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5·18 앞에서 느끼는 부끄러움
[경일포럼] 5·18 앞에서 느끼는 부끄러움
  • 경남일보
  • 승인 2019.06.23 16: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광주 금남로에 있는 5·18기록관 7층에서는 5월 25일, 한국작가회의와 광주전남작가회의가 진행하는 5·18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심포지엄과 문학상 시상식이 끝나고 주행사인 오월문학축전이 시작되었다. 참가자들은 다함께 먼저 가신 민주열사들에게 묵념을 하였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에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이 단상에 올랐다. 축사를 하는 순서였다. 으레히 5·18을 찬양하고, 그동안 행사를 준비한 사람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말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송구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대뜸 “제가 이 자리에 설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는 말로 입을 떼었다. 참석자들은 모두 의아해하면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사장은 39년 전의 자기 자신을 드러내었다. 숨쉬기도 어려운 공포가 그를 지배하였고, 한 번도 데모대의 선봉에도 서지 못했고, 잡혀가지도 않았고, 광주에 있지도 않은 자기 스스로가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죄책감과 함께 “나는 전라도 사람이 아닌 것과 전라도에 연고(緣故)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 깊이 안도했다. 이 상반된 감정의 파고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피난처를 원하는 수배범들을 친구들에게 떠넘기고 그것이 들통날까봐 밤마다 잡혀갈 때를 대비해서 한 겨울 차림을 하고, 불면의 시간을 보낸 나의 비겁한 모습을 고백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화가 홍성담이 1980년에 그린 ‘목비틀기’는 어두컴컴한 곳에서 두 명이 닭을 잡고 목을 비틀고 있다. 우리들 대부분이 그때는 겁먹고 있었다. 물론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으로서는 자랑스런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고백이다. 그동안 자괴감을 갖고 살아오긴 했지만 이날, 광주에 모인 모든 사람들 앞에서 비겁했던 자기 모습을 이렇게 솔직히 드러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말을 하면 회원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지가 걱정스러울 수도 있다. 그때는 누구나 그러했다는 자기변명을 하면서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때 일이 결코 잘한 일은 아니지만 그 일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우리가 배울 점이다.

광주 5·18이 있은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시인 김준태는 ‘아아, 光州여, 우리나라의 十字架여’라는 시에서 ‘…… 아아,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구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넋을 잃고, 밥그릇조차 대하기/ 어렵구나 무섭구나/ 무서워 어쩌지도 못하는구나/ ……’라고 하였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도 가해자들은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거짓말과 막말을 한다. 사람을 죽이고, 광주를 짓밟아 놓고도 전혀 부끄러워 하지 않는 자들이다. 부끄러움을 전혀 모르는 뻔뻔한 자들이다.

광주의 비극을 강 건너 불구경처럼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침묵하고 비겁했던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 모두를 짓누르는 거대한 세력에 사로 잡혀있었다. 벌써 39년의 세월이 흘렀다. 끊임없이 5·18은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고백하지 않았다. 부끄러움의 시인 윤동주는 우물에 비춰진 자기 얼굴을 보면서 못난 자신을 성찰하였고, 어쩔 수 없이 하는 창씨개명이 부끄러워 ‘참회록’ 이라는 시를 썼다.

이날은 솔직함이 용기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는 귀한 자리였다. 이사장의 고백을 들으면서 나는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