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용복의 세계여행 [17] 투르크메니스탄(2)
도용복의 세계여행 [17] 투르크메니스탄(2)
  • 경남일보
  • 승인 2019.07.0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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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감탄 자아내는 도시의 위용
웅장함 보다 반가운 사람내음 ‘살롬’
이곳은 도로사정이 좋지 않다. 차와 함께 당나귀가 끄는 수레를 타고 도로를 지나다닌다.


투르크멘이란 말은 투르크계의 부족들이 살고 있는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투르크메니스탄이란 국가명은 투르크멘 사람들이 세운 나라를 뜻한다. 세종 때 지어진 용비어천가에서 돌궐족이 나타난다. 또 고구려 유민인 고선지 장군이 당나라의 대장군이 되어 실크로드의 패권을 겨루기 위한 탈라스 전투를 치를 때도 돌궐족이 나타난다. 이 돌궐족이 투르크족이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신전처럼 다듬어져 있다. ‘아쉬하바드 신전’. 가는 곳마다 인공폭포와 분수로 뛰어난 절경이 있고, 그 사이로 대통령 동상이 서 있었다. 거리도, 사람도 깨끗했다. 대통령의 자기과시라고 하기에는 너무 아름답고 완벽한 도시가 아닌가.

대통령궁을 방문했을 때는 다가올 10월 27일, 독립 기념행사를 위한 준비로 군인들의 열병식 예행연습이 한참이었다.

여행 내내 나를 짓누르는 제복에 대한 두려움은 가시지 않고 있으나, 뙤약볕 아래 흥건히 젖은 제복을 입은 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이 나라 젊은이들의 표정은 멀리서 보아도 아름답다.

각 도로마다 거리의 주제가 분명하다. 역사박물관이 있는 민족의 역사를 기리는 거리, 트레이드 빌딩이나 커머셜 센터가 있는 경제를 위한 거리, 각 정부 청사가 들어있는 행정거리, 시민생활을 위한 바자르 거리 등 거리의 기능과 성격에 맞는 도시 분위기를 연출하며 제각기의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새로운 거리에 접어들 때마다 모든 미래 도시들은 나중에 모두 아쉬하바드를 흉내 낼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이 나라의 도심은 나에게 흥분과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박물관 입구의 경비병들
결혼식의 기념촬영모습. 왁자지껄 한바탕 신나는 모습이 연출됐다.


1948년, 중앙아시아를 뒤흔든 대지진이 있어 투르쿠멘에서만 약 12∼3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 지진으로 두 개의 건물만 남긴 채 도심 전체가 모두 붕괴되었으니, 도시전체 인구의 90%가 사망하는 참혹한 대재앙이 아쉬하바드를 휩쓴 것이었다. 이 대지진 때 두 명의 아들 중 한 아이는 재앙에 휩쓸려 잃어버리고 오직 한 아이만 어머니의 헌신적인 죽음으로 목숨을 건졌으니 그 아이가 바로 위대한 지도자 니야조프란 것.

그래서 매해 1월은 자신의 달로, 매해 4월은 어머니의 달로 정해놓고 있다.

어둠이 깃들자 모든 도로와 건물들은 가로등, 조명등으로 환하고 선명하게 드러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중립국 선포기념탑 꼭대기에서 바라본 도시의 야경은 너무 아름다웠다. 곳곳에서 빛나는 유백색 불빛 기둥들이 눈부신 모습으로 다가왔다.

도시 전체가 빛의 바다로 출렁이면서, 마치 거대한 무대를 가득 채운 불의 쇼를 보는 듯 하다. 거리마다 뿜어져 나오는 갖가지 형태의 분수대 물줄기들은 휘황찬란한 광채를 전신에 두르고 온몸을 뒤틀면서 밤하늘로 비상한다.

대통령궁과 이슬람사원인 터키 사원도 유난히 눈부시게 위용을 드러내고, 대통령 일가들의 공원에서 시작된 그 환상적인 파장은 밤이 깊어지면서 도시전체로 번져 물과 불의 바다로 변했다.

인구 60만인 이 도심 공원의 규모는 무려 수천만㎡나 되어 도시의 반이 공원으로 뒤덮여 있는 셈이니, 물과 불의 쇼를 펼치기 시작하는 밤이면 온 도시가 물과 불의 황홀한 무대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홀린 듯 아쉬하바드의 밤 풍경을 내려다보면서 경탄을 거듭하던 나는 어느새 달콤한 착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난 이 거대한 도시를 무대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발레모음곡 불새(Fire Bird)를 지휘하는 마에스트로가 된다.

아, 불시에 터져 나오는 이 음악의 격정을 어찌 할꼬. 불과 물의 화려한 무대 속으로 뛰어 들어가 함께 호흡한다. 아름다운 무대를 배경으로 터지는 분수관현악의 유니 존. 그 화음 속에서 나는 양팔을 휘젓는다. 지휘봉을 들고 이 분수대, 저 분수대를 지휘대상물로 끌어들인다.

이윽고 지휘봉을 거둔 후, 땀에 젖은 팔을 모은 채 눈을 뜬다. 박수 꾼이 아무도 없다. 청중도 없다. 혼자서 상상의 지휘봉을 휘두르며 활갯짓을 펼친 큰 공원 한복판에 나 혼자 덩그러니 서있는 것이다. 야밤 중 허깨비 노릇을 봐준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다행이었으나 나로서는 싱겁기 짝이 없다.

이뿐이랴. 호화로운 야경 속으로 내려오니 넓은 공원의 어디를 가더라도 물과 불의 현란한 쇼가 펼쳐지지만 이를 즐겨야 할 시민들이 없었다.

대도시 호젓한 공원의 숲 주변에 으레 있어야 할 젊은 연인들조차도 보이질 않는다. 공원이 아름답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갑자기 으스스한 기분이 든다. 여태 경탄해 마지않던 나의 감정에 갑자기 허무한 피로가 엄습해 왔다. 나는 갑자기 사람의 내음이 그리워졌다. 마음이 급해지면서 발걸음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다. 나의 이번 투르크멘 방문도 사람들의 모습, 이곳의 원형적인 삶의 어떤 열정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관중이 없는 무대는 죽은 무대이다. 마치 신의 관람을 위해서만 꾸며 놓은 듯한 이 장대하고 화려한 장소는 삶의 무대가 아니다. 아쉬하바드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 있을까. 한참 걸으니, 어둠 속 저 멀리 밝은 건물 아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이 보인다. 한걸음에 달려가 본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던 곳은 혼례의 뒤풀이로 숱한 젊은이들이 노래하고 춤추며 흥겨워하는 중이었다.

젊은 사내들은 양복의 윗저고리를 벗어두고 넥타이 차림으로 음악에 맞춰 디스코 스타일의 춤을 추고 있는데 모두가 환한 얼굴이다.

음악은 토속 리듬이 완연한 춤곡으로 우리가 흔히 듣는 디스코텍의 신나는 댄스음악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렇지, 바로 이것이다. 내가 공원의 아름다움에 심취해 있다가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나 온 이유가 바로 이러한 표정들을 보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행복이 가득한 사람의 눈빛과 웃음 속에 어우러지지 않으면 공원의 찬란한 아름다움인들 무슨 소용이랴.



 
목화밭에서 목화를 따는 사람들도 목격됐다.


지방도로에 들어서니 아쉬하바드와는 달리 도로사정이 엉망이다. 차선도 없는데 교통군인은 너무 많다. 검문에 빼앗긴 시간을 만회하려고 시속 130㎞로 마구 달려가니 소련제 낡은 고물 승용차는 ‘끅, 끄으끅’ 비명을 질러댄다. 시도 때도 없이 당하는 검문에서는 살벌한 군복의 눈초리가, 달리는 차 속에선 고물차의 비명소리가 여행의 감흥을 여지없이 구기는데, 그것을 견디기가 쉽지 않다. 자동차의 비명만큼 내 몸도 비명을 지르고 싶을 지경이다.

도심을 빠져 나오자 대규모의 소떼나 양떼, 당나귀들의 이동이 심심찮게 보인다. 어른들은 모두 목화밭으로 갔는지 목동은 전부 여남은 살쯤의 조그만 소년들이다. 어떤 녀석은 말 못하는 당나귀와 티격태격 싸우고 있다. 짐승이 제 뜻대로 안 따라 줬을 것이다.

어릴 때 나도 어지간히 소들과 싸웠지. 얼굴엔 땟자국이 있는 어린 목동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 아하, 틀림없는 내 어릴 적 모습이다.

“살롬?” 내 인사에 어린 목동은 히죽 웃으며, “살롬!”이라 대꾸한다. 어쩌면 저렇게 정겹게도 인사를 받지. 방금 나는 어릴 적의 나와, 5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또 하나의 내가 서로 안녕이란 인사를 주고받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또 향수병이 도지는가 싶더니 내 입에서 노래가 맴돈다. “오, 대니 보이∼”



 
도시의 인근 지역에는 도로가 한산한 모습이다.
길 가 낙타 위에서 휴식하고 있는 사람.
니야조프 대통령의 아버지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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