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지감
격세지감
  • 경남일보
  • 승인 2019.07.0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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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 작가
세상의 변화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어 격세지감에 어지럼증이 난다. 시가지로 들어서면 먼저 건물들의 외벽색깔이 희끄무레하게 회색이거나 거무스레하다. 가로는 가로대로 세로는 세로대로 색깔을 달리하기도 한다.

몇 해 전만 해도 주종을 이루던 흰색 아니면 진한 단색으로 대비되며 건물마다 한 가지 색이던 시절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바뀌어버렸다.

‘세련되었잖아요.’ 그런 것도 같다. ‘고상하고 지적이네요.’ 하아! 그런 것도 같다. 수긍을 하고보니까 확실하게 세련되었고 고상하고 중후한 맛이 난다. 간판도 달라졌다. 길옆의 아래층에는 전 품목의 이름을 오색찬란하게 써 붙인 유리창이 통유리로 말끔하게 바뀌었고 앙증맞게 작은 간판은 달랑 하나다. 2층부터는 건물 꼭대기까지 돌출간판이 들쭉날쭉하지 않고 수직으로 가지런하여 좋은데 내리 쓴 한글을 아무리 읽어도 뭘 하는 곳인지 알 수가 없는 간판이 많다. 영어책과도 먼 촌수는 아닌 편인데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간판을 보고 내가 왜 이러나 싶어 현기증이 난다. 순 우리말은 확실하게 아니고 영어도 분명히 아닌데 히브리어나 아랍어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일까.

어느 순간에 내가 이렇게 무식해졌나 싶어 어지럼증이 난다. 거리를 걷는 젊은이들의 외양도 변했다. 그 많던 총각들의 샛노란 노랑머리는 언제 또 없어졌는지 흔적이 없는데 청바지를 보면 너덜너덜하게 헤져서 무릎은 아예 속살이 보인다.

십여 년 전쯤인가 싶은데 밤잠이 적으신 어머니는 방학을 맞아 집에 온 손녀딸의 청바지가랑이 끝이 헤져서 실오라기가 풀려서 너풀거린다고 가위질로 가지런히 잘라서 애장품인 재봉틀을 밤중에 달달 돌려서 바짓단을 올린 것이 아침에 사단을 내고 말았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어머님이 보셨더라면 구멍구멍이 온갖 천을 덧대 기워 흥부의 바지를 만들었을 것이다.

간혹 상경하여 강남고속터미널에 내려 지하철을 타면 빨랫줄에 제비가 앉은 듯이 양편으로 나란하게 촘촘히도 앉은 사람들의 손에는 무슨 구령에 맞춰서 그대로 멈춘 듯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휴대폰을 들고 45도 각도로 일정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볼수록 별천지에 온 것 같다. 천년고찰의 명부전에 들어가면 본존불인 지장보살상을 중앙에 두고 좌우로 나란하게 앉은 십대제왕들이 홀을 들고 있는 모습과 어찌 그리 닮았는지. 아하! 그 봐, 나름대로 바르게 산다고 살았는데 세월에 지각했다고 지금 내가 염라대왕 앞에 불려 왔나 하고 현기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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