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 진주성 느티나무
[경일춘추] 진주성 느티나무
  • 경남일보
  • 승인 2019.06.26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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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작가)
달그림자 살포시 남강물에 내려앉고 월영산 내성사의 풍경도 잠이 들면 창렬사의 끓는 비분 다독다독 달래놓고 의암의 젖은 발이 시리다고 감싸주며 긴 한숨 내 쉬기를 어언 600년. 폭풍우가 뒤흔들고 눈보라가 몰아쳐도 간절한 바람은 길이길이 후손들의 번영이었다.

세월의 숱한 날을 한으로 날줄 삼고 마디마디 맺힌 원을 씨줄로 엮어내어 얼룩진 역사의 피륙을 서장대 벼랑 끝에 만장으로 걸어두고 유월의 그 짙푸름으로 앓은 속은 덮어놓고 7만여 군관민을 위령하던 손길은 어제까지도 따스하더니만 기해년 유월 열여드렛날의 정오를 지난 5분, 곤한 숨길 끝내 몰아쉬고 온후하고 드넓은 품 다 열어놓고 스스로의 육신을 고이 누이었다.

돌 틈새로 뿌리박고 창공으로 가지 뻗혀 충의 새겨 촉석루는 벼랑위에 장엄하고, 호국지심 일념으로 쌓고 쌓은 진주성. 서장대 높이 솟아 의기충천 드높은데 북장대 위용이 하늘 끝을 떠받히고, 내성사의 공양미가 의승병의 군량미로 무쇠 솥에 김 오르면, 군관민의 박 바가지에 구국염원 담아주며, 그 유월의 뜨거운 햇살을 그늘 지어주던 백년 거목은 온유한 할머니의 무릎이었다.

임진년의 깃발에 바람을 부치고 계사년의 통한에는 통곡도 함께 했다. 7년간의 서린 원한 깊은 속을 끓이며 원통하고 절통하여 피눈물을 흘렸는데, 시일야방성대곡 위암이 절규하고 매천의 절명시 고을마다 애절하여 을사 경술 원한위에 산홍이 또 목 놓아 우는 소리에 애간장을 녹였고, 생급스런 포연이 남강변에 자욱하고 촉석루 서까래가 불타며 무너지던 날, 여미었던 가슴 속을 발기발기 후벼냈다. 앓은 속 보이지 않으려고 오지랖을 여몄는데, 휑하니 비어버린 깊은 속을 보고서야 몽매한 후손들은 이제야 회한의 눈물을 방울방울 지운다.

조총소리 귀청을 찢던 날 통절하게 맺힌 한이 옹이가 된 줄은 미처 몰랐으며, 포성이 천지를 진동하던 날 의분에 애간장이 녹은 줄도 미처 몰랐으며, 강낭콩 꽃보다 더 푸른 물결이 핏빛 되어 흐르며 혈류성천에 굽이굽이 서린 한을 무심한 후손들은 기억에서 잊어 간가.

촉석루 다시 서고 창렬사에 향이 피고 내성사는 호국사 되어 범종소리 울림 되고 월영산 촉석성의 옛 성벽도 들어내며 남문의 위용까지 역력히 일러주고 외성에 서린 한을 용두머리 옛 나루에 서리서리 풀어 놓고 그 고단했던 육신을 고이 누이었다. 인고의 밤을 지새우며 살아온 세월 600년! 그 느티나무는 우리들의 영원한 할머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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