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기업가정신 뿌리 ‘진주상무사’
진주 기업가정신 뿌리 ‘진주상무사’
  • 김영훈
  • 승인 2019.06.2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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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일보·진주상의 공동기획
(2)소외된 역사·문화 가치

19세기 진주 사회 변화상 입체적 조명 가능
상무사는 1899년 결성된 보부상 단체로 국가의 지원 아래 전국적으로 조직됐다.

현재 관련 자료가 남아있는 곳은 진주를 비롯해 고령, 창녕, 삼가, 울산, 충청도 예산과 덕산, 부여, 홍성 등이다.

특히 진주는 상무사 사옥이 진주시 옥봉동에 보존돼 있어 역사적·문화적 가치와 의미가 크다.

하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면서 그 가치에 대한 평가가 절하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당시 사용했던 유물 등 자료들도 남아있어 19세기부터 오늘날까지의 경제 등 사회 변화상을 보다 입체적으로 규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또 진주지역 보부상단 역사 복원과 중앙 보부상단의 역사 규명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국내 유일 상무사 사옥 현존=개항과 더불어 지방은 인천, 부산, 목포, 군산 등 항구를 중심으로 상무사 조직이 구성돼 많은 변화와 발전을 해왔다.

하지만 보부상의 조직이나 관련 사료 등 근·현대 상공업부문의 자료들이 남아있는 곳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진주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상무사 사옥이 현존하고 있고 근·현대 보부상과 상공업 분야 자료들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 역사성과 의의를 인정받아 진주상무사 사옥은 2011년에 경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을 받았다.

1938년께 진주시 옥봉동에 세워진 진주상무사 사옥은 경남도 문화재자료(도문화재 자료 제533호)이다.

진주 상무사건물은 전통목조 기와집으로 당시 건축양식이 잘 보존돼 있어 현존하는 국내 유일의 상무사 건물로 상징적 가치가 높다.

1936년 8월 진주를 휩쓴 유례없는 홍수로 사옥이 물에 잠겨 훼손됐는데 이후 상인들이 돈을 모아 다시 세웠다.

특히 일제 강점기 진주의 대자본가 정상진(1878~1950)과 광복 이후 진주의 상점에서 출발해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으로 발전시킨 구인회(1907~1969)도 사옥 재건에 참여했다.

이 기록은 ‘희사방명(1938)’의 기부 명단을 통해 확인 할수 있다.

또 사옥 재건을 하면서 작성한 ‘본사 건축일기(1937)’에서는 인건비, 자재비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어 당시의 물가 등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진주상무사의 다양한 자료에는 진주와 인근지역 상인 조직과 상업의 변천과정이 상세하게 담겨 있다.



◇다양한 자료, 역사·문화적 가치 높아=각종 문서와 인장, 현판, 영수증 등 100여 점의 유물은 지난 2014년과 2016년 두차례에 걸쳐 국립진주박물관에 기증됐다.

이들 자료를 통해 당시 진주상인들의 조직문화 등에 대해 알 수 있다.

당시의 진주상무사 규칙 등 상인조직의 회칙, 1834년부터 작성되기 시작한 ‘어과전 천금록’이나 ‘사전 청금록’과 같은 임원 명단 기록 자료, 인장과 신분증 등은 그대로 남아있다.

이러한 자료는 상인조직의 임원 구성, 운영 방식과 변화, 경제 활동 범위를 시기별로 살피고 진주지역의 주요 상인들을 추적하는데 기초가 되는 것들이다.

진주상인들의 활동 구심점으로 기능했던 상인회관 건물을 세우거나 보수하면서 모은 기부금 기록인 사전 ‘권조문(1885)’, ‘모연문(1902’), ‘우상무사 의연록(1936)’ 등도 중요한 자료로 활용가치가 높다.

또 우도소 창설초기 서문, 희사방명 등 준공된 건물에 걸어두었던 현판도 있다.

이와 함께 당시 사인들이 자신들의 이익 보호를 위한 노력을 알수 있는 자료들도 있다.

이는 중앙정부에서 발급한 문서와 경남·진주지역에서 만들어진 문서로 나눠지는데 ‘한성부 완문(한성부 완문 사본)’, ‘판하 상리소 완문 절목’ 등 중앙정부에서 발급한 문서에서는 보부상조직의 성격 변화를 알 수 있을뿐 아니라 중앙정부가 지방 보부상조직의 운영 체계를 엿볼 수 있다.

‘건어전 완문(1856)’, ‘어각전 완문(1882)’ 등은 경남과 진주지역에서 작성된 문서는 보부상조직이 지역의 상업활동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진주국립박물관 관계자는 “진주상무사 자료는 근대 진주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1차 사료로 가치가 높다”며 “기존 지역사 자료들은 주로 양반가와 그 후손들의 것이 대부분이지만 진주상무사 자료는 양반 외에 상민층과 관련된 기록이 다수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자료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가 이뤄지면 19세기부터 오늘날까지의 진주 사회의 변화상을 보다 입체적으로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기증유물은 진주상무사에서 2003년 7월에 진주상공회의소로 이관돼 보관되던 유물로 진주상무사, 진주상공회의소, 국립진주박물관이 오랜 시간 동안 꾸준하게 유물의 보존과 활용방안을 협의한 후 결정했다.

김영훈기자 hoon@gnnews.co.kr

참고문헌=진주상무사(2017, 국립진주박물관), 진주상의 백이십년사(2006, 진주상공회의소)



 
경상 김천 신표(1880년 이전).
보부상 조직의 역대 임원 명단이 기록된 ‘사전 청금록(1884~1938)’.
상무회 경남도지부(1920년대).
상무회 경상남도지부인(1920년대).
진주상무사 현판.
진주상무사에서 열린 회의 기념 사진(촬영 연도 불상).
진주상무사 재건축 당시 기부자 명단이 새겨진 ‘희사방명(1938)’.
진주상무사 사옥 재건 당시 일지를 기록한 ‘본사 건축일기(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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