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추억을 쌓다[3]한복이 좋아서
시장, 추억을 쌓다[3]한복이 좋아서
  • 백지영
  • 승인 2019.06.25 1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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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한복 박정순 아지매
첫 눈에 반한 한복·40년째 외길
재봉틀 앞에 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박정순 아지매.

 

진주 중앙시장 2층, 최근 이목을 끌고 있는 청년몰 옆에는 수십년 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복점들이 줄지어 늘어서있다. 이 거리에서 ‘함양한복’을 운영 중인 박정순 아지매는 가게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함양에서 태어난 함양사람이다.

가지런히 놓인 신발을 넘어 아지매의 가게 문을 열어보면 조그마한 공간 속 양쪽 선반에는 원단이 가득 놓여져 있고, 한켠엔 열심히 만들었을 한복들이 걸려있다. 편안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움푹 파인 재봉틀 밑 바닥도 인상적이다.

한복이 좋아서 40년째 한복을 만들고 있는 정순 아지매는 진주에서 간호사를 하던 언니가 떼어온 옷감으로 어머니가 장에서 지어온 한복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한복에 관심이 생겨 ‘이걸 꼭 배워야겠다’며 나름대로 돈을 모았지만 부모님께서는 농사일에 힘을 보태라며 반대하셨다.

“23살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 해 가을 고향을 떠나 진주에 있는 오빠네로 왔어요. 진주에서 언니 산후조리를 돕다가 77년도 즈음 한달 동안 한복을 배웠죠”

그 후 소개받은 한복집에서 1년 동안 먹고 자면서 한복 만드는 법을 배웠다. 가장 어려운 저고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법을 익힐 수 있었다.

“언젠가 독립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밤낮 없이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1년을 배우고 나니 건강이 굉장히 나빠져 버렸어요.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다시 올라 갔어요”

한두해가 지나 다시 진주로 돌아온 아지매는 이후 1년을 더 한복에 대해 배운 후 1980년 1월, 드디어 진주중앙시장 2층 함양한복 주인장이 되었다.

정순 아지매의 스승은 모든 한복 종류에 능통했다. 아지매는 “스승님 밑에서 야무지게 배웠다”며 스승과 자신의 한복 실력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지금 만들고 있는 한복은 예복보다는 주로 무용복인데 이건 진주검무 보유자인 국립민속예술보존회 고 성계옥 회장님을 통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진주검무가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았던 당시에는 손에 껴야하는 한삼 샘플도 품질이 좋지 않았다. 제작을 아지매에게 한번 의뢰해본 성 회장은 결과물이 마음에 들자 이후 제작을 아지매에게 일임했다.

 

아지매가 만든 진주검무 한삼.


정순 아지매의 주 고객층은 전통 한복을 입고 공연을 하는 예술가들이다. 과거에는 예복도 잘 나갔지만, 최근 저렴한 가격에 대여해주는 가게가 많다보니 점점 맞춤 수요가 줄어 들고 있다. 정순 아지매는 문화공연단의 단체 옷을 해주면서 자긍심과 뿌듯함을 느낀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고객한테 입기 편하게 할 수 있을까.’ 아지매가 늘 고민하는 부분이다.

그 고민 끝에 생각해 낸 방법이 바로 치마에 끈 대신 ‘지퍼’를 다는 것이다. 전통방식으로 끈을 묶으면 답답하고 불편하다는 고객의 의견을 반영해 전통을 최대한 지키면서 입기 편하게 치마에 지퍼와 단추를 달았다. 이 편안함에 한번 아지매에게 옷을 맞춘 고객은 다시 찾아온다고 한다.

아지매가 신경 쓰는 또 다른 부분은 저고리의 깃모양과 동정이다. 보통은 화학섬유나 나이론으로 된 동정을 사용하지만 아지매는 서울에서 실크 동정을 직접 주문해서 쓴다. 깃이나 동정의 모양, 넓이 역시 유행을 반영해 제작하기 때문에 ‘촌스럽지 않은 한복’이라는 평을 받는다.

“옷을 완성한 후에는 고객이 마음에 들지 않아하는 부분이 없나 살펴요. 만족스러워할 때까지 얼마든지 수정해주죠”

아지매의 사후 서비스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복 착용법, 관리법 등 한복에 관한 기본 지식도 알려준다. 시간 약속도 중요하기에 늦었을 땐 직접 배달까지 나서며 고객 관리를 철저하게 해왔다. 그러니 어느 고객도 만족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전통한복에는 기본 틀이 있다보니 변화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지만 의외로 디자인 변화가 굉장히 빠릅니다. 4~5년 차이로 디자인이 변하는데 요즘엔 배래와 옷고름이 넓은 것이 유행이지요”

정순 아지매는 변화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따라가니 고객이 끊이질 않는다.

취미가 다도인 정순 아지매는 진주 지역 다도인들이 모여 한복을 입고 차를 나눠 마시는 차의 날(5월 21일)에 더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한복을 입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지금은 진주성이라고 부르는 촉석공원에 한복입고 입장해서 축제를 즐기는 그런 날이 있으면 좋겠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했죠”

최근 타지역에서 불고 있는 관광객들의 ‘한복 입기 체험’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했다.


“광화문이나 전주한옥마을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국적을 알아보기 힘든 퓨전 한복을 많이 입잖아요. 화려하고 입기 편할는지는 모르겠지만 전통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지요. 우아하고 고운 전통한복을 더 많이 입어야 할텐데요”

정순 아지매가 40년간 마음껏 한복 제작에 전념할 수 있었던 데에는 든든한 남편의 뒷받침이 있었다. 공직 생활을 했던 남편은 아지매가 한복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준 큰 버팀목이었다.

아지매는 올케 그리고 조카딸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시골에서 진주로 온 올케가 아지매에게 한복을 배웠고, 2년 전부터는 조카딸도 동참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자기 어머니가 아버지 옷을 지어주는 걸 보면서 자라온 조카 딸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이 일을 하고 싶어 했어요. 대구에서 공부하고 와 본격적으로 일을 배우고 있는데 얼마나 예쁘고 잘 하는지 몰라요”

한복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이 꼭 자신의 어릴 적 같아서 더 눈길이 간다. 대를 잇는 조카딸에 대한 애정이 샘솟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지매에게 최근 일어나고 있는 중앙시장의 시설 변화에 만족스러워 했다. 옛날보다 시장이 훨씬 깨끗해졌다고 한다.

“2000년쯤 아케이드 공사를 하고 시장 전체가 깨끗해졌어요. 제일 고마운 점은 여기 2층 복도에 타일을 깔아준 거에요. 그 전에는 시멘트바닥이어서 아무리 쓸고 닦아도 티가 안 났어요”

열악했던 과거와 지금은 천지 차이다. 아쉬운 점은 대를 이을 사람이 없는 한복집이 많다는 현실이다. 과거에는 중앙시장 2층에 한복점만 100여개에 달했지만, 지금은 중앙시장 한복점 친목단체에 30여 명의 회원만 있을 뿐이다.

 

아지매가 사용하는 가위.


현재 중앙시장 안에서 60대 중반인 아지매 연배가 주체가 되어서 한복일을 한다. 그 윗 세대 분들이 운영하는 가게는 간판은 달려있지만 윤달이 되면 수의 정도만 짓는 정도다.

50대가 운영하는 한복점까지는 꽤 되지만 40대 아래가 운영하는 가게는 거의 없다. 대를 이을 사람이 찾기도 쉽지 않다. 가장 어린 ‘계승자’인 정순 아지매 조카딸도 본인이 가게를 운영할 미래를 진지하게 걱정하곤 한다.

중앙시장 2층에는 최근 청년몰이 들어서며 새로운 변화가 있었다. 아지매는 이들의 입점에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시장이 더 깨끗해졌고 젊은이들이 찾아오게 되어 좋아요. 기존에 있던 상인들이 청년상인들에게 협조를 하고 잘 되도록 응원을 해주면 청년들도 더 힘을 내서 근무하고 그게 시장 전체 발전에도 도움이 될 거에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는 아지매 같은 분들이 많아 질수록 전통시장이 더 살아나고 활력을 되찾을 것이다.

글·사진=김도연 진주중앙시장 청년기록단원·정리=백지영기자



언제나 옆에 있던 중앙시장 들여다 보기

김도연(중앙시장 청년기록단원)
 

김도연 진주중앙시장 청년기록단원



처음 ‘중앙시장 청년기록단’ 활동을 시작한 이유는 막연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어쩌면 ‘책을 쓴다’는 것이 기대가 되었던 것 같다.

매주 모임을 진행하고 직접 시장을 돌아다녀보고, 시장의 역사와 전통을 찾고 나누면서 진주중앙시장에 대한 자부심이 커졌다. 구석구석 시장의 매력들도 다시 보게 되었다. 나에게 시장은 그저 하나의 길이자 통로에 불과했는데, 이제 시장은 대형마트보다 더 자주 가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굳이 살 물건이 없더라도 이따금씩 돌아보게 되는 그런 곳이 되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옛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정겨운 상인들의 대화를 듣는 것도 참 재미있는 일이다.

인터뷰 대상을 구하는 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어쩌면 당연히 허락해 주실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찾아가니 여러 사정으로 거절하는 분들이 많았다. 어렵게 성사된 인터뷰를 통해 많은 것을 얻은 것 같아 뿌듯하다.

‘함양한복’ 섭외 당시 시간이 없어 직접 찾아가지 못하고 전화로 접촉을 했다. 귀찮을 법한 부탁에도 전혀 싫은 내색 없이 잘 응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이것저것 정말 많은 질문들을 쏟아냈다. 다시 생각해보니 나 같으면 숨이 막힐 것 같다. 그런 질문들에도 성실하게 잘 답해주시고 직접 이것저것 만든 것들도 보여주시며 많은 도움을 주셨다.

이번 활동을 통해 함양한복을 비롯한 많은 중앙시장의 한복집들과 상점들이 계속해서 잘 유지되기를 바라게 됐다. 우리 청년들 역시 더 나서 시장을 살리기 위한 방법들을 생각해내고 실행해 나가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정순 아지매와 김도연 진주중앙시장 청년기록단원
 
 
박정순 아지매가 노란 저고리를 펼쳐 보이며 설명을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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