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성을 쌓아요.
모래성을 쌓아요.
  • 경남일보
  • 승인 2019.07.1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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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애리(수정초등학교 교사)
신애리
신애리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여름 장마가 잠시 낮잠을 자는 학교 모래밭에 멋진 성을 쌓기로 했다. 모래 놀이 도구와 물통을 들고 촉촉한 모래밭에 모둠별로 자리를 잡는다. 욕심쟁이 동동이는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고, 침착한 새침이는 가장자리 쪽에 반짝이는 동동 이 옆에 자신들의 터를 마련한다.

“우리들의 성은 마을을 잘 지킬 수 있어야 하고 이웃과 자주 만날 수 있는 대문이 필요해요. 한 시간을 줄 테니 완성해 보세요.”

전체를 굽어볼 수 있도록 높게 언덕을 쌓아 올리는가 하면 바깥에서는 성이 보이지 않게 모래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성을 꼭꼭 숨겨놓기도 한다. 성 옆에 해자나 연못을 만들기도 하고 학교 담벼락에 피어난 하얀 망초 꽃을 꺾어 정원을 꾸미기도 한다. 모래성 쌓기는 모둠원 모두의 생각이 골고루 나타날 수 있도록 협동과 배려를 가르쳐주는 움직이는 지도였다.

“야! 동동아, 조심조심 다녀야지. 네가 우리 성을 무너뜨렸잖아.” 동동이는 욕심껏 자리를 잡았지만, 주변에서 조금씩 밀고 들어오는 손길을 피할 수 없어 영토가 좁아지더니 급기야는 엉덩방아까지 찧는다. 마음이 급해지니 목소리까지 높아진다. “네가 우리 성안으로 들어왔잖아.”

반짝이네 성은 깊은 연못 속에 악어 떼가 살고 푸른 수목들로 가득한 정원과 길게 회랑으로 연결되는 성문까지 준비되어 간다. 쭈삣이네 성은 자꾸 안으로 동굴만 파고 바깥의 이웃들과 만날 수 있는 문조차 만들지 못하고 서로에게 생각해 보라는 숙제를 던지며 시간을 보낸다.

새침이네 모래성이 가장 먼저 완성되었다. 한 명도 다투지 않고 상대를 비난하는 일도 없이 ‘속닥속닥’ 언덕 위에 세워진 성은 두 개의 둥근 첨탑구조로 마을을 굽어본다. 작은 나뭇가지로 펄럭이는 깃발을 꾸며주었다. 한 시간 동안에 성을 쌓는다는 주제는 모둠들의 성향에 의해 완성되기도 하고 생각의 홍수로 미완으로 끝나기도 한다. 비난으로 서로 목소리를 높이다가 아쉽지만 무너뜨릴 수밖에 없기도 하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친구랑 함께 살아갈 행복한 마을 만들기는 내 생각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친구의 생각을 내 생각만큼이나 기쁘게 받아들여야만 완성된다는 귀한 선물을 던져놓는다.

여름 한낮의 모래성 쌓기는 발에서 머리까지 골고루 행복을 덧바르며 사금파리처럼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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