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 대한민국 기업들이여! 만수무강하시라
[경일시론] 대한민국 기업들이여! 만수무강하시라
  • 경남일보
  • 승인 2019.06.2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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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객원논설위원·경상대학교 교수)
김진석교수
김진석교수

기업의 경쟁력이 국부를 좌우하는 시대다. 기업이 버는 돈은 직원들의 월급이 되고, 그게 시장에 풀려 경제(소비지출)와 국가(조세)가 움직인다. 미우나 고우나 우리 기업들이 100년, 200년 잘 버텨줘야 하는 이유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보통 사업을 한다고 하면 일종의 기계적인 사고방식을 떠올리게 된다. 목표를 정하고 문제를 분석한 다음 계획을 수립하고 효율적으로 추진해서 최고의 성과를 내자는 식이다. 비교적 안정된 환경에서 단순한 문제를 다룰 때는 이런 사고방식이 유용하고 효과적이다. 지금은 글로벌화와 정보기술(IT)의 발달로 비즈니스 환경이 매우 유동적이고 예측할 수 없게 바뀌었다. 미국 상장기업들의 기대수명은 30년에 못 미치고, 멀쩡했던 회사가 5년 후에 사라질 확률도 32%나 된다고 한다. 현재와 같은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단기적인 효율성과 함께 장기적인 안정성에 꼭 필요한 요건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예기치 못한 사태에 대비한 면역세포의 생성, 다양한 세포들을 구비해 놓고 상황에 맞게 조합해서 대처하는 본능, 낯선 위협에 대한 적절한 맞춤 항체의 생성, 생체의 다른 부분들과 조화를 이루는 기능 등을 갖춘다는 ‘생물의 면역시스템’에서 영감을 얻는 것이다.

생물의 면역시스템은 복잡하고 낭비적이며 과잉 반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측과 관리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이런 방식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목표를 향해 공을 던지는 것보다 길들인 새를 풀어 날리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공은 목표를 향해 최단거리로 날아가지만 갑자기 바람이 불거나 장애물이 나타나면 속수무책이다. 이럴 때는 비록 시간이 더디더라도 주변 상황에 맞춰 적응하며 날아가는 새가 더 효과적이다.

1849년에 설립된 프랑스의 ‘에실로’는 안경렌즈 업계의 선두주자이다. 오랜 세월 여러 파괴적 신기술의 도래에도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흑자를 내며 성장하는 점이 놀랍다. ‘에실로’는 경제환경을 면밀히 조사해 혁신적인 신기술 후보를 추려낸다. 그리고 경쟁사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자체 개발을 감행한다. 개발이 실패하거나 신기술이 제 살을 깎아먹을 위험을 감수한다. 신중함과 적응성의 생물 면역시스템 원리가 ‘에실로’의 160여년 역사를 설명해 준다.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은 자연스럽게 생물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환경을 자기 마음대로 바꿀 만한 자원과 힘이 없고, 변화 충격을 완화해 줄 만큼 규모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도 처음에는 이렇게 시작하지만, 중간 성장과정 어딘가에 생물학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능력을 잃어버린다. 단기성과에 매몰되기 때문이다. 장사 하루 이틀 하고 말 것이 아니라면 장기적 안정성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맞는 지배구조, 리더십, 시스템 등을 갖춰야 한다.

언젠가 국회 청문회장에 우리나라 대표 기업들의 총수들이 한꺼번에 증인으로 호출된 적이 있다. TV 생중계로 그룹 총수들이 일렬로 앉아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정경유착의 불법성을 떠나 또 다른 궁금증이 든다. 과연 TV에 비취진 9개 대기업 중 100년을 채울 기업이 몇 개나 될까. 미래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미국 통계를 참고해 보면 반타작도 어려울 수 있다. 해당 기업과 협력업체의 임직원들과 그 가족들, 인근 지역상인들의 운명을 떠올리면 머리가 아득해진다. 어려운 국내외 환경속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만수무강을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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