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충사적비를 찾아가다
쌍충사적비를 찾아가다
  • 경남일보
  • 승인 2019.07.0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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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진주성 공북문을 지나면 잔디밭 중간에 복원된 우물이 있고 길게 성벽이 펼쳐지고 담장 위로 비각 및 촉석루의 지붕을 볼 수 있다. 작은 문이 열려 있는 비각으로 다가가면 안내판에 쌍충사적비(雙忠事蹟碑), 경남도유형문화재 제3호, 소재지:진주시 본성동. 설명이 이어진다.

이 비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싸우다가 전사한 제말 장군과 그의 조카 제홍록의 공을 새겼다. 장군은 웅천·김해·의령 등지에서 왜적과 싸워서 전공을 세워 곽재우 장군과 함께 그 공적이 조정에 알려져 성주목사에 임명되었으나 성주싸움에서 전사했다. 조카 제홍록은 숙부를 따라 공을 세운 후 이순신 장군 휘하에 있다가 정유재란 때 전사하였다. 정조 16년(1792) 왕은 이들의 충의를 기리어 이조판서 서유린에 명하여 비문을 지어 쌍충각을 촉석루 옆에 세웠다. 일제 때 일본 관헌들에 의해 비각이 헐리고 방치되었던 것을 1961년 지금 자리에 다시 옮겨 세웠다.

좁은 문으로 고개 숙이고 들어서면, 옆 담은 성벽이고 뒷담은 논개 사당 담장을 공유한다. 허리 높이 암석층 위에 비각이 있고 홍살 속에 비석이 있다. 거북 받침대 위에 비신을 올리고 머리 돌을 얹었는데 엉킨 두 마리의 용이 머리를 맞대고 크게 벌린 입에 여의주를 공유하고 있는 모습을 새겼다. 아래는 5개의 꽃무늬로 마무리하고 글자에 붉은색을 넣어 단심(丹心)을 나타내고 있다.

두 청년이 차례로 몸을 움츠리고 들어온다, 먼저 온 청년은 비각을 한 바퀴 돌더니 나가고 다음 청년은 홍살문 사이로 머리를 넣고 비문을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고 나간다. 어렵게 들어왔으니 얻어가야겠는데…. 비문 요약본과 비문 탁본의 검색 및 스마트폰으로 영상 해설을 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면 발걸음을 멈추게 할 것이다.

비신 상단에 제씨쌍충사적비명(諸氏雙忠事蹟碑銘)로 ‘諸氏’를 첨가하였고 4면에 공적을 촘촘히 세로쓰기로 하였다. 글자는 작고 촘촘하며 조명은 없다. 거리를 두고 살펴야 하며 가로읽기에 익숙한 눈길이라 줄을 놓치니 읽기 진도가 늦어 답답하다. 비문을 지은 이는 왕명이라 뜬 눈으로 밤을 새우며 공들인 것이 태산이거늘 자기 글을 시원스럽게 읽어 주지 못함에 섭섭해 할 것이다.

제말은 누구인가?

조선왕조실록 선조 26년(1593) 4월 12일. 대신들이 아뢰었다.

“구름처럼 쌓이는 각처의 군공을 능히 감당하지 못하여 공평하지 못하다는 비난을 듣기에 이르렀으므로 항상 스스로 황공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원에 내리신 하교를 보고 김성일의 장계 내용을 참고해 보건대, 이른바 수문장으로서 한 번 힘을 다해 싸웠다는 것으로 목사에 뛰어오른 자가 있다는 것은 제말을 가리킨 듯합니다. 제말의 공은 전후 장계에 극찬하였으므로 여러 번 승진해서 주부(主簿)에 이르렀고, 그 뒤 이조와 병조에서 그가 힘을 다해 싸웠다는 말을 듣고 성주목사에 제수하였으며 신들도 그를 병사로 추천하려고까지 하였었습니다. 그런데 경상도에서 온 사람들의 말을 듣건대 ‘사실은 한 번도 큰 싸움을 하지 않았는데 헛된 칭찬이 이에까지 이르렀다.’ 하니, 신들도 괴이하게 여겨집니다.”

제말은 무과에 급제한 후 오위도총부 수문장을 역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산을 털어 조카 제홍록을 비롯한 동지들과 함께 의병을 모집했으며 의령 등지에서 일본군과 싸워 승리했다. 기골이 장대하고 날아다니듯 빠르다 하여 비장군(飛將軍)이라 일컬었으며, 눈과 수염의 위세가 당당하여 왜적도 장군이 두려워 감히 덤비지 않고 싸우기를 피하여 무적행군으로 이름이 높았다.

초유사 김성일과 각처에 흩어져 싸우는 의병을 연결하는 일을 하다가 성주전투에서 전사했다. 병조판서에 추증, 시호는 충의공 및 충장공. 진주와 성주에 쌍충사적비가 있다.

 

쌍충사적비안내판
쌍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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