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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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9.07.04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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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지연과 진주 논개(3)

민간인 학살지 함양 점촌을 연고지로
‘함양댁’ 딸 논개는 진주목 출생 설정
강동찬이란 가상의 장정과 인연 엮어
실제의 인물 논개는 역사적인 인물이고 진주 관기였다.(유몽인의 <어우야담>) 임란시 진주 제2차 진주성 천투에서 우군이 왜군에게 비참하게 패하자 논개는 옷을 단장해 입고 술상을 차려 의암으로 올라가 왜장을 유혹했다. 그런 뒤 걸려 든 왜장을 껴안고 남강물에 투신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소설적 상상으로 이야기를 구성한 것이 ‘소설 논개’이다. 여러 가지 이야기에는 쟁점들이 있기 때문에 제목을 소설 논개라 한 것이다.

김지연 작가는 일단 논개의 출생지를 약간 애매한 대로 함양땅 점촌 언저리에서 진주목 변두리 선학산 아래 도동골로 기술하고 있다. 말하자면 진주 논개로 돌려 잡아 쓴 것이다. 논개의 유년시절 소설이 시작되는 때는 진주 도동고을 강진사댁에 일나가는 어머니따라 도동고을 목수집 창고 귀퉁이의 셋방에서 살고 있다. 강주섭 노인의 조부 강일후가 진사를 지냈을 뿐 지금은 도동고을 천석꾼 토호로 살고 있지만 마을에서는 그 집을 진사댁이라 불렀다.

고을 사람들은 논개의 오매를 ‘점촌댁’ 혹은 ‘함양댁’이라 불렀다. 과거에 살았던 지역을 호칭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까닭이 있어선지 논개는 알지 못했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은 알고 있었다. 논개가 7살까지는 강가 난전의 점촌 주막집 골방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주인여자는 논개의 모녀를 주막에서 내쫓았고, 이후 진주목 도동 마을 진사댁에 논개의 어머니는 일을 하며 살았다.

작가 김지연이 논개가 7살까지 살았던 곳을 함양땅 점촌 주막집이라 했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함양 점촌은 6·25때 산청함양사건의 4대 학살지역의 하나인 ‘함양군 휴천면 점촌 마을’이다. 사건 당시 80여호 되었는데 행정구역이 좀 묘하게 배치되어 있는 곳이다. 마치 진주시 칠암동 구역인데 경상대 의대 기숙사 부근은 칠암동이 아니고 주약동인 것처럼 말이다. 말하자면 점촌 마을이 산청군 구역인데 의외로 함양지역이 치고 들어와 산청 안에 찡겨 있는 형국이다. 작가는 그런 형국을 알고 쓴 것일까 아닐까?

그러나 저러나 소설 안에서 점촌이 나오지만 거기서 논개가 태어났다는 말은 없다. 태어난 곳은 다른 어디이지만 그곳으로 흘러들어온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의 흐름으로 보아 논개의 출생지는 진주목으로 보여지는 구도로 읽힌다.

논개의 어머니는 강진사댁 일을 마치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와 몸져 누웠다. 그 길로 피를 토하고 오래 앓아온 병으로 논개의 뱀탕 수발에도 불구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강진사댁 노비가 주변을 시켜 논개를 강진사댁 몸종으로 데려갈 획책을 하고 있었다. 논개는 어림도 없는 소리로 일축했지만 그 사이 어머니 병환이 급속히 진행된 것이 머릿속에 걸렸다.

“희부연 새벽녘에 송달이 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백정이가 괭이와 삽을 메고 논개 집으로 왔다. ‘선학산 암반태기 옆에 묻을 곳이 많십니다.’ 백정이 말하면서 앞장서고 송달이 아버지가 시체를 얹은 지게를 지고 따랐다. 친구 섭내미가 연신 훌쩍거라며 뒤따르고 논개는 장짓간 대살강 위에서 오매의 밥사발 한 개와 놋숟갈 하나를 움켜쥔 채 지게 뒤를 따랐다.”

어머니를 이렇게 선학산에 묻어 큰 절을 하고 논개는 마을에서는 이사갈 곳이 없음을 알고 어머니 무덤 위 산 중턱 바위굴로 이사를 들었다. 산간살이를 시작한 것이다. 바위굴이라 했지만 기실은 커다란 바위와 바위가 몸을 붙이고 선 틈서리의 공간일 뿐이었다.

동네를 다녀오고 난 사흘째 되는 날, 그야말로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은 일이 논개 앞에 벌어지고 말았다. 순라군 복장의 늙수구레한 두 사내가 커다란 박달나무 몽둥이를 들고 바위굴 앞에 나타나서 다짜고짜로 굴속의 곡식 항아리며 옹기솥이며 마구 두들겨 박살을 내버리고 이불을 갈가갈기 찢고 입구를 가린 거적때기며 바닥에 깔았던 가마니를 몽땅 다 끌어내어 산등성이 아래로 내던져버렸다. 그리고 논개의 몸뚱아리를 꽁꽁 묶었다. 그때였다. 놀랍게도 강진사댁의 노비가 굴앞에 나타나 두 사내 앞을 가로막았다. 노비가 다시 사내들을 가로막으며 이 아이는 강진사댁 종년인데 일이 있어서 여기에 하루 이틀 묵었을 뿐이니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그때 논개는 그 와중에도 “나는 종년이 아니요. 안갈끼요”하고 대들었다. 이때였다. “뭣하는 짓들이야!” 장정 하나가 두 사내와 노비를 두들기며 “허어, 세상에 이 나쁜 놈들”하고 내쳤다. 그 장정은 인근 의병 훈련장에서 온 강동찬이라는 사람이었다. 정신을 수습한 논개는 지금껏 살아온 내력과 바위굴로 들어와 산 사연을 다 말했다. 이 강동찬과의 인연은 이후 논개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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