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취월장 진주경제[4] 한국 기업가정신 발원지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2)
일취월장 진주경제[4] 한국 기업가정신 발원지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2)
  • 정희성
  • 승인 2019.07.03 16:5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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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일보 진주경제발전추진위원회, 경상대 기업가추진단 공동기획
 



◇LG-GS의 정신적 뿌리 승산마을
“새로운 사업을 연구하고 개척하면서 끊임없이 기업을 창설하고 운영해 왔을 따름이다. 해방 후 거의 무(無)의 상태에서 출발한 우리나라 산업의 경우 새로 착수해야 할 사업내용이나 그 경영관리 방식에 대해 전문적인 조언을 구하고 싶어도 그것은 불가능했다. 하나하나 자문자답하면서 혼자서 해결할 수 밖에 없었다.”

이같은 기업가정신으로 해방이후 수많은 사회적 요구에 맞줘 기업가들은 새로운 사업을 일으켰다. 새로운 사업마다 도전과 의욕만으로 해결하기가 힘든 경우가 많았지만 지혜와 끈기로 돌파했다. 그 기업가정신이 오늘의 한국을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만들었다. 연구개발-개척정신-인화를 모토로 하는 LG-GS그룹의 정신적 뿌리를 찾아본다.

◇LG-GS의 뿌리 승산마을, 큰 기업가 구인회-허만정
LG그룹의 공동창업자 구인회-허만정은 승산마을의 큰 기업가들이다. 승산마을 출신의 구씨-허씨 두 문중에서 대한민국의 경제계를 이끌었고 지금도 이끌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고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허만정의 3세 허창수 GS그룹 회장이다.

 

  LG그룹은 고(故) 구인회 창업주, 구자경 명예회장, 고(故) 구본무 회장, 구광모 현 회장으로 유교 문화의 전통에 의해 장자승계 원칙을 철저히 지켜오고 있다.

 

LG그룹가계도 및 주요계열사. 자료출처=연합뉴스


유교 집안 LG는 가풍이 엄격하다. 아들만이 경영에 참여할 수 있고 장자(長子)만이 경영권을 대물림할 수 있다. 딸은 철저하게 배제한다. 며느리도 예외일 수 없다. ‘반(半)자식’이라는 사위들도 그룹 경영과는 무관하다. ‘사위가 그룹에서 맡을 일은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LG는 ‘손(孫)’이 많은 집안이다. 창업 1세대를 이은 2세대만 해도 47명에 달한다. 5대(代)까지 뻗어 내려간 범LG의 가계도를 A4용지 한 장에 그려 넣기는 어림도 없다. 형제간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을 법 하지만 적어도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은 LG에는 통하지 않는다.

LG 기업 문화의 밑바탕에 깔린 유교적 가풍과 인화(人和) 정신. 이런 힘이 뿌리 깊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구-허씨 가족경영이 활발했던 LG가 본격적으로 재산분할에 나섰던 시기는 구자경 명예회장이 그의 장자 구본무 전 회장에게 경영권을 이양한 무렵이다. 장남으로 자신의 후계구도를 확실히 못박고 재산분할의 첫걸음을 뗐던 것이다. 아들 4형제 중 둘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을 분가시킨 게 1995년이다. 막내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과 함께 였다. 현재 LG에 남아있는 3세 중 구본준 부회장이 유일한 것은 이 때문이다.

LG의 ‘3세 경영 시대’을 신호탄으로 2세대인 구 명예회장의 남동생들도 차례로 분가해 나갔다. 2000년 3월 셋째 구자두씨의 LG벤처투자(현 LB인베스트먼트)가 계열 분리됐다. 같은 해 9월에는 둘째 구자학씨가 아워홈을 가지고 형의 우산에서 벗어났다. 이어 2007년 12월에는 첫째동생 고(故) 구자승 전 반도상사(LG상사) 사장 일가 몫의 LG패션(현 LF)이 독립했다.

다만 일찌감치 LG에서 나와 직접 기업체를 차려 ‘마이웨이’를 한 형제도 있는데 넷째 구자일 일양화학 회장이다. LG그룹 부회장을 지낸 뒤 1987년 3월 설립한 곳이 화학업체 일양안티몬(현 일양화학)이다. 막내 구자극씨도 LG상사 미주법인 회장으로 활동하다가 2014년 대주주로 있던 예림인터내셔널을 통해 전자부품업체 이림테크(현 엑사이엔씨)를 인수, 독자적인 경영자의 길을 가고 있다.

창업주를 비롯한 ‘회(會)’자 항렬의 이른바 ‘인·철·정·태·평·두’ 1세대 창업 형제들도 연쇄적으로 계열분리에 들어갔다. 창업주가 LG를 일구는 과정에서 함께 헌신했던 공신들이었다.

1999년 11월 창업회장의 첫째 동생 고 구철회 LG 창업고문의 LG화재해상보험(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이 계열분리됐다. 구 고문의 장남 구자원 명예회장이 LIG그룹을 일으키는 데 모체가 됐던 계열사다. 2003년 11월에는 LG 창업 형제들 중 ‘태·평·두’ 3형제가 LG에서 전선·도시가스 분야를 가지고 분가하면서 LS그룹이 태통했다. 고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고 구평회 E1 명예회장, 고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이 창업 주역이다.

2004년 7월에는 허씨 집안과 이별의 악수도 나눴다. GS는 허창수 회장의 조부 허만정 LG 공동창업주와 구인회 LG 창업주가 동업으로 1947년 1월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를 공동창업한 데 뿌리를 두고 있다. 57년 ‘동행’을 끝내고 정유·유통·홈쇼핑·건설부문 등을 가지고 LG에서 독립했다.

GS그룹은 ‘고(故) 허만정 GS그룹 창업주→고(故) 허준구 GS건설 명예회장→허창수 GS그룹 회장(형제 및 사촌)’으로 승계과정이 이어진다. 허준구 명예회장은 허만정 창업주의 삼남이며, 허창수 회장은 허준구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허준구 명예회장은 LG그룹 구씨 일가와의 동업 시절부터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그룹의 성장을 함께 이끌었다. 그래서 허준구 명예회장은 1940년대부터 LG그룹에 근무하며 구인회 LG 회장과 아버지인 허만정 회장을 도운 창업 1세대다.

허준구 명예회장은 당시 럭키금성그룹 부회장을 지내며 LG그룹 내 허씨 일가를 대표하는 경영자로 자리매김했고, 그의 아들 5명 모두 GS 핵심 계열사의 경영권을 지배하고 있다. GS그룹의 소유구조와 경영의 중심을 이어온 ‘허준구 일가’가 사실상 그룹의 경영 실세이자 ‘성골’인 셈이다.

반면 장자 직계 자손인 ‘허정구 일가’는 GS그룹의 실질적 지배권에서는 한 발 물러나 있었다. 허정구 회장은 1950년대에 삼성물산 등 삼성그룹 계열사에서 임원으로 근무하다 1961년 독자적으로 삼양통상을 설립했고, 그의 장남인 허남각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했다.

삼남인 허광수 회장도 그 계열사인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을 맡았고, 차남인 허동수 회장이 유일하게 GS칼텍스 회장직을 역임하며 경영에 참여했다.

한 집안이 경영해도 분란이 끊이지 않는 대그룹을 ‘구(具)-허(許)씨’ 두 집안이 3대까지 공동 경영하고, LS·GS 등으로 분리하면서도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었다. 현대·롯데·두산·효성·금호 등이 보여줬던 ‘형제의 난’을 LG의 71년 사사(社史)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같은 문화는 김해 허씨 문중이 550년 가까이 승산마을에 거주했고 능성구씨는 김해 허씨 문중과 혼맥에 따라서 310년 전에 승산 마을에 이거하면서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 끈끈한 유대를 선조들부터 지켜왔기 때문에 형성됐다. 지금까지 이러한 서로간의 믿음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GS칼텍스의 진주 투자로 허만정 창업주의 한 풀어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 고향에 투자하면서 고 허만정 창업주가 고향에 투자를 하고자 했던 오랜 한을 풀었다. 허 회장은 진주출신으로 지수초등학교(30회)를 졸업했다.그래서 특히 진주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는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에서 화학공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1973년 GS칼텍스 입사했으며 GS칼텍스 사장, GS칼텍스 대표이사 회장을 지내면서 이른바 ‘Mr. 오일맨’으로 불리는 등 세계적인 석유화학 CEO가 됐다.

2010년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시절 청와대 직속의 국가경쟁력위원회 위원으로 매달 회의에 참석했다 .당시 허 회장은 회의에서 만난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으로 있던 고향 후배 정인철 현 진주경제발전추진위원장으로 부터 진주에 투자를 권유 받았다. 이에 대해 허동수 회장은 흔쾌히 투자결정을 했다. 마침내 2013년 진주 지수면에 연간 4만t 생산규모의 GS칼텍스 복합수지공장을 준공해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GS칼텍스는 진주를 복합수지 사업의 본부로 여기고 지수면에 단계적으로 공장을 증설해 연간 10만t 생산규모를 갖출 계획이며, 성공적으로 운영해 지역발전에도 이바지 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현재 허세홍 GS칼텍스 대표는 허동수 회장의 장남으로 허만정 창업주의 기업가정신과 고향 진주에 대한 관심도 이어가고 있다. GS칼텍스는 2018년 연간 매출액이 36조 3630억원이며, 당기순이익이 7035억원으로 매출액 2조7860억원인 한국우주항공(KAI) 보다 12배가 넘는다.

 
GS칼텍스 진주 복합수지공장 착공식 모습.
◇김해 허씨-능성 구씨 문무겸전의 기품

김해 허씨 문중 인물들의 특징으로 문무겸전했으며, 국가와 민족에 위기가 있을 때 충절을 지켜 분연히 일어났는데 대표적 인물이 관란 허국주다. 베풀기를 좋아했는데 지신정 허준이 허씨의 장을 만들었고 효주 허만정이 일신학교(현 진주여고)를 짓는 등 나눔을 실천했다. 능성 구씨는 조선 전기부터 현달한 관료 가문이었다. 또한 여러 왕대에 걸쳐서 공신이 배출되고 왕실과 혼인관계를 맺어 훈척 가문으로 알려져 왔다.

LG 창업주인 연암 구인회 회장은 청년시절 상해임시정부 독립자금 전달을 맡았으며, 기업을 일으켜 국가를 부유하게 하고 연암공과대학을 설립하고 진주시립연암도서관을 짓는 등 사회공헌에 앞장서 왔다. 승산리에서 310년간 동고동락해 온 김해 허씨와 능성 구씨 문중은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나눔을 실천해 해왔으며 철저한 도덕적 기품을 유지하며 지역사회 공헌에 자신의 재산을 아끼지 않으며 기여해 왔다.

◇승산리 유래와 변천 과정

이충도 지수초등학교 총동창회 사무총장에 따르면 승산리는 예로부터 승산동이라 불렸다. 한양에서 진주는 몰라도 승산은 안다고 할 만큼 천석꾼 부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로 알려져 있으며 승산교, 승산도랑 등의 관련 지명들이 남아 있다. 승산리는 조선조 말까지 진주목에 속해 있었으나 1906년~1913년까지 함안군으로 이속 됐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다시 진주로 편입돼 승어산리(상성어산), 하승어산, 무등촌, 허곡, 임내리를 병합해 승내리라 했다. 80여 년간 승내리로 불리다가 광복 50주년을 맞아 ‘우리 고유지명 찾기’ 운동을 통해 1995년 11월 진주시 조례 제149호에 의해 다시 승산리로 변경 됐다.

승산리는 대대로 부자들이 많이 살았다. 만석꾼이 2집, 천석꾼이 7집이나 됐다. 풍족한 동네였기 때문에 골목골목마다 고소하고 맛좋은 냄새가 넘쳐 났으며 한 동네에서만 소를 잡는 집이 3~4집이나 됐다고 한다. 지금도 승산마을에는 안동하회 마을보다 많은 99채의 한옥이 잘 보존되고 있어 선비문화와 조상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정리=정희성기자

 

‘일-취-월-장 진주경제’ 프로젝트는 경남일보, 진주경제발전추진위원회(위원장 정인철), 경상대 기업가정신추진단(단장 정대율 교수)이 공동으로 진주지역 출신 기업가들의 혁신적인 기업가정신 뿌리를 탐색하고 정립해서 위기의 한국경제-진주경제의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입니다.(진주경제발전추진위원회 Tel.070-4111-1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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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19-07-04 02:47:18
패전국은 승전국이나 주권국가가 베푸는 아량만큼만 인정받고 살아야 함.


http://blog.daum.net/macmaca/2645

윤진한 2019-07-04 02:43:47
한국사와 세계사와의 연계는 가장 옳은 정답에 해당됩니다. 한나라이후 세계종교로 동아시아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잡아온 유교전통.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 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됨.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하였습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그리고 세계사를 반영 관습법적으로 교황윤허 서강대. http://blog.daum.net/macmaca/25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