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도전] 진주 역사서 편찬한 김종희 씨
[행복한 도전] 진주 역사서 편찬한 김종희 씨
  • 백지영
  • 승인 2019.07.03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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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 쪽에 가득 채운 내고장 사랑 '진주에 미쳤던 거라'

“내 인생의 역작이라오. 진주 3000년사를 고스란히 담았는데 진주에 본사가 있는 경남일보사에 꼭 기증하고 싶어 찾아왔소”

한낮의 기온이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운 6월의 어느 날, 연세를 가늠하기 어려운 한 어르신이 두꺼운 책 2권을 들고 진주시 상평동에 위치한 경남일보사 2층 편집국을 방문했다.

그가 건넨 두꺼운 책은 ‘진주의 역사는 3000년 전에 시작되었다’라는 부제 아래 ‘진주 3000년 역사의 자취와 변천(상권)’, ‘진주 발전사와 지역 문화유산(하권)’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내용을 훑어보니 깊이 있는 내용에 단순히 취미 삼아 만든 수준은 절대 아니다.

“어르신께서 이 책을 만드셨다고요? 보통 고생을 하신 게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럼. 글은 물론 사진부터 편집까지 다 직접 했어. 남들 도움 하나도 안 받고 출판도 내 돈으로 했지”

설명하는 노인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자부심이 묻어나 있었다. 그는 어떻게 어떻게 1300쪽이 훨씬 넘는 이 두꺼운 책을 발간하게 됐을까.

 

 

◇도서관에서 시작된 저술의 꿈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진주시 상봉동에 위치한 어르신의 자택을 찾았다. 그의 명함에는 국사편찬위원회 진주시 사료 조사위원, ㈔경남 향토사 연구회 위원 이라는 경력과 함께 그가 지금껏 편찬한 5권의 책 제목이 나열돼 있었다.

“봉산 김종희라고 하오. 올해로 80살 먹었지. 진주 진성에서 태어나 상봉동에 정착해 산 토박이 진주 사람이야. 젊었을 적엔 산업대(현 경남과학기술대학교)에서 행정 직원으로 일하다 98년도에 정년 퇴임을 했어”

지난 2011년부터 국사편찬위원회 조사위원을 맡고 있고, 경남 향토사 연구회는 발기 이사로 참여해 지금까지 계속 함께하고 있다.

그는 우리 역사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에서 근무하던 시절 틈 나는 대로 학교에서 도서관을 찾았다. 시립도서관에 가도 책이 별로 없던 시절, 대학 도서관은 그에게 보물창고였다.

그 중 특히 역사와 종교 서적에 관심이 갔다. 우리 민족의 변천사부터 불교부터 기독교 구약성서, 신약성서까지 다방면으로 읽었지만 원시 종교를 다루는 책에 가장 심취했다. 김 씨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보며 공부한 내용을 자신 나름대로 정리를 참 많이 했었노라며 손글씨가 빼곡한 노트를 펼쳐 보였다.

“정리를 하다 보니 살살 욕심이 생기더라구. 이 참에 책을 한 권 제대로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퇴임 후 책 집필을 시작했어. 내가 요즘 애들만큼은 아니지만 컴퓨터는 좀 다룰 수 있거든”

그렇게 제일 처음 만들어낸 책은 그가 정리해왔던 내용을 바탕으로 2006년 출판한 ‘전통문화인 유교를 통해본 가정의례’다. 이 책을 포함해 총 5권의 책을 펴냈지만 사실 타자 속도는 그렇게 빠르지는 않다.

“내가 80년대에 워드프로세서 3급 자격증을 땄어. 필기는 단박에 합격했지만 실기는 2번 만에 겨우 붙었지. 당시 초등학생들도 나보다 더 타자 속도가 빨랐어”

빠르지는 않지만 글을 쓸 정도의 속도는 나온다는 그는 퇴직 이후 본격적으로 고대사를 다루는 책 저술에 나섰다.

지난달 나온 ‘진주의 역사는 3000년 전에 시작되었다’라는 책을 출간하기 위해서는 자그마치 6년이라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다.

이 두권의 책에는 진주의 각 읍·면·동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상권에는 진주의 연원과 연혁을 상술했고 진주사람들의 수난과 항쟁, 애환을 비롯해 진주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사건들을 실감 나게 정리했다.

하권에는 청동기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진주지역의 유적 및 문화유산을 진주성과 각 읍·면·동별로 구분해 현재 사진과 함께 상세한 개요를 덧붙여 읽기 편하도록 엮었다.

그는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예부터 진주에 인물이 많은 데는 교육의 힘이 컸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고 했다. 고려 시대부터 교육기관인 국학당이 설치돼, 조선 시대에는 향교로 이어져 내려오면서 많은 인재가 배출됐다는 것이다. 지금도 진주에는 향교가 남아 있다.

진주성에 대한 애착도 드러냈다. 논개에 관한 이야기부터 다양한 비사를 소개했다. 촉석루가 8번이나 증설된 이야기. 6·25 때 불탄 촉성루 재건을 위해 이승만 대통령 시절 설악산에서 나무를 조달한 이야기, 트럭이 아닌 기차로 싣고 오는 과정에서 꼬불꼬불한 기찻길 옆에 지어진 집을 나무가 쳐서 뜯어버렸다는 숨겨진 이야기까지 담겨 있다.

◇5년에 걸친 집필 활동의 결정체


사랑하는 고향 진주의 3000년 역사를 체계적인 기록으로 남겨보겠다는 사명감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출간까지는 참 어려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원고 작업에만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요즘같이 날씨가 한창 더울 때는 속옷 차림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쓰기도 했다. 한번 쓴다고 되는 게 아니라 수십번 읽어가면 교정을 거쳐야 했다. 열정이 없으면 하기 힘든 작업이다.

“우리 마누라도 내보고 미쳤다 칸다. 애들도 아부지 뭐 때문에 그러노, 안 그래도 이런 거 할 사람 꽉 찼다고 그러데”

그래서 ‘왜 그랬는지’ 다시 그에게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늙어서 진주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하나를 꼭 남기고 가고 싶었다”였다.

두 권의 책에는 글 한 자, 사진 한 장까지 그의 손때와 정성이 담겨 있었다. 혼자 책 편집을 하고, 글자 조정, 폭 조절 하나까지 그의 손을 모두 거쳤다.

“내 손이 안 닿은 건 표지랑 속지 한 장뿐이야. 그건 내가 쓰는 프로그램으로 제작이 안 되더라고. 남들처럼 출판사에 사진 그냥 딱 던져주고 글도 막 써서 줬으면 발간하는데 큰돈이 들었을 거야. 나는 그걸 하나하나 직접 했으니 책 2권을 170부씩 찍어내는데 딱 100만원 들었지”

책에 실릴 사진을 찍기 위해서 진주 전역을 수차례 방문했다. 자가용이 없지만 열정 하나로 교통편이 불편한 면 단위까지 전부 발로 뛰었다.

“옛날에는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하나하나 현상했는데 디지털카메라가 나온 뒤로는 그럴 필요 없지. 콤퓨타에 몇천장의 사진을 딱딱 정리하고 있어”

앨범을 한장 한장 넘기며 “이건 내 고향 건너 편에서 찍은 사진, 저건 옛날 진주 향교 자리 찍은 사진”이라며 설명해주는 그의 말에 그간의 고생이 느껴진다.

책을 만들며 특히 힘들었던 순간은 한문이 나오는 부분을 집필할 때였다. “진주성 관련된 한문이 참 많이 나오는데 그걸 내가 일일이 한글로 쳐서 한문으로 변환했어. 기존 해석이 엉터리로 된 것도 있고 시간이 참 많이 걸렸어”

고생이야 끝도 없지만 책을 쓰며 느끼는 보람도 이루 말할 수 없다. “집필 과정에서 내가 몰랐던 걸 알게 될 때 참 좋아. 나는 우리 인류가 어디서 왔느냐, 그리고 진주 사람들은 어디서 왔느냐에 항상 관심이 많았거든. 그런 궁금증이 깊이 있는 탐구 속에 해결될 때 보람을 느끼지”

◇“비용 문제로 컬러 인쇄 못한 점 아쉬워”

아쉬운 점은 비용 문제로 끝내 흑백으로 밖에 책을 출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컬러 사진이 주는 디테일을 살리지 못한 것이 지금도 그의 마음에 깊이 남아 있었다.

“흑백 사진으로는 식별이 힘든 부분이 있어. 자비로 컬러 출판을 하기에는 힘들어서 관공서나 뜻있는 사람들한테 혹시 지원을 해줄 수 있는지 물어보고 그랬는데 잘 안 됐어. 1년 정도 노력했는데 안 되길래 그냥 포기했어. 가슴이 아프지. 언젠가는 컬러판으로 낼 수 있는 기회가 있겠지. 오면 좋겠어”

기회가 완전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려주면 일정 금액을 후원하겠다는 제안이 들어왔었다. “내가 이 책에 공을 얼마나 들였는데 흑백으로 냈으면 냈지 그러기는 싫었어”

대신 ‘원본’이라는 이름을 붙여둔 자신의 소장본 딱 1부에는 컬러 사진을 인쇄해 흑백 사진 위에 하나하나 직접 풀로 붙였다. “흑백판은 사진 보기 불편하잖아. 콤퓨타 들여다보면 컬러 사진이야 있지만, 누가 왔을 때 보면서 얘기를 할라카며는 책에도 컬러가 있어야 될 것 같아서 이리 만들었지”

그가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보여주는 컬러 사진은 처음부터 그렇게 인쇄된 양 한 치의 오차도, 조금의 운 자국도 없다. 직접 손으로 만져보지 않으면 붙인 사진이란 점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다.

책을 출간하고 나서 한동안 허탈한 감정에 며칠 동안 몸살이 났다. “소명감을 갖고 혼신을 다 해서 썼지. 나한테는 이게 마지막 책이나 진배가 없었거든”

대화를 나누던 그의 눈길이 어느 순간 책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당시 써놨던 책, 인화해 둔 사진, 스크랩해둔 기사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장구한 진주의 역사를 타임캡슐로 남긴다는 의욕 하나로 진주시 전역의 등록·비등록 문화유산을 찾아 직접 사진을 찍고 자료를 수집하던 지난 세월의 증거들이었다.

기나긴 집필활동을 마친 그는 이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는 이 책이 진주의 역사를 알리는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기원했다.

“모자람이 많은 작품이지만 우리 고장인 진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만든 책이오. 혹여나 우리 진주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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