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 배가 고파요(박소란)
[강재남의 포엠산책] 배가 고파요(박소란)
  • 경남일보
  • 승인 2019.07.14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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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파요 (박소란 시인)


삼양동 시절 내내 삼계탕집 인부로 지낸 어머니
아궁이 불길처럼 뜨겁던 어느 여름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까무룩 꺼져가는 숨을 가누며 남긴
마지막 말
얘야 뚝배기가, 뚝배기가 너무 무겁구나


그 후로 종종 아무 삼계탕집에 앉아 끼니를 맞을 때
펄펄한 뚝배기 안을 들여다볼 때면
오오 어머니
거기서 무얼 하세요 도대체


자그마한 몸에 웬 얄궂은 것들을 그리도 가득 싣고서
눈빛도 표정도 없이 아무런 소식도 없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느른히 익은 살점은 마냥 먹음직스러워
대책 없이 나는 살이 오를 듯한데

 

어찌 된 일인가요
삼키고 또 삼켜도 질긴 허기는 가시질 않는데

 

밤새 내린 비에 세상이 환합니다. 꽃을 달았던 애기사과나무는 꽃잎을 털어낸 자리에 열매를 맺었습니다. 눈부신 열매 몇 알이 제 세상 밖으로 환하게 뛰어내렸습니다. 손톱크기의 열매는 푸른빛을 띠지만 제법 온전하게 과일 모양을 갖추었습니다. 하지만 환한 세상이라 믿었던 곳은 생각처럼 녹록치가 않습니다. 비로소 엄마 품이 간절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마음이 쓰여 어린 열매를 제 뿌리에 얹어주었습니다. 개미가 벌이 어쩌면 나비가 잠시 앉았다 갈지 모를 일입니다. 그리하여 과육은 그들의 소중한 양식이 될 일이겠습니다. 비바람을 잘 견딘 열매는 제법 알이 굵어졌습니다. 먼저 생을 마감한 열매는 다른 열매를 위해 스스로를 헌신한 건 아닌지, 신비로운 자연의 섭리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숭고한 이름 하나를 떠올립니다. 생각만으로 울컥하는 심장과 아련한 기억과 아득한 날의 그리움에 붉은 것이 온몸을 타고 흐릅니다. 당신의 희생으로 우리는 지금을 잘 살아내고 있습니다. 까무룩 꺼져가는 마지막 숨을 누르며 뚝배기가 무겁구나 얘야. 어깨를 짓누르는 생을 반추하며 그래도 행복했다는 말이 줄임표로 남았겠습니다. 현재의 체험으로 과거를 환기시키는 시 한 편 뜨겁게 받아들며 어머니, 나직이 불러보는 당신이라는 이름. 오오 어머니, 거기서 무얼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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