 1914년 한성권번으로 변경)이 최초로 등장했다. 최완자(崔完子, 1884~1969)는 조선말 진주교방 출신으로서 고종 앞에서 춤을 춘 기녀였다. 그가 진주로 귀향하여 성계옥 등 후학들에게 전수한 것이 오늘날 논개제에서 공연되는 진주검무 등 의암별제 무용이다. 구음은 악기를 가르칠 때 악보를 대신하여 입으로 선율을 내는 것이다. 춤판에서 구음에 맞춰 춤을 춘다. 판소리에서 국창(國唱)이라 불리던 김소희도 ‘구음만큼은 김수악이 강산의 제일이다’라고 인정했다. 평론가들은 ‘김수악이 구음을 하면 헛간의 도리깨도 춤을 춘다’라고 했다.

김수악은 1946년 논개비 건립 모금을 위한 창극 ‘대춘향전’과 1949년 1회 영남예술제(현 개천예술제)에 출연하였다. 1955년 30세의 나이에 진주에서 민족예술학원을 개설하고 1967년 1월에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12호 진주검무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았다. 1997년 1월 경남 무형문화재 21호 진주 교방굿거리춤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았다. 1983년부터 2005년 22년간 한국국악협회 진주지부장으로 재직하며 개천예술제 국악부분을 책임지기도 했다. 그는 교방굿거리춤을 독특하게 발전시켰다. 진주 교방굿거리춤은 우리 춤의 기본 성격이 잘 나타나 있어 교육과정에서 모든 춤의 기본이 되는데 그는 춤의 마지막에 소고춤을 추어 흥의 절정을 이끌었다. 이것은 진주 교방춤만의 특징이 되었다. 그래서 ‘김수악류 진주교방굿거리춤’이라고 한다.

진주의 전통무용은 크게 진주검무, 진주한량무, 진주포구락무, 진주교방굿거리춤 그리고 진주오광대춤 등 5개로 분류할 수 있다. 관중의 시선은 주로 진주검무에 머문다. 진주검무는 여성들이 추는, 아주 부드러운 군무이지만 원형은 왕의 면전에서 칼을 들고 집단으로 추는 것이다. 검무는 진주, 통영, 광주, 해주, 평양 등에서 전승되어 왔는데, 진주에서는 임진왜란 때 순국한 의기 논개와 의병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제향행사에 공연되었다. 진주검무는 1967년 국가 무형문화재 춤 7종목 중 가장 먼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의암별제에서 공연되는 진주검무 등은 조선말 기녀 최완자의 기억과 이를 그대로 전승한 김수악의 노력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김수악의 본명은 순녀(金順女), 오래 살라고 어른들이 개명해 준 수악! 그의 이름대로 그의 예술도 오랫동안 면면히 이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시민들이 알고 즐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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